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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25. 모로코 페스서 ‘바가지 택시요금’ 실랑이 ‘씁쓸’
[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카사블랑카의 CTM버스터미널은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다. 첫날 도착해서 헤매던 거리지만 이제는 거리를 잘 안다. 우체국에 들러 어제 쓴 엽서를 부치고 터미널로 가는 길에서 첫날 가려던 숙소 이름을 발견한다. 원래의 주소지가 아니고 새로 리모델링한 데다가 초행이라 미처 못 보고 지나친 것이다. 덕분에 카사블랑카에서는 뜻하지 않게 호텔에서 이틀이나 머물면서 조식도 잘 먹고 비싸게 편안하게 쉬다가 떠난다.

모로코 국영 버스인 CTM(Compagnie des Transports Marocains)은 규모도 크고 노선도 다양해서 여행자들이 많이 이용한다. 수프라 투어버스(Supratour bus)도 모로코 철도국에서 운영하기 때문에 기차 노선과 비슷하다. 마치 비행기 탑승처럼 큰 짐은 따로 부치고 수하물 요금도 무게에 따라 내야 한다. 내 배낭은 늘 5디람 정도를 낸다.



배낭을 분실하면 낭패라서 내 짐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살핀다. 에싸위라에서는 버스 티켓 카운터와 짐 카운터가 바로 옆에 있어서 함께 처리를 해주더니, 이곳 카사블랑카 터미널은 규모가 커서 그런지 일단 부스에서 버스 티켓부터 사야 한다. 짐의 무게를 재고 수하물 요금을 내고 부치는 부스는 한쪽에 따로 있다. 큰 터미널이라 탑승시간이 가까워져야 짐을 부칠 수 있고 맡겨진 짐은 버스별로 모아서 작은 이동용 수레에 올리는 사람도 따로 있다. 반드시 이런 시스템이 필요할까 싶기는 해도 시스템이 잘 운영되고 있어서 안심이 된다.

페스(Fes)로 가는 티켓을 사고 짐을 부치고 나서 홀가분한 기분으로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탑승하는 곳은 무슨 비행기 탑승게이트도 아닌데 자기가 타야 할 버스가 도착해야만 직원이 티켓을 확인하고 문을 열어준다. 몇 번을 일어서서 가보지만 직원은 눈을 찡긋거리며 친절한 얼굴로 기다리라는 손짓뿐이다.

기다리던 버스가 온다. 무슬림들이 대부분인 아프리카의 나라이지만 전통적인 메디나가 있으면서도 신시가에는 유럽의 분위기가 넘치는 곳, 모로코가 아프리카 속의 유럽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도시 카사블랑카를 떠난다.



도시 간 이동은 직행이 없어 카사블랑카에서 버스가 출발하면 라바트를 거쳐 페스로 이동한다. 페스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한 후 인터넷으로 예약한 호스텔까지는 택시에 오른다. 운이 나쁜 건지 모로코 어느 지역에서도 나는 택시 기사와는 흥정을 하게 된다. 말없이 미터기를 켜는 기사는 한 사람도 못 만났다.

오늘의 택시기사는 페스의 메디나에 근처에 차를 세우더니, 처음 흥정한 돈을 주었는데도 요금을 더 달라는 것이다. 급기야 화를 내며 내가 준 요금을 좌석에 팽개치기까지 한다. 페스의 메디나는 길을 잃기 쉽다고 하고 모르는 곳에 데려다 놓는 기사도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신경이 곤두선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택시 안에서 기사가 화내는 것을 보는 게 더 무서워서 배낭을 움켜쥐고 내린다. 더 이상은 안 되겠는지 택시는 투덜거리며 가버리고 메디나의 휑한 골목길에 나만 덩그러니 남는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내 주변으로 골목에서 놀던 꼬마들이 모여든다. 예약한 숙소 이름만 말했는데도 이미 알고 있다는 눈치다. 더 이상 택시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 어귀에서 내려 난감한 얼굴을 하는 여행자들이 종종 있는 것 같다. 택시가 제대로 데려다 주기는 한 모양이다.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안내하는 곳을 따라간다. 좁은 골목, 높은 벽 앞의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한다. 내가 예약한 호스텔 이름이 적혀있다. 꼬마들에게 감사의 표시로 한국에서 가져간 볼펜을 쥐어주니 활짝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과 목적지를 찾은 안도감이 택시기사 때문에 황당했던 기분을 한 방에 날려준다.

호스텔은 모로코식 분위기로 꾸며졌으면서도 유럽식의 도미토리로 운영되고 있다. 체크인하면서 택시기사 이야기를 했더니 5디람쯤 더 주어도 과한 금액은 아니었다고 한다. 크지도 않은 돈인데 더 주었으면 그도 나도 행복했을까 싶지만 처음부터 흥정을 안 한 것도 아닌데 화까지 내는 택시기사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간다. 모로코에서 택시를 타는 것이 점점 화두가 되어간다.

모로코에 와서 처음으로 도미토리에 들어왔는데 운이 좋은 건지 6인실을 쓰는 사람이 나 혼자다. 방안에 딸린 허술한 목욕탕이나마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좋긴 하다.



모로코의 메디나 중에서도 페스의 메디나는 8000개의 골목으로 이루어진 옛 도시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라고 한다. 관광하기에는 더없이 좋지만, 메디나의 골목들을 다니다 보면 길을 잃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자 혼자는 다니지 말고 밤늦게도 가지 말라는 경고성 멘트들을 수없이 접했다. ‘모로코를 혼자 여행하는 여자’인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유명한 페스(Fes)의 메디나에 드디어 왔다는 설렘보다 메디나의 미로들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더 크다.

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 택시기사와의 실랑이에 기운이 빠진다. 그나마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찾아온 리야드식 호스텔이 맘에 들어 다행이다. 낯선 거리에서 목적지를 찾는 일은 여행자의 일상인데, 오늘따라 피로가 더하다. 마음을 가다듬고 페스 여행 정보를 뒤지기 시작한다. 밤이 늦어도 남은 다섯 개의 침대에는 주인이 들어오지 않는다. 덩그러니 큰 방을 혼자 차지하고 누워 있자니 헛웃음이 나온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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