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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현대판 신분제로 본 권력의 이동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 역사를 이해하는 다양한 해석과 틀이 있지만 신분제를 의미하는 ‘카스트’로 권력의 역사를 보는 관점은 낯설다. 옥스포드대 역사학자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 교수는 저서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원더박스)에서 ‘카스트’라는 고대의 틀을 끌어다 역사의 동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카스트는 그저 고귀한 자와 비천한 자를 나누는 제도가 아니다. 경제적 이익집단이자 사상과 생활양식을 모두 보여주는 사회를 구성하는 핵심 틀이다.

저자는 그 대표적인 카스트군으로 군대, 상업조직, 관료제를 꼽는다. 상업적이며 경쟁적인 동기를 앞세운 상인 집단, 귀족적이며 군국주의적 동기를 앞세운 군인(전사) 집단, 그리고 관료제적 또는 사제적 성향의 현인 집단이다. 이 세 카스트가 서로 대립하거나 협력하면서 권력의 지배질서를 형성해왔다는 것이다.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 지음, 이유영 옮김/원더박스

책은 고대부터 근ㆍ현대, 동양과 서양, 경제 이론부터 문학작품까지 종횡하며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새롭게 포착, 세 카스트가 어떻게 손을 잡고 권력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준다.

저자가 상업시대의 도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문학작품으로 꼽은 건 대니얼 디포가 1719년에 발표한 소설 ‘로빈슨 크루소’. 첫 상인시대를 구가하던 18~19세기 영국의 평화를 내세우는 상인의 식민주의를 우화로 드러낸 것이란 해석이다. 무인도에 표착한 크루소는 타고난 상인의 재능을 동원, 절망적 환경을 일종의 천국으로 변모시킨다. 그러나 식인종들이 해치려 들자 무모할 정도의 폭력으로 그들을 몰아낸다. 디포는 전 세계에 평화적 상업 체제를 퍼뜨리는 과업을 위해 동원되는 폭력은 정당하고 간주했다. 크루소가 대변하는 상인-전사 동맹은 상인들이 왕의 특허장을 받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건설한 유럽의 초기 제국들의 모습에서 성과를 찾을 수 있다. 반면 저자가 당시 세속적 현인집단을 대변하는 인물로 꼽은 이는 애덤 스미스다. ‘국부론’은 상업사회를 가장 설득력있게 정당화한 책으로 본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상인과 제조업자를 권력의 지배자로 여기지 않았다. 스미스는 자신과 같은 계몽된 현인 행정관들이 통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영국이 다른 국가보다 비교적 평화적으로 농경기반에서 상업체제로 이행해 간 성공요인으로 상인집단이 단독 지배를 추구하지 않았던 데서 찾는다. 상인 집단이 시장 체제를 강요하면서 일련의 위기가 있었지만 카스트 간 타협을 통해 성공적인 경제 체제가 유지됐고 영국은 전 세계의 모델이 될 만한 사례를 낳았다는 것.

19세기 독일과 일본 등 신흥 강대국의 부상은 현인-테크노크라트와 상인집단의 동맹으로 설명된다. 상인집단의도움으로 중공업 기반 경제체제를 구축한게 주효했다. 그러나 상인 집단이 발전하기 위한 조건, 즉 ‘평화로운 세계’는 전사 집단의 등장으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다.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 귀족-전사 집단은 대중의 신뢰를 잃고 제국도 쇠퇴하게 된다. 덕분에 상인의 독무대가 마련된다.

전쟁 이후 미국은 압도적 패권국으로 부상하며 상인 집단이 지배력을 확장해 나갔다. 전통적인 귀족이 없던 미국은 상인이 쉽게 권력의 중심에 섰지만 기간은 짧았다. 이들의 시장 근본주의, 노동자와 관료제 등에 배타적인 태도, 사회적 불평등이 사회안정을 해쳤기 때문이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귀족 지배 체제의 붕괴를 낳았듯, 1929년 대공항은 상인 집단에 대한 사회적 반발을 불러왔다. 대공항이 야기한 혼란은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다시 권력의 재편이 이뤄지게 된다.

저자는 현인-테크노크라트 집단이 상인을 키우며 권력의 중심을 차지한 현인체제가 붕괴된 게 베트남전쟁으로본다. 현인체제가 좌우 냉전에 과도하게 의지하면서 전사 집단이 다시금 고개를 든 것이다. 1970년대에 오면 상인집단이 패권에 도전한다. 냉전시대를 거치며 전사와 현인 집단은 물론 공산권 붕괴로 노동자 집단마저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처지였다, 적수들이 사라지면서 상인의 가치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며 다보스포럼의 독주가 시작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는 상인의 지난 30년간의 독주는 부의 불평등, 사회불안정을 초래했다고 평가한다.

저자가 그려내는 권력투쟁사를 보면, 대개 카스트들은 동맹을 통해 힘을 키우고 서로를 견제해 왔지만 특정집단이 패권을 잡을 때 그리고 그 실력 행사가 도를 지나치면 결국 격변의 시점이 찾아온다. 그 격변의 결과물은 경제 위기, 전쟁 또는 혁명으로 나타나고 그 뒤에는 다시 새로운 집단이 권력으로 진출한다. 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독주할 때 권력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다시 돌아간다는 교훈이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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