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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원짜리 민중미술, 36.5℃의 미학
-민중미술 주재환, 4월 6일까지 학고재갤러리서 개인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민중미술’은 주류 미술계가 꺼내 든 2016년 새 화두다. 모노크롬 계열 원로 화백들의 1970~1980년대 캔버스를 ‘단색화’라는 테마주로 묶어 톡톡히 ‘재미’를 본 화랑들이 동시대 활동했던 정반대 미술사조를 ‘포스트 단색화’ 테마주로 제시했다.

스타트를 끊은 건 가나아트였다. ‘리얼리즘의 복권’이라는 타이틀로 권순철, 고영훈, 신학철, 황재형, 민정기, 이종구, 임옥상, 오치균까지 한 카테고리에 묶어 대규모 그룹전을 선보였다.

대형 화랑의 야심찬 기획은 상반된 평가를 불렀다. 단색 계열의 추상회화에 다소 식상함을 느끼고 있던 화단에 신선한 자극을 줬다는 평가와 동시에,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진 화가들을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의 민중미술로 아우른 데에서 짙은 상업주의가 느껴졌다는 평가다.

어쨌거나 민중미술 테마주에 대한 실험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 두번째는 학고재갤러리다. 학고재갤러리는 주재환이라는 한 명의 화백을 다시, 깊게 보는 것으로 민중미술을 소환했다.

갤러리 측에 따르면 “지금까지 민중미술이 사회적, 정치적 맥락 속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평가돼 온 것에서 벗어나 민중미술 그 자체가 갖고 있는 미학적, 정서적 가치를 되짚어본다”는 의미를 담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안에서만 이해되어 온 민중미술을 재해석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겠다는 뜻이다. 


물 vs 물의 사생아들, 빨래건조대, 캔, 페트병 등, 가변설치, 2005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훔친 수건, 캔버스에 아크릴과 수건, 65×53.2㎝, 2012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전시장에는 회화와 설치작품 50여점이 나와 있다. ‘미학적’ 측면을 부각시켰지만, 정작 작품들에서 시각적으로 미끈한 미감을 찾긴 어렵다.

빈 소주병 두 개로 ‘예술의 크기’와 ‘돈맛의 크기’를 비교하는가 하면, 버려진 캔, 페트병 따위를 빨래 건조대에 넝마처럼 주렁주렁 매달아놓기도 했다.

노끈, 믹스커피, 양은냄비, 불태운 성냥개비, 버려진 음료수병 등 일상생활에서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 혹은 싸구려 재료를 사용했다. 작가는 ‘1000원짜리 미술’이라고 명명했다.

그 1000원짜리 싸구려 미술에서 사람의 온기가 전해진다. ‘민중’을 향한 미술은 거대담론보다 개개인의 미시적 삶을 보듬었다.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근엄하게 에두르지 않고 직접 써 넣었다. 


주재환 작가.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낙타와 바늘구멍 옛날에 도둑 맞았어 폭탄주 마시다가…. 그래도 지옥보단 거기가 더 좋을텐데 라면 봉지커피 끓여줄테니 놀러와요’(‘멋진 신세계’, 2015).

‘훔친 돈이 전혀없는 투명사회에서 사우나의 도난방지용 훔친 수건을 훔친 딸을 혼냈더니 훔친 기억이 없다고 하네’(‘훔친 수건’, 2012).

한편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난 주재환 화백은 휘문중학교 시절 반 고흐에 반해 미술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60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한 학기만에 중퇴했고, 이후 20여년간 미술과는 상관없는 직종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20대에 피아노 외판원, 창경궁 아이스크림 장삿꾼, 파출소 방범대원으로 일하는가 하면, 30대에는 독서생활, 삼성출판사, 미술과생활, 출판문화연구소, 미진사 등을 거치며 잡지사, 출판사 밥을 먹었다.

그는 1980년 현실참여 미술운동 그룹인 ‘현실과발언’ 창립전 출품을 계기로 ‘미술계’에 발을 들였다. 역사적, 정치적 문제의식에 기반한 그의 미술은 삶의 태도로도 이어졌다. 1986년 장준하 선생 새긴돌 건립일, 1990년 4ㆍ19혁명 30주기 기념행사 등 재야 공공사업에 헌신했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자본구조에 대한 비판의식을 작품에 녹여냈다.

전시는 4월 6일까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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