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CEO 칼럼-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장] 금융권 경쟁력, 핀테크로 결정된다
지난해 가을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계열사인 EIU는 핀테크의 영향과 향후 전망을 가늠하기 위해 각각 100명의 은행 경영진과 핀테크 기업의 임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했다. 조사결과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핀테크의 도전에 직면한 은행의 미래에 대해 은행 경영진들은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는 반면, 오히려 핀테크 임원들이 은행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핀테크 현상은 다소 과장됐으며, 5년 이후에도 은행이 여전히 시장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핀테크 임원들(58%)이 은행 경영진(30%)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았다. 이런 결과는 다양한 금융서비스 분야에서 핀테크 기업들의 도전이 본격화되면서 은행이 ‘해체’되고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성급함과 동시에 핀테크 기업들이 직면하고 있는 과제들이 녹록치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핀테크 기업과 전통적인 은행 각각의 장단점은 분명하다. 핀테크 기업들은 개별적인 금융서비스 영역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거나, 적은 비용으로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핀테크 기업들의 최대 약점은 시간이다. 지급결제와 송금, 환전, 자산관리와 대출 등 대부분의 금융서비스들의 특징은 규모의 경제가 크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즉 사업 초기에 시설투자와 시스템 구축, 인지도 확보 등을 위해 많은 비용이 소요되기 때문에 고객 규모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야 손익분기점을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고객기반 확대의 관건인 인지도와 신뢰도 측면에서 핀테크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또 벤처캐피탈을 통한 자금조달이라는 특성도 이들이 손익분기점 달성까지 시간적인 여유를 갖기 힘든 요인 중의 하나다.

이런 핀테크 기업의 장점과 약점은 은행과 정반대이다. 은행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조직구조와 분위기 탓으로 혁신에 취약하다. 다른 제조업이나 서비스업과는 구별되는, 자산과 부채 측면에서의 다양한 리스크 관리와 엄격한 규제 준수가 비즈니스의 본질적 구성요소인 은행의 입장에서 어느정도는 불가피한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은행의 가장 큰 장점이자 고유한 경쟁력은 모든 금융활동의 출발점이자 종착역, 그리고 동시에 경유지 역할을 하는 수신 계좌에 있다. 은행의 수신 계좌는 지급결제서비스의 결제 계좌로 이용되며, 이체ㆍ송금ㆍ환전에 활용되고,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금이 거쳐가는 통로이며, 대출금이 입금되는 계좌이기도 하다. 그래서 증권 계좌가 없는 사람은 많아도 은행 계좌가 없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거의 모든 금융활동은 은행의 수신 계좌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덕분에 은행 계좌는 다른 금융업종과는 구별되는 은행에 고유한 고객 기반을 제공한다.

산탄데르 북미 법인의 혁신 책임자 라이머(B. Leimer)는 현재 은행들이 고유한 수신업무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 고객에게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업부제 등을 통해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파편화한 점이 바로 문제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지금 은행에 필요한 것은 핀테크 기업들의 다양한 은행 ‘해체’ 시도에 대응하는 ‘재결합’이다. 은행은 수신계좌라는 고유한 장점을 기반으로 하여 고객의 편의성과 효율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다양한 금융 서비스들을 ‘재결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관점은 핀테크라는 명칭으로 진행중인 다양한 시도들이 은행에 대한 도전이라기보다는, 은행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협력해야 하는 대상임을 의미한다. 은행 입장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핀테크 기업 또한 은행과의 협력을 통해 규모의 경제 달성에 필수적인 고객기반 확대가 더한층 용이해지며, 고객들의 인지도와 신뢰도의 획득, 리스크관리와 규제 준수 역량의 제고 등 고유한 취약점을 개선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핀테크를 둘러싼 혁신과 변화의 소용돌이는 외견상 전통적 은행과 혁신기업들 간의 경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EIU 보고서가 지적하듯이 이 싸움에서 궁극적인 승자는 이미 결정돼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금융소비자이다. 소비자들은 과거보다 낮은 비용, 보다 편리한 서비스, 보다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상품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핀테크 기업과 은행이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상호 보완하는 과정에서 우리 금융산업의 경쟁력도 더한층 높아질 것이다.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