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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순실 파문 속 ‘학생의 날’ ②] 학생은 늘 움직였고 세상은 변했다
- 11월 3일, 광주학생항일운동 기린 ’학생의 날‘

- 항일 운동ㆍ민주화 투쟁에 이어 박근혜 정부 규탄도 학생이 주도

- 전문가 “지식인으로서 책무감이 행동 이끌어”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규탄하는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중요한 역사적 흐름에는 늘 학생이 움직였고, 세상은 이들의 목소리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1929년 10월 30일. 전라남도 나주 역에서 일본인 학생들이 한국인 여학생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는 등 희롱하자 한국인 학생들은 이에 항의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은 사건의 발단이 된 일본인 학생들을 풀어주고 한국인 학생들만 구속했다. 이에 격분한 광주시내 대부분의 학생들은 11월 3일 가두투쟁과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이후 항일운동은 전남지역으로 번졌고 서울 시내 유수의 고등보통학교 학생들 역시 궐기했다. 전국적으로 참가한 학교가 194개, 학생수가 5만4000여명에 달했다. 3ㆍ1운동 이후 최대의 대일민족항쟁으로 기록됐다. 정부는 이를 기려 11월 3일을 학생의 날(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제정했다. 
[사진설명=역사적으로 사회의 변혁의 중심에 학생이 서 있었다. 사회로부터 혜택받았다는 지식인으로서 책무감은 학생들로 하여금 불의에 맞서 싸우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해방 이후에도 4ㆍ19 혁명 당시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나 유신 체제 말기 부마항쟁,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등 학생들은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고 결국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과실을 획득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이나 환경운동, 젠더 운동 등 우리 사회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사회 운동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학생들이 역사적 흐름을 바꾸는 주요한 사건을 주도하는 이유에 대해 ‘지식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든다. 신형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한국민주주의연구소장은 “학생, 특히 고등교육을 받은 대학생들은 전체 인구 중 5%에 불과할 만큼 혜택을 받은 계층으로 이들의 하는 이야기나 내거는 주의ㆍ주장이 국민들의 존중을 받았다”고 설명한다. 존중을 받는 만큼 불의나 부정의를 지나쳐서는 안되는 역사적ㆍ사회적 책임의식을 갖고 앞장섰다는 것. 
[사진설명=역사적으로 사회의 변혁의 중심에 학생이 서 있었다. 사회로부터 혜택받았다는 지식인으로서 책무감은 학생들로 하여금 불의에 맞서 싸우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지난 29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대학생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한때 사회에 관심도 없고 입시와 취업 등 개인 간 경쟁에만 매몰된다는 비판을 받았던 학생들이 최근 정치적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세월호 사고의 경험 때문이다. 신 소장은 “세월호 사고의 피해 당사자들 대부분이 고등학생이라는 점에 학생들은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언제든 국가의 부정부패나 무능에 의해 자신들이 희생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사회의식이나 비판의식을 갖고 행동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최근 최순실 사태로 한 초등학생이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전북 지역의 중학생들이 직접 집회신고를 하는 등 학생들의 사회 참여는 이제 연령을 가리지 않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아직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편향된 시각을 갖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같은 경험이 학생들이 민주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좋은 계기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신 소장은 “평화적 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교과서나 책에서만 배우던 민주의식과 역사의식을 생생하게 느끼는 실천적 경험”이라며 “기성세대가 우려하며 과잉보호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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