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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 고준위방폐물 관리, 선택 아닌 책임의 문제
독일 메르켈 내각에서는 지난달 20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를 지원하는 법안을 수립했다. 235억 유로, 우리 돈으로 29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이 집행된다.

법안에 따르면 원전 운영자들이 원전 해체와 방사성폐기물의 포장을 담당하고, 정부가 폐기물 보관을 책임진다.

‘탈원전’ 정책을 선언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은 5년 전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22년까지 자국 내 원전 17기를 모두 폐로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력사용량이 많은 공업대국이면서도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다. 그런 독일이 다시 원자력에 거액을 투자하는 소식은 의외다.

이는 독일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원자력발전과 별개의 문제로 다루기 때문이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다. 수력과 신재생에너지 위주의 청정국가로 알려진 스위스는 원자력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주변국에 수출해 ‘중부 유럽의 배터리’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노르웨이와 스웨덴 역시 그렇다.

모두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구조로 이행하면서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들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 역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20세기 원자력에 많은 빚을 진 현 세대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에 따른 것이다. 유럽인들의 이런 생각은 스위스의 몬테리 연구소 건설에서 잘 드러난다. 연구소가 건설된 곳은 독일과의 접경지대인 ‘테리 산’이다.

당연히 독일의 반발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스위스는 유럽 곳곳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를 안전하게 처리하는 일은 전 유럽, 나아가 인류적 과제이므로 국경에 연연하지 않고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라는 논리로 독일을 설득했다. 독일은 대승적 관점에서 수긍했다.

독일과 스웨덴, 스위스의 사례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이 원자력발전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준비했거나 준비 중인 국가들은 원자력발전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정책, 연구, 사회적 소통 등 모든 측면에서 분리해서 다루어 왔다. 발전소 건설이 ‘현 세대의 번영을 위한 선택’이라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은 ‘후손과 인류에 대한 책임’이라는 점에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관리지침 발표와 함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해법의 첫 발을 내딛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역 주민과 소통을 강조하면서도 관련 기관의 역할이 명확히 정의되어 충실하고 합리적인 지침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연구와 합의가 필요한 문제인 만큼, 추진 과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계속되는 여진 등으로 원자력 안전과 관련된 현안이 대두되면서 향후 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을 준비하는 일은 최우선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원자력 정책과는 별개로 추진해야할 과제이자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한 현 세대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관건은 이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협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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