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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我)를 깎아내는 게 조각”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1분에 한 바퀴. 모터가 회전할 때마다 끝에 매달아 놓은 석탄 덩어리가 움직인다. 하얀 종이에 검은 탄가루가 새겨진다. 덩어리에서 가루가 되기까지, 한 번에 3억년의 시간이 깎아 내려간다. 덩달아 나(我)도 깎아 내려간다. 먼지처럼 산산히.

김종영미술관(서울 종로구 평창동)이 선정한 ‘2016 오늘의 작가’ 나점수의 개인전이 지난 17일부터 열리고 있다. 조각가 나점수는 “어떻게 하면 나를 깎아내릴 수 있을지 생각한다”며 “작업을 통해 나를 한번이라도 깎아 내릴 수 있다면 그것만큼 통쾌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작가의 근작과 신작들이 어우려졌다. 마름질 하지 않은 나무의 뾰족뾰족한 표면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인체 조각은 FRP(합성수지 소재)에 집풀, 석고 등을 반죽으로 개어 거칠게 발라 놓았다. 여느 공사장 한 귀퉁이에 놓였다면 이것이 ‘작품’인지 알아채기 힘들 정도다. 

전시 전경. 인체조각에 모터를 심고 프로펠러를 달아 놓았다(맨 왼쪽). 모터는 1분에 한 바퀴씩 움직인다. 자세히 봐야 그 움직임이 보인다.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작업실과 그 인근에서 가져온 흙, 돌, 자갈, 톱밥 등도 작품의 일부로 녹아있다. 조각 작품이라는 결과물보다 조각하는 과정 그 자체에 집중한 작업들이다. 정제되지 않은, 아름답지 않은 조각들에서 원시적인 ‘미감’이 발견된다.

나점수의 작업은 톱으로 시작해 톱으로 끝난다. “꾸미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인위적으로 완성된 것은 함의가 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늘어 놓은 톱밥 따위도 작품의 일부일텐데 보관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에는 “작업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말했다. “작품을 잘 남아 있는 것도 하나의 씨앗이고, 작품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 또한 하나의 씨앗이니 어느 쪽이든 무방하다”는 설명이 사뭇 철학적이다. 

조각가 나점수. [사진제공=김종영미술관]


인체 조각에는 1분에 한 바퀴씩 천천히 움직이는 모터를 달고, 그 끝에 석탄이나 프로펠러를 매달았다. 움직임이있는 ‘키네틱(Kinetic) 조각’인데, 주의 깊게 봐야 그 움직임이 보인다. 작품을 단순히 감상용으로 스쳐 지나갈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맥락과 나레이션을 읽으며 ‘사유’하길 바라는 작가의 의도가 깃들어 있다. 전시는 7월 24일까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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