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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뒤틀린 상아탑 ①] “제발 취업 좀 해주라”…읍소 나선 교수들
-학교ㆍ교원 평가에 취업률 반영되자 교수들, 학생에 취업 독려

-허술한 취업률 기준에 ‘유령 사원’ ‘싸구려 일자리’ 등 편법 난무

-국비지원 직업학교도 정부지원 받으려면 취업률 ‘꼼수’써야할판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한 전문대학 교수 A 씨는 요즘 졸업한 제자들에게 전화로 취업을 독려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하지 못한 제자들에게는 직접 일자리를 알아봐 주기도 한다. A 교수도 취업을 못한 제자들의 상황을 알고 있지만, 최근 학교가 취업률을 높여야 한다며 할당을 내려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A 교수는 “취업을 못하는 제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울지 잘 알고 있어 더 마음이 아프다”며 “이렇게 취업 독려 전화를 하는 상황에 자괴감까지 든다”고 했다. 그는 “일부 교수들은 취업 기준에 맞추려고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한달만 하도록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며 “교원 평가에 취업률이 포함되다 보니 모두가 힘든 상황”이라고 했다.

대학의 취업률 경쟁에 교수들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취업률을 위해 제자들에게 싸구려 일자리를 강요하는가 하면, 졸업생들에게 전화로 구직활동 대신 비정규직 취업을 부탁하기도 한다. [123rf]

이처럼 대학의 취업률 경쟁에 교수들까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취업률을 위해 제자들에게 싸구려 일자리를 강요하는가 하면, 졸업생들에게 전화로 구직활동 대신 비정규직 취업을 부탁하기도 한다. 대학의 취업률이 학교 뿐만 아니라 교수 개인의 일자리까지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대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강원도의 한 사립대학에서 환경공학을 가르치는 B 교수는 지역소재 회사들을 찾아다니며 ‘단기 인턴’을 뽑아달라 부탁하고 있다. 고용보험을 한 달만 내도 취업으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졸업하고도 취업을 못한 학생들은 해당 업체에 한달 동안만 사원으로 등록된다. 실제로 일을 하거나 취업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졸업생들은 한달 뒤 다시 구직 활동을 해야 한다. B 교수는 “취업 활동을 해야 하는 졸업생들을 오히려 방해한다는 생각도 든다”며 “그러나 학과 통폐합 같은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취업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교수들이 제자들의 취업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당장 취업률이 평가 요소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각 대학이 실시하는 자체 평가 뿐만 아니라 정부도 대학 재정 지원사업 평가 지표에 취업률을 포함하는 등 취업률을 가장 중요한 척도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부실대학 선정 기준에 ‘취업률 51%’를 포함하면서 대학들의 취업률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특히 취업 여부를 산정하는 기준이 ‘한달 동안 고용보험료 납입’이다보니 각종 편법을 이용해 취업률을 올리는 현상이 만연화됐다. 이른바 ‘유령 사원’으로 취업을 시키거나 전공과 상관없는 단기 일자리에 졸업생들을 강제 취직시켜도 모두 ‘취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최근 한 전문대학에서 용접학과를 졸업한 이재수(30) 씨는 “졸업식에서 전공을 가르쳤던 교수가 전공과 상관없는 회사에 취직하기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뜩이나 취업 문제로 힘든데 학교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했다.

대학 뿐만 아니라 국비지원을 받는 직업학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정부의 평가 대상 중 취업률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면서 ‘학생 가려 받기’, ‘위장 취업’ 등 각종 편법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학원은 입학 단계에서부터 취업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지원자들을 정원이 미달했더라도 탈락시키기도 한다.

한 취업학원 관계자는 “정부가 평가하는 지표가 취업률 밖에 없으니 다음연도 국비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취업률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며 “취업률 광고를 오히려 정부가 조장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osy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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