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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격→공포→희망→환희→감동’…한편의 영화같은 이세돌 vs 알파고 5번기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인류 대표’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세기의 5번기’는 4승 1패를 기록한 알파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기대를 모은 마지막 대국에서 다시 패배의 쓴잔을 들이킨 이 9단은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계’가 흉내낼 수 없는 ‘인간’ 이세돌의 열정과 집념, 도전정신 등은 승패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인간과 기계의 ‘세기의 대결’답게 제 1국부터 5국까지 역사에 남을 드라마틱한 장면의 연속이었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충격과 공포, 희망과 환희, 감동 등 대국을 거듭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충격=세기의 대결 제 1국, 첫 대결부터 예상을 뒤엎고 이 9단이 완패하자 충격은 엄청났다. 아무리 기계라지만 종목 자체가‘인간 최후의 영역’으로 자랑하던 바둑이었고 대국 전 이 9단 역시 강한 자신감을 보여온 터라 충격은 더 컸다.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대인 반상 위에서 전체 판세를 보는 인간의 직관을 아직은 인공지능이 못 이길 것”이라고 호언하던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허사비스 딥마인드 구글 딥마인드 CEO가 알파고의 승리를 ‘달 착륙’에 비유할 정도였다. 일부는 “알파고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이 9단이 탐색을 했기 때문에 2국에서는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공포=그러나 제 2국에서도 이 9단은 알파고에 완패하고 돌을 던졌다. 긴가민가했던 프로 바둑기사들도 “이제는 알파고의 실력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충격은 점차 두려움과 공포로 전이됐다. 인공지능이 압도적인 계산력을 바탕으로 재차 인간을 쓰러뜨리자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아예 공상과학(SF) 영화처럼 ‘인간이 기계에 지배 당하는 세상’에 대한 공포심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희망=하루를 쉬고 제 3국에 임한 이 9단은 또 다시 알파고에 패했다. 인간의 3연패. 전체 5번기의 승부는 알파고의 승리로 결정됐다. 난공불락처럼 보였다. 현재 세계랭킹 1위인 중국의 커제 9단도 “나도 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두렵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불공정한 대국을 중단하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는 시민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9단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알파고가 인간이 넘지 못할 상대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희망도 감지됐다. 기계와의 대결에 점차 적응한 이 9단이 조금씩 ‘이세돌다운’ 수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 9단 역시 “알파고가 분명 약점이 있다”며 설욕을 다짐했다.

▶환희=제 4국. 이 9단은 1202개의 CPU(중앙처리장치)를 장착한 알파고를 상대로 역사적인 첫 승을 거뒀다. 알파고가 항복을 선언하자 사람들은 ‘인간의 승리’에 환호했다. 이 9단의 기가 막힌 묘수가 결함이 없을 것만 같던 알파고의 버그를 이끌어냈다. 이 9단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이번 대국 승리처럼 기뻤던 적이 없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3연패 후에도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불굴의 집념으로 승리를 거머쥔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했다. 바둑을 잘 모르던 사람들마저도 이 9단의 팬을 자처하며 ‘이세돌 신드롬’까지 불기 시작했다.

▶감동=최종국인 제 5국에서 이세돌 9단은 불리한 것으로 판단되는 흑돌을 자처했다. “백으로 한 번 이겼기에 이제 흑으로 이겨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대국은 쉽지 않았다. 5번의 대국 중 처음으로 ‘계가 바둑’이 펼쳐졌지만 결국 중반 이후 벌어진 미세한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다시 패배했다. 그러나 이제 기계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가 놓치고 있던 ‘인간의 품격’을 이 9단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9단이 보여준 불굴의 투지, 겸손함과 도전정신은 도저히 기계가 따라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알파고는 인간처럼 승리를 만끽하지도, 패배에 아파하지도 못한다.

대학생 김형규(27)씨는 “이세돌 9단의 투쟁은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못하는 그야말로 고독한 싸움이었다. 최선의 한 수는 그런 인간의 모습 자체인 것 같다”며 “실패했을 때 아름다운 인간을 봤다. 넘어지고 당황하고 떨리는 모습에서 도리어 인간의 감정을,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알려줬다”고 대국을 지켜본 소감을 전했다.


badhoney@heraldcorp.com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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