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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세돌 vs 알파고 5국]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걸은 이세돌,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세기의 대결 5국, 거꾸로 해석해보니…


[헤럴드경제=김영상 기자] 가지 않은 길. 누구나 사람은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궁금해 한다. 자신이 선택한 길의 기회비용인 가지 않은 길은 평생 머릿속을 맴돌기도 한다. ‘그때 과연 내가 다른 길을 갔다면 지금은 어땠을까‘라며.

그래서 학창시절에 배운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은 영원히 아련하고, 좋은 문구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세돌-알파고 대국 이미지.

이세돌 9단은 패했다. 알파고와의 세기의 대결 5국 중 1승만을 거뒀기에 인공지능과의 대결에선 졌다.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의심치 않던 바둑에서 인공지능에 압도당했다. 결과로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9단은 5국에서 프로스트가 말한 ‘가지 않은 길’을 택하는 모험을 보여줬다. 인간만이 가진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이 9단이 대국 후 “충분히 즐겼다”고 말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

15일 서울 포시즌스호텔에서 열린 이세돌-알파고 바둑대결 5국에서 처음엔 이 9단이 유리했다. 초반에 이 9단은 우하귀 일대에서 큰 집을 확보했고, 알파고를 당황케 했다. 초반 알파고의 실착과 겹쳐 알파고 승리 확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위기감을 느낀 알파고는 상변 세력에 치중했다. 이 9단은 이때 특공대를 투입했고, 그쪽에서 알뜰히 사는 전략을 택했다. 이것이 불안의 출발점이었다.

김영삼 9단은 해설을 통해 “이 9단의 실수가 처음 나온 것 같다. 중앙 세력권으로 미는 게 이 9단의 스타일인데, 왠지 그것을 포기하고 침투한 곳에서 2집을 내고 사는 작전을 택했다. 좀 이상하다”고 했다. 몇 수가 두어지면서 김영삼 9단의 해설은 바뀌었다. “어쩌면 이 9단이 알파고의 집계산 능력을 시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세기의 대국 성사 이전에도 인간은 바둑에서 상상력이 뛰어난 대신, 알파고는 집계산능력이 인간을 압도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어차피 전체 승부는 진 이상, “내 계산 능력도 알파고 못잖다”며 그 도전에 나섰을 수 있다는 게 김 9단의 설명이었다. 4국까지 집계산으로 간 것이 없기에 알파고의 계산능력이 너무 궁금해 그런 시험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초록은 동색이라고 편파해석일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 작전은 나중에 중앙 거대세력권 앞에서 이 9단이 힘들게 중반이후 포석을 둬야 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사활에 자신이 없어 일찍 2집을 내고 살았든, 나중 집계산을 하고 싶은 욕심에 그랬든, 모든 것은 이 9단만이 알 일이다.

이 9단이 5국에서 대모험을 시도했다는 흔적은 또 있다. 좌하변 침투 작전과 동시에 대거 바꿔치기 전술을 쓴 것이다.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좌변에서 큰 바꿔치기가 이뤄지자 박정상 9단은 “이 9단이 5~6집은 손해봤다”고 아쉬워했다. 평범하게 알파고 집을 짓도록 놔두고, 초반에 확보한 우하변 하변 중앙 일대를 지키는 작전으로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불계로 끝났지만, 나중 5국에서 집계산을 하면 이 9단이 한집 반, 두집 반 정도 모자랐다는 게 결론이고 보면 바꿔치기로 인한 5~6집 손해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이 됐다.

5국 후 이 9단은 “충분히 즐겼다”고 했다. 패배 원인을 “내가 부족해서였다”고 쿨하게 인정했다.

패배는 했지만, 이 9단은 그 발언으로 볼때는 프로스트가 말한 ‘가지 않은 길’을 가 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9단은 승부를 떠난 엄청난 희열을 맛봤을 것이다.

세상 사람 중 몇사람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봤겠는가. 이런 면에서 이 9단은 엄청난 선물을 받은 셈이다.

이세돌의 도전은 위대했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ys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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