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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로막힌 공유사회③] ‘기부천사’를 체납자로 만드는 세법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 황필상(69)씨는 ‘기부천사’에서 ‘고액 체납자’로 한순간에 전락한 황당한 사례로 알려져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 모진 고생 끝에 뒤늦게 대학에 입학한 황씨는 이후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대학교수가 됐다. 이후 생활정보지 사업에 뛰어들어 수백억대 자산가로 성공한 황씨는 지난 2002년 자신처럼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돕겠다는 결심으로 215억원이라는 거액을 모교에 기부했다. 대학은 현금 15억원과 황씨가 세운 회사의 주식 90%(200억원 상당)로 장학재단을 설립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기쁨은 잠시였다. 6년 뒤인 2008년, 세무서로부터 “증여세로 140억원을 납부하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황씨가 장학재단에 기부한 금액 대부분이 현금이 아닌 주식이라 과세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자산을 공익재단에 기부하더라도 보유 주식의 5% 이상을 출연할 경우엔 증여세를 내야 한다. 재벌 등이 공익법인을 지주회사로 만들어 편법으로 부를 세습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지만 이 때문에 황씨의 ‘착한 기부’ 역시 거액의 증여세를 내야할 처지가 돼 버렸다.

1심 법원은 ‘증여세가 부당하다’는 장학재단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는 세무서의 증여세 부과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이 4년째 판단을 미루는 사이, 재단이 내야할 증여세는 가산세까지 붙어 225억원으로 불어났다. 세무서는 재단이 안내는 증여세를 기부자 황씨가 대신 내라며 고지서를 발부했다. 215억원을 기부한 황씨는 225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할 기막힌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선의의 기부가 세금폭탄으로 돌아온 황씨의 사연이 주목받으면서 고액 자산가의 기부 의지를 꺾는 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기부를 가장한 편법증여는 막되 순수한 고액기부를 활성화할 수 있는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사진=게티이미지]

세법 전문가들 역시 현재 증여세 면제한도가 선의의 기부를 막고 기부문화를 축소시키는 반작용을 일으키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세제 혜택을 이용한 편법세습을 막으려다 선의의 기부자들까지 기부를 꺼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편 기부 의지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던 소득세법의 경우 지난해 말 세액공제율을 높인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부는 지난 2013년 세법개정을 통해 소득 수준과는 무관하게 ‘기부금액 3000만원 이하는 15%, 3000만원 초과는 25%’의 세액공제율을 적용한 바 있다. 그러나 이같은 세법이 고액 기부자들의 기부 의지를 위축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기부금액 2000만원 초과는 세액공제율은 30%’로 개정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개인의 고액 기부를 이끌어낼 유인책으로는 미미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소득의 50% 한도에서 기부금 전액을 소득공제하며,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프랑스에서는 최대 75%까지 세제 혜택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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