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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의 풀빵·광부의 희망이 서린…추억의 간이역은 지금…
-구둔역
영화촬영했던 사무실은 카페로
대합실엔 빛바랜 시간표와 유리창

-철암역 앞거리
그 옛날 슈퍼·중국집은 박물관 변신
한양다방 1층은 석탄조각 미술관으로

-임피역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 고스란히
승강장엔 소설가 채만식 작품 조형물

-연산역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 눈길
철도문화 체험·오계농장과도 가까워



비단, 수지ㆍ이제훈의 ‘건축학개론’, 강수지ㆍ김국진의 ‘불타는 청춘’ 스토리만 있는게 아니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가 있다.

대합실 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표 끊는 곳, 검표하는 곳이 코 앞에 붙어있는 양평 구둔역은 작다. 그럼에도, 서툰 조각배 노 젓기에 새로 입은 블라우스를 다 젖게 한 대학 첫 MT때 그 썸남과의 추억,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 ‘미건축’ 제훈의 풋풋함 말고도, 가족을 기다리는 아이의 그리움, 아버지의 풀빵, 엄마의 사랑이 고무대야에 한 가득 담겨있다.

1940년 4월 중앙선의 간이역으로 문을 열어 청량리에서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몇 차례 지나가던 구둔역은 중앙선 복선화 과정에서 노선이 바뀌면서 2012년 폐역됐지만, 추억을 이어간다.



▶아빠의 풀빵 같던 구둔역, 놀이터되다=풀빵의 정을 떠올리게 하는 엔진 꺼진 기관차와 객차, 은행나무 한 그루, 개 한 마리가 지금 구둔역(등록문화재 296호) 지킴이이다. ‘

건축학개론’, ‘불타는 청춘’ 촬영지인 구둔역 사무실은 카페로 바뀌었지만, 대합실은 빛 바랜 시간표와 매표소 유리창이 그대로 남아있다. 승강장으로 나가면 오래된 나무에는 잎 대신 소원지가 달렸다. 최근 구둔역 옆에 빨간 벽돌과 나무 한 그루가 어우러진 ‘고백의 정원’이 조성됐다. 노변정담의 모닥불 터, 고구마피자ㆍ빵 만들기 체험장은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 전에 만들어진다. 근처 용문사의 1000년 은행나무, 친환경농업박물관, 쉬자파크, 들꽃수목원, 두물머리로 발길을 이어간다면, 한 점 부끄럼 없는 초겨울 추억 여행이겠다.

▶철암역사촌, 안산 간 옛주인 연모=광산촌 전성기 때 전국 각지에서 철암, 황지, 통리로 몰려들었다. 그곳은 ‘약속의 땅’이었다. “불원천리 장성땅에 돈벌러 왔다가/꽃같은 요내 청춘 탄광에서 늙네/작년간다 올해간다 석삼년이 지나고/내년간다 후년간다 열두해가 지났네/통리고개 송애재는 자물쇠고개인가/돈 벌러 들어왔다가 오도가도 못하네/문어 낙지 오징어는 먹물이나 뿜지/이내 몸 목구멍에는 검은 가래가 끓네.” 광부아리랑에는 애환이 가득하다.

그러다 1980년 석탄산업합리화 방안이 나오면서 폐광이 속출했고 4만명에 육박하던 철암 인구는 안산, 시흥 공단 등으로 떠나 3000명으로 급감한다. 다행히 2년전 철암역 앞 거리가 외관을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바꿔, 시간여행 문화공간인 ‘철암광산역사촌’으로 거듭났다.

호남슈퍼와 중국집 진주성은 에코생활사박물관으로, 한양다방 1층은 석탄조각 설치미술전시관으로, 2층은 까치발 설치 예술관으로 바뀌었다. 옥상에는 광부의 희망 어린 미소가 청동상으로 재연돼 있다.

철암역 일대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 용연동굴, 한강의 발원지 검룡소, 낙동강의 발원지 황지연못, ‘태양의 후예’ 세트장 등이 10~28㎞ 반경에 있다.

▶수탈의 아픔 임피역, 문학의 터전으로=임피역은 1924년 문을 열어, 쌀을 일본으로 반출했던 아픈 경험이 있다. 1936년 지은 지금의 역사는 서양과 일본 양식을 결합한 건축미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208호로 지정됐다.

2008년 5월 여객 운송이 완전히 중단된 이후, 최근까지 군산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대표작 ‘탁류’와 ‘레디메이드 인생’ 등을 모티프로 한 조형물이 들어서고, 객차를 활용한 전시관도 생겼다. 승강장 쪽에 나무 벤치를 놓았다. 주택가 사이 경암 철도마을 자취가 정겹다. 군산근대역사문화거리, 은파호수공원 산책과 비응 항구 먹방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건강한 연산 오계 농장 가까운 연산역=호남선 연산역은 대전과 논산 사이에 있는 간이역이다. 상ㆍ하행 기차가 하루에 10회 선다. 승객이 별로 없어 연산역의 시간은 느긋하게 흐른다.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이 있다.

화강석을 원기둥처럼 쌓아 올리고 철제 물탱크를 얹었는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 48호로 지정됐다. 철도문화 체험도 할 수 있다. 검정색 오계 농장과는 불과 5㎞ 떨어져 있고, 논산 돈암서원, 화지중앙시장, 관촉사, 강경근대문화코스도 주변에 있다. 구둔ㆍ철암ㆍ임피ㆍ연산역은 한국관광공사가 ‘12월에 가볼만한 곳’으로 추천했다.

함영훈 여행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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