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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맥주 한잔에 3D프린터 피자 한판이요!
-페북 메신저봇 이용 소비자 반응 남아 빚어낸 맥주

-뉴욕 스타셰프, 비헥스社 3D프린터를 피자 단당 셰프로 위촉

-기술이 바꾸는 식문화의 현장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식문화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수 많은 브랜드가 명멸했던 지난 25년 동안 라면 시장은 특정 제품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과자 시장에서 매출 ‘1조 클럽’ 안에 있는 제품들도 대부분 나이를 지긋이 먹은 장수식품들이다. 곤충이 고단백ㆍ저탄소 미래 식량이라고 아무리 홍보해도 쉽게 자리잡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 입맛의 관성이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은 더욱더 가열차게 식문화의 변화를 밀어부치고 있다. 인공지능(AI)은 빅데이터를 수집해 소비자의 기호에 최적화된 음식을 만들어낼 수준에 이르렀고, 3D프린터는 레시피와 그에 맞는 재료만 넣어주면 셰프처럼 요리를 찍어낼 수 있다.





▶수제 맥주 뺨 친다… 세계 최초 ‘AI제 맥주’= 얼마 전 영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AI가 만든 맥주가 소비자들에게 공개됐다. 맛에 따라 ‘골든 AI’, ‘앰버 AI’, ‘페일 AI’, ‘블랙 AI’ 등 4종으로 ‘인텔리전트엑스 브루잉’(IntelligentX Brewing)이라는 런던의 스타트업이 처음으로 선보인 제품이다. 회사는 머신러닝 기업인 ‘인텔리전트레이어’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10x’가 손을 잡고 세웠다.

이 제품은 AI가 페이스북 메신저봇을 이용해 소비자들로부터 제품에 대한 반응을 수집하면 양조업자가 이를 레시피에 반영해 제품을 개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회사는 1년여 기간 동안 이 과정을 수 차례 반복해 제품을 11차례 진화시킨 뒤에야 상품으로 출시했다.

제품 개선에 핵심이 된 기술은 ‘알파고’ 덕분에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이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미래를 예측하고 상태를 개선해나가는 것이다. 소비자가 맥주병에 인쇄되어 있는 코드를 이용해 메신저봇에 접속하면 봇이 소비자의 취향에 관해 질문을 한다. 이 때 ‘자동화 양조 지능’(Automated Brewing Intelligence)이라는 알고리즘이 소비자의 의견을 분석ㆍ학습하고 앞으로 할 질문도 계속 개선한다. 뻔한 객관식 설문지가 아닌 심층 면접이 가능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고 손쉽게 수집ㆍ분석할 수 있다.

회사의 공동설립자이자 머신 러닝 박사인 롭 매키너니는 “AI는 우리가 소비자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해줬다. 그렇게 얻은 피드백은 단순히 어떤 광고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품을 제공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줬다”라고 했다.

소비자의 반응은 뜨겁다. 병당 4.5파운드(약 6800 원)인 이 제품은 판매를 개시한 지 1주일도 되지 않아 모두 팔렸다. 회사는 현재 다음 시리즈 출시를 준비 중이다. 회사의 또 다른 공동설립자인 휴 리스는 매번 새로 내놓는 시리즈가 이전 시리즈보다 더 나은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며, 보다 궁극적인 목표는 메이저 맥주 대회에서 수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맥주는 시작일 뿐 초콜릿ㆍ향수 등 다른 제품들도 머신 러닝을 통해 개선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 피자 맛집 셰프는 ‘Mr. 3D프린터’= 미국 뉴욕의 정통 나폴리식 이탈리안 레스토랑 ‘리발타(Ribalta)’는 세계 최대 여행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er)’에서 별점 5점 만점에 4.5점을 받았을 정도로 유명한 맛집이다.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파스콸레 코졸리노 씨는 피자에 관한 한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셰프다.

그런 그가 피자 담당 신입 셰프로 스타트업 ‘비헥스(Beehex)’의 3D프린터를 ‘위촉’하겠다고 이달 밝히자 세계 요리업계는 깜짝 놀랐다. 코졸리노는 비헥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3D프린터 피자의 재료와 레시피 등을 감독하는 한편, 리발타에 3D프린터를 설치하기로 했다. 그는 단순히 피자를 만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독창적이고 선구적인 회사와 일하게 된 것이 기쁘다”고 했다.

3D프린터는 이미 요리 분야에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달 말 영국 런던에서는 세계 최초로 3D프린터로 인쇄한 음식만을 판매하는 레스토랑이 문을 열 예정이다. 세계 양대 3D 프린터 제조사인 3D시스템즈는 ‘셰프제트’라는 브랜드로 3D 식품 프린터를 개발했고, 3D 프린터 전용 요리책까지 내놓았다. 조만간 3D프린터를 장착한 요리 자판기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D프린터로 요리를 만들려는 시도는 몇 년전부터 있었다. 특히 미 항공우주국(NASA)이 우주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3년부터 관련 기술을 연구하면서 이 분야에 손을 뻗는 기업들이 많아졌다.

가공식품 분야는 요리보다 빠르게 3D프린터를 도입하고 있다. 초콜릿으로 유명한 허쉬는 지난해 초콜릿 프린터를 개발해 선보인 바 있고, 오레오 쿠키로 유명한 스낵 브랜드 몬델리즈(Mondelez)는 그보다 앞선 2014년 쿠키 프린터를 개발했다. 또 세계 최대 파스타 제조업체 바릴라(Barilla)는 지난해 세계 최초로 파스타 면을 뽑아내는 프린터를 개발했다.

머지 않은 미래에는 3D프린터가 일반 가정에 보급돼 냉장고나 전자렌지처럼 필수 주방용품으로 자리잡을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가족 성원 개개인의 입맛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조금씩 성분을 달리한 요리를 손쉽게 출력해 먹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많은 주부들이 식사 준비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탁기가 여성을 빨래로부터 해방시켜 여권 신장에 혁혁한 공을 세웠듯, 3D프린터도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물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뒤집어 말하면 ‘노동으로부터의 소외’가 될 수 있다.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듯, 3D프린터는 주방에서 일하는 많은 셰프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손 맛이나 정감은 사람을 따라갈 수 없더라도 비용이나 시간 측면에서 인간의 효율성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기술이 바꿀 식문화의 유토피아적 전망에 디스토피아의 그림자도 어른거리는 이유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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