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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출퇴근 미래엔 없어질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사무실과 사생활은 별개이지. 나는 사무실로 갈 때는 성(城)을 두고 가고, 성으로 올 때는 사무실을 두고 오니까.”

찰스 디킨스의 걸작 ‘위대한 유산’(1861년)에서 이렇게 말하는 변호사 사무장 존 웨믹을 ‘현대인의 탄생’이라해도 틀리지 않을듯 싶다. 일과 집의 분리 뿐 아니라 몸과 마음, 정신의 분열이라는 현대인의 상태를 처음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일터와 집은 분리되지 않았다. 만나는 사람이 늘 같았기에 나의 말과 행동, 태도도한결같았다. 이런 분리는 철도가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화물용 철도노선이 통근자 중심으로 바뀐 최초의 철도노선은 1836년에 개통한 런던-그리니치 철도로 길이가 6킬로미터에 불과했다. 이 노선은 1844년에는 연간 200만명을 실어날랐다. 19세기 중반, 통근은 유행으로 인식됐으며 새로운 생활방식을 만들어낸다.

[출퇴근의 역사/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책세상]

‘출퇴근의 역사’(책세상)는 현대 사회의 필수요소이자 우리 삶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출퇴근’에 초점을 맞춰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들여다본다.

철도의 탄생으로 출퇴근 문화가 생겼지만 사고가 빈번했다. “기차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불구자가 되거나 사망”한다는 공포가 팽배했다. 50여명의 사상자를 낸 1865년의 스테이플허스트 철도 사고 당시 애인과 함께 기차에 탔던 찰스 디킨스가 다리에 대롱대롱 걸려 있던 객차에서 탈출해 브랜디 병을 들고 부상자들을 돌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충돌사고를 막으려면 철도가 표준시간에 맞춰 운행되어야 했다. 시계의 정확성이 중요해진 것. 철도회사들은 수익극대화를 위해 표준시간을 전국에 보급했다. 정확한 시간에 대한 필요성은 시계 제조의 혁명으로 이어졌다.

초기 통근자들의 기차안 풍경은 어땠을까.

기차의 소음이 어떤 곡조에도 잘 어울리니 콧노래를 불러보라는 내용이 포함된 ‘철도 여행자 안내서’가 출간되고, 1890년대 이전에는 화장실이 갖춰져 있지 않아 고무 튜브와 주머니를 바지 안에 집어 넣어 사용하는 ‘휴대용 비밀 화장실’을 구입해야 했다. 원하지 않는 대화를 피하기 위해 책이나 신문을 읽은 게 영국인의 문자 이용 능력을 높였다는 흥미로운 결과도 있다.

기차역 내에는 허기를 달래줄 휴게실과 역 인근에는 카페가 즐비했지만 맛은 형편없었던 듯하다. 디킨스에 따르면, 수프는 “정신을 쇠약하게 하고 위장을 더부룩하게 만들고 피부에까지 스며들고 눈을 통해 줄줄 흘러나올 지경”이라고 혹평했다.

행상도 넘쳐났다. 뱀장어요리, 고등 식초 절임, 생선 튀김, 양 족발, 햄 샌드위치, 감자구이 완두콩 요리 같은 것들을 손수레나 바구니에 놓고 팔았다.

저자는 현대로 건너와 출퇴근의 미시사를 펼쳐낸다.

대중교통의 과밀과 도로정체 등 대도시의 출근전쟁은 악명이 높다.

안전사고와 지하철 좁은 공간 안에서 견뎌야 하는 불편함은 초기 통근자들과 다르지 않다.

가령 영국에서 열차 통근자 1인당 공간은 0.45㎡로 가축만 못하다. 일본과 인도의 통근자들은 러시아워 동안 이보다 더 높은 밀도로 욱여넣어진다, 저자는 대중교통의 과밀 중에서도 일본의 초절정 승객 욱여넣기를 문화적 맥락에서 깊이있게 소개한다. “1960년대 이후로 일본의 열차 운영업체들은 ‘오시야’, 즉 ‘미는 사람’을 고용해 통근자들을 말 그대로 열차 안에 밀어넣게 했다. 오시야는 한 명당 출입문 하나씩을 담당해 힘과 섬세함을 모두 발휘해서 일한다, 즉 어느 순간에는 등을 굽혀가며 누군가를 열차 안으로 밀어넣고, 다음 순간에는 핸드백이나 스카프를 챙겨 넣어주기 위해 몸을 숙이는 것이다.”

전 세계 통근자들이 매일 한 시간씩 낯선 사람들과 밀착되는 불편한 현실은 불편의 원인으로 비난할 만한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때문에 우리에게 어느정도 일체감을 부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짜증을 분출하는 대신, 또는 통근을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냉정을 유지하며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는 것. 그렇다면 미래 통근 모습은 달라질까? 디지털화와 함께 통근은 시간과 자원 모두를 낭비하는 시대 착오적 행위로 간주돼 폐기되는 건 아닐까. 저자는 그렇더라도 쉽사리 없어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집에 불을 피울 땔감을 구해오는 여정에 쓰는 시간을 결코 낭비나 헛수고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과 같다는 얘기다.

아이디어나 에너지 효율의 관점에서도 사무실로 통근해 대면 회의를 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저자는 1세대 통근자들의 개척자 정신을 상기시킨다.

“통근은 그때까지 존재 고유의 특성이나 다름없었던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기회를 상징하는 동시에, 자신이 사는 세계를 개조할 자유를 상징했다.”

‘통근’은 일종의 생존본능이라는 말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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