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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햄, 삼성전자 같은 회사로 키우겠다”
금융인·컨설턴트 꿈꿨던 박정진·경진 형제 의기투합…부친이 만든 국민소시지 ‘천하장사’ 대잇는 生소시지 개발, ‘제2 도약’ 성장역사를 쓰다


1980년대 중반 고(故) 박재복(1949~2010년) 진주햄 회장은 어육소시지 제품을 개발해 집에 가져 왔다. 일명 ‘분홍소시지’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며 공을 들인 제품은 미니소시지 ‘천하장사’였다. 천하장사는 소시지에 치즈를 넣고 풍미를 좋게 만든 한국식 어육소시지로 탄생했다. 일본의 어육소시지는 생선 냄새를 인위적으로 없애지 않는데 비해 한국인들은 비린내를 싫어하는 데서 착안해 개발됐다.

1985년 8월 출시된 천하장사는 육가공소시지 중심의 한국에서 처음 어육소시지로 탄생한 제품이다. 천하장사 누적 매출은 30년 만인 지난해 1조원을 돌파했다. 누적 판매량은 109억개로, 국민 1인당 218개씩 먹을 정도로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 

올해로 창립 53주년을 맞는 진주햄은 2006년 고(故) 박재복 회장의 둘째 아들인 박경진(오른쪽) 부사장, 2013년엔 큰 아들인 박정진 사장이 회사 경영에 합류하면서 재도약하고 있다. 두 형제는 젊은 진주햄으로 변모하기 위해 ‘영 진주 캠페인’을 통해 ‘신상품 위원회’, ‘가족의 날’, ‘포상제도’ 등을 도입하고 신제품 개발 및 혁신에 주력하고 있다. 진주햄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로 만드는 것이 두 형제의 꿈이다.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중견식품기업 진주햄이 천하장사에 이어 한국의 육가공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제품을 출시했다. 박 회장의 두 아들인 박정진(41) 진주햄 사장과 박경진(36) 부사장이 최근 생(生)소시지를 출시하고 육가공 시장에 다시 한번 도전장을 던졌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진주햄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두 사람은 “진주햄을 사람들이 인정하는 회사, 삼성전자 같은 회사로키우겠다”고 했다. 

모기업 조양상선의 파산·해체‘가시밭길’

진주햄은 국내 해운 ‘톱3’ 기업이었던 조양상선 그룹의 계열사로 시작했다. 그룹을 세운 할아버지 고(故) 박남규(1920~2004년) 회장이 인수해 백설햄, 롯데햄과 함께 국내 소시지 시장을 대표했다. 하지만 1992년 조양상선 그룹 계열사였던 제일생명이 정보사령부 부지매매 사기 사건에 휘말리면서 그룹의 사세가 기울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제일생명은 매각됐고, 2010년 조양상선이 파산하면서 그룹은 해체됐다.

“조양상선 그룹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룹의 재무 담당 전문가가 부족했고, 재무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죠. 삼성증권과 시티그룹에서 M&A와 자본시장, 금융, 파생상품 쪽 일을 했어요. 적성도 맞고 재미도 느꼈어요.”


박정진 사장은 서울대 공과대 출신으로 로체스터대 MBA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증권과 시티그룹에서 M&A, 주식, 채권 등을 담당하다 2013년 진주햄에 합류했다.

2006년에는 동생인 박경진 부사장이 진주햄의 구원 투수로 회사에 발을 디뎠다. 경영학도인 그는 컨설턴트로 일하다 회사 실적이 안 좋자 직접 해보기로 했다. 박 부사장은 당시 컨설팅회사에서 주 130~140시간 고된 일을 했지만, 호기심이 많아 일에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아버지는 원래 자식들이 외부에서 더 큰 세상을 보면서 일했으면 하는 바람이셨어요. 컨설팅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진주햄)가 어렵더라구요. 간략한 보고서를 드려보기도 했는데, 생각 만큼 개선이 안 됐죠. 세세한 것까지 아버지가 직접 챙기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직접 일해보겠다고 말씀드렸어요.”

1963년 출범한 진주햄은 1996년 매출 1350억원을 돌파한 뒤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2002년 월드컵 때 천하장사가 잘 팔리면서 매출이 다시 900억원대로 늘었지만, 2002년 이후 매년 10% 이상씩 줄었다. 박경진 부사장이 회사에 들어간 2006년에는 580억원에 불과했다. 박 부사장은 먼저 물류 프로세스와 영업조직에 변화를 줬다.

“전국에 물류창고가 있고 직접 차량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비효율적이었어요. 물류전문기업과 제휴해 제3자물류로 전환했죠. 양산과 논산 공장에 중복생산 설비도 옮기고 일원화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외형이었어요. 직원수가 회사 전성기 때였던 1000명이 넘었는데, 실제 매출은 60% 정도였어요. 안 하면 다 죽는 상황이었으니까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을 했어요.”

그 결과, 진주햄은 2007년에는 직원수가 700명 가량으로 줄었다. 직원 월급도 못 주는 절박한 상황이라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박 부사장은 회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주햄은 2009년까지 어려움을 겪었고, 부친이 돌아가실 무렵인 2010년께 위기를 극복했다.

약 10년 간 진주햄에서 일하면서 가장 잘한 일을 묻자 박 부사장은 천하장사를 중국에 수출한 걸 꼽았다.

