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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센언니 전성시대] “남자들은 호날두에 열광하면서…왜 여성이 여성 선망하면 안돼?”
직장인 A(28ㆍ여) 씨는 섹시하고 당당해보이는 여성들을 동경해 휴대전화나 컴퓨터에 ‘센언니’ 사진을 저장해 놓는 게 취미다. 그런데 A씨는 얼마 전 이를 놓고 남자친구와 갈등을 빚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양성애자면 솔직하게 털어놓으라”며

A씨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던 남자친구가 급기야 최근들어 A씨가 친구와 1박2일 여행을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 A씨는 “남자친구에게 나는 양성애자가 아니고, 단순히 남성들이 축구선수 호날두나 베컴을 보고 열광하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뿐이었다”며 “자꾸 나를 양성애자로 몰아가는 상황이 황당하다”고 털어놨다.

같은 여성에 대한 동경과 호감을 느끼는 것을 뜻하는 ‘걸크러쉬’. 전문가들은 걸크러쉬를 동성에 대한 성적 욕망으로 해석해선 안된다고 선을 긋는다. 성적 소수자인 여성들이 동성(同性)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분명히 다르며, 외려 여성상위 혹은 주체적인 여성에 대한 여성들의 동경으로 보는 것이 더 적합다는 지적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여성들은 일반적으로 다른 여성, 특히 ‘멋진 언니’에 대한 선망이 강하다”며 “학교 안에서도 ‘걸크러쉬’ 현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이것은 성적 취향과 관련있어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매력적인 동성에 대한 호감, 선망 정도의 감정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걸그룹’ 팬들도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열성적”이라며, “그러다보니 걸그룹을 기획하는 회사들도 처음부터 여성 팬을 염두에 두고 기획을 한다”고 덧붙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최근 20~30대 여성들이 느끼는 걸크러쉬는 대리만족과 유사한 감정”이라며, “내가 갖지 못한 모습을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선망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신조어인 ‘걸크러쉬’가 최근 들어 더욱 보편화된 데는 메갈리아 등 여성 혐오를 혐오하는 여성들이 등장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관측한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학전공 교수는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은 과거에 문제시 되지 않았던 여성비하가 표면화되는 과정”이라면서 “걸크러쉬의 보편화도 (메갈리아로 대변되는 여성혐오 저항자들이) 그동안 무신경하게 지나갔던 여성혐오들을 돌아보고 문제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규범의 변화라는 차원에서 볼 때 걸크러쉬와 메갈리아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남성에 대한 혐오가 여성을 향한 동경과 선망을 불러일으켰을 개연성에 대해선 단정지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순종적인 여성이 될 것을 강요받는 현실’에 반기를 들고 나타난 ‘센 언니’에 대한 동경이 마치 남성 혐오로 인해 여성에게 관심을 쏟는 것처럼 비춰질 수도 있지만, 모든 남성 혐오자가 여성을 동경한다고 볼 순 없다는 것이다.

하 평론가는 “일부 남성들의 행태에 대해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차라리 멋진 여성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남성 혐오 때문에 여성을 좋아하게 됐다는 걸 일반화할 순 없다”며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박혜림 기자/r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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