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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험금 청구, 왕짜증나는 ‘3000만 실손보험’
1만원이하 미청구 비율 51.4%
진료비 영수증 등 일일이 제출
금액 많으면 보험사 방문 불편
자동청구시스템 도입은 지지부진



#.서초구에 사는 40대 직장인 A씨는 실손보험 가입자다. 그는 병원 영수증을 모아두기는 했지만 귀찮아서 보험금 청구를 자꾸 미루고 있다. 예전처럼 보험사에 직접 찾아가지 않아도 되지만, 온라인 청구를 하려고 해도 영수증을 일일이 사진 찍어서 첨부해야 하는 등 여전히 번거롭다.

실손보험은 3000만명 이상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린다.

하지만 건강보험과 달리 실손보험은 보험금을 받으려면 병원에 치료비를 모두 낸 뒤 진료비 영수증, 보험금 청구서, 신분증, 각종 정보이용 동의서 등을 우편이나 팩스로 보험사에 제출해야 한다. 그나마 액수가 클 경우 의사 진단서 등을 추가로 받아 보험사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

이처럼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일에 쫒기는 30~40대 직장인들은 소액보험금 청구는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

보험연구원이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험금 미청구 조사에 따르면, 1만원 이하 외래진료비에 대한 미청구 건수 비율이 51.4%에 달했다.

소액 진료비에 대해서는 보험가입자 절반 이상이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것이다. 8000원 이하의 약 처방도 49.5%가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보험금 청구 절차를 간소화하고 과잉 진료를 억제하겠다며 환자가 아닌 병원이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실손보험 자동청구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환자의 동의를 받아 병원이 직접 보험 청구에 필요한 진료기록과 함께 실손보험 요청서를 보험사로 보내는 자동화 방식이다. 자동청구 시스템이 시행되면 소비자들이 소액 보험금 청구를 포기하거나 보험금 지급 대상인지 몰라서 미청구하는 사례가 사라지게 된다. 또 각종 서류 발급에 따른 수수료 부담도 덜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경제정책 방향’에서 의료기관의 보험금 직접 청구 추진을 올해의 주요 정책으로 발표했다. 이어 올해초에는 ‘제2단계 금융개혁 방향’을 통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추진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추진은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보험업계와 의료계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이권다툼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의료계의 반발이 거세다. 의료계는 자동청구 시스템이 도입되면 보험사들이 환자의 진료기록을 수익을 창출하는 상품개발에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환자의 민감한 병력이 유출돼 보험료 갱신 또는 가입 거절의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과도한 행정적 부담도 반대의 이유다.

소규모 병원의 경우 별도의 행정인력이 없어 의사나 간호사가 자동청구 업무까지 떠안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환자 진료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서인석 보험이사는 지난달 열린 실손의료보험 제도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보험사가 주장하는 환자 의료정보 보유, 코드 표준화 및 제3자 청구심사제도는 국민의 편의성이 아닌 보험사의 이득만을 위한 것”이라면서 “보험사가 가입자의 건강 정보를 보유함으로써 기왕증을 이용해 보험료를 지급 거절하거나 신규 가입 거절 등에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 반해 보험사는 실손보험 청구 자동화에 긍정적이다.

보험사에게 가장 큰 장점은 보험금 청구가 전산화되면 관련 비용을 절감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도 이 데이터를 이용해서 고객관리나 향후 서비스개발에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보험금 청구 간소화가 되면 소액 지급 건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그동안에는 귀찮아서 청구 하지 않았던 소액 건들이 많았는데 전부 자동 청구가 되면 보험사 입장에서는 지급할 보험금이 늘어나서 손해율이 단기적으로 급증하는 부담이 있다.

또 자동 청구에 따른 수수료 비용도 부담해야 해서 원했던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지 못할 수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자동 청구는 소비자에게 편리하고 보험사도 얻는 효과가 많다”면서도 “비급여진료 명칭(코드) 표준화 등 선행되야 할 과제가 있고 보험업계 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면서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희라 기자/hanir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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