“2007년 무렵 빙그레 바나나맛우유가 미국에 처음 수출된 기사를 보고 부러웠어요. 미국은 교민들 위주로 (진주햄이) 조금 팔려서 활성화가 안됐어요. 중국은 돼지고기가 포함된 건 나갈 수가 없어서 소량 들어 있던 돼지고기를 뺀 제품을 만들었죠. 겨우 200박스 물량이라 대기업들은 거절했지만, 저희는 중국 교민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했어요. 이후 천하장사가 아이들에게 주는 간식이 되면서 지난해 매출 110억원을 올렸어요.”

진주햄은 중국을 비롯해 미국, 호주, 홍콩, 동남아시아 등 1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 호주 등지는 교민들이 주로 먹는데, 중국은 현지인들이 많이 먹으면서 수출량이 늘었다.

박 부사장은 “교민이 아닌 현지인들이 소시지를 먹도록 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제2브루어리 공장 업계 첫‘HACCP인증’

박정진 사장은 2013년 회사에 합류했다. 금융전문가인 박 사장은 재벌들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식품업계에서 진주햄이 살아남으려면,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2월 국내 1세대 수제맥주 회사 ‘카브루’ 인수는 두 형제가 시너지를 발휘한 대표적인 사례다. 카브루는 30가지 정도의 맥주를 생산하며 200여개의 레시피를 보유하고 있다. 카브루는 상시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20개 정도로, 대개의 수제맥주 회사들 보다 4배나 많다.

최근에는 카브루 ‘제2브루어리 공장’이 완공돼 월 생산량이 기존 100톤에서 220톤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제2브루어리 공장은 주류업계 최초로 식약처의 ‘해썹(HACCP) 인증’을 취득했다. 그 만큼 위생적이고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진다.

진주햄이 추구하는 카브루의 방향은 ‘다양성’과 ‘창의성’이다. 다양한 종류의 수제맥주를 생산하기 위해 분기에 한번 신제품 개발 관련 콘테스트를 한다.

분기마다 개별적으로 아이디어를 출품하고, 회사 관계자들이 시음해 일부 제품을 신제품으로 내고 포상도 한다. 그 결과 ‘피치에일’과 ‘코코넛포터’가 신제품으로 출시됐고, 내달에는 또 다른 신제품이 나올 예정이다.

“콘테스트를 할 때는 15가지 정도의 제품이 나옵니다. 다들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1등은 상금 100만원을 줍니다. 상품화되면 매출의 일정 부분을 인센티브로 주고 있어요.”(박 사장)

“소비재 회사의 재미는 내가 참여한 제품이 시장에서 판매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재미를 찾도록 신제품 콘테스트는 계속 이어질 겁니다.”(박 부사장)

카브루는 진주햄이 인수할 당시 매출 40억원 규모로, 올해 목표는 60억원이다.

수제맥주 음식점 ‘공방’ 5월부터 흑자

박 사장은 “수제맥주 시장은 성장 속도보다 공급이 더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며 “소규모 맥주 면허를 가진 곳이 인수 당시 42곳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80~90여개로 계속 늘어나고 있어 매출이 급성장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두 형제는 올 2월에는 반포동 서래마을에 자사 소시지와 수제맥주를 판매하는 음식점 ‘공방’을 열어 호응을 얻고 있다. 공방은 단순한 맥주집이 아닌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먹을 수 있는 곳’으로, 5월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흑자를 내고 있다. 공방 2호점도 조만간 문을 열 계획이다.

진주햄의 제품군은 총 500여개에 달하지만 아직 경쟁사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다. 두 형제가 제품에 있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품질’이다. 여기에는 부친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아버지는 늘 품질을 강조하셨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품질이다’,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야 한다’, ‘망하는 한이 있어도 절대로 품질과 돈을 맞바꿔서는 안된다’ 등등 품질 이야기만 하셨던 것 같아요.”(박 부사장)

“소탈하시고 품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매주 4일은 공장에 갈 정도로 자주 들르셨어요. 지금도 공장에 가면 아버지랑 같이 일했던 분들이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박 사장)

박정진ㆍ박경진 대표이사는 진주햄 역사에 획을 그을 사건을 묻자 “생소시지를 한국 최초로 선보인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며 “아직은 생소한 생소시지 문화가 잘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에게 주어진 목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생소시지 개발’ 진주햄 역사의 한획 뿌듯

최근 출시된 생소시지는 국내 최초 비가열 생소시지로, 육즙이 살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훈연으로 향을 입히거나 첨가제 등을 사용해 만드는 기존 가열 소시지와 달리 생고기 본연의 맛을 살렸다. 기존 생소시지는 유통기한이 1~3일에 불과해 대량 유통이 어려웠지만, 초고압공법(HPP공법)을 적용해 신선육의 맛과 품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유통기한을 15일 간 확보했다.

“기존 소시지는 고기를 구우면 빨간 고기가 회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빨간색을 내기 위해 발색제를 씁니다. 이에 비해 생소시지는 아질산나트륨을 비롯한 일체의 첨가물을 넣지 않은 순수 냉장육으로, 도축한 지 5일 이내의 국내산 돼지고기만을 사용하죠. 한마디로 첨가물 없는 가장 신선한 소시지에요. 맛과 품질에 자신이 있는 만큼, 생소시지가 천하장사의 뒤를 잇는 진주햄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제품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박 부사장)

진주햄의 올해 매출 목표는 1300억원이다. 2013년 다시 매출이 1000억원을 넘어선 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 하반기에는 수출팀 인원을 보강해 수출 국가를 더 늘려, 해외 매출 비중을 2020년에는 현재의 두배인 2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장연주 기자/yeonjoo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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