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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 두 살 줄이자①] 중국ㆍ일본도 안쓰는 세계유일 '한국식 나이’ 왜?
- ‘한국식 나이’ 셈법, 법적효력 없고 서열 나누기에 주로 사용
- 사회 곳곳에서 충돌…인간관계 좁아지는 원인이 되기도
- 동아시아 국가 대부분 폐지, 전문가들 “군대식 집단주의 문화 원인”

[헤럴드경제=박일한ㆍ양대근 기자] #. 재수 끝에 대학교 입학에 성공한 김모(20)군은 즐거운 마음으로 찾은 ‘새터’(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오히려 머리만 아파졌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자마자 복잡한 나이 관계를 따져보느라 진이 빠졌기 때문이다. 현역ㆍ재수ㆍ장수생에다가 ‘빠른 나이’까지 구분해서 호칭을 정리하느라 정작 대학생활에 대해서는 물어볼 겨를이 없었다.

대학교 새터 시즌이 시작되는 이맘때 쯤이면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통과의례처럼 호칭 정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다. 외국인 유학생들 역시 한국에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운 점으로 나이와 서열, 존댓말 문화를 꼽는다.

학교에서 벗어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나이 때문에 관공서나 기업 등 곳곳에서 크고 작은 혼란이 일어난다. 한국식으로 새해 나이를 먹었지만 ‘만 나이’ 자체는 그대로여서 충돌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매년 반복되는 ‘한국식 나이’ 논란은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연초부터 주요 포털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참에 우리도 ‘만 나이’로 통일해 불편을 줄이고, 나이도 두 살 젊어지자”는 청원 서명 운동이 시작됐다.

법적으로도 ‘만나이’로 통일됐고, 해외에서도 모두 ‘만나이’를 쓰고 있는데, 고령화 시대에 우리만 굳이 1~2살 더 세는 한국식 나이를 쓸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국은 현재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세는 나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나라다. 중국에서 유래하고 동아시아에서 주로 사용한 이 방식은 태어남과 동시에 한 살을 부여하고 매년 새해마다 공평하게 하나씩 더한다. 반면 서양식인 ‘만 나이’는 0세부터 시작해서 출생일에 나이를 올린다. 해가 바뀌는 것과는 상관없이 각자 생일이 한 살 더 먹는 기준점이다.

동아시아식 셈법의 유래에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 한자 문화권에서 0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1부터 시작했다는 설이 있고, 농경사회에서 해의 길이와 계절 변화를 중시해 그렇게 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인간존중 사상에 기반해 뱃속 태아에게 나이를 적용했다는 설이 있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문제는 ‘세는 사이’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 민법은 1962년부터 법적으로 ‘만 나이’를 기준으로 사용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공문서나 법조문, 언론 기사에서도 ‘만 나이’를 쓰지만 일상생활에서는 관습적으로 한국식 셈법을 적용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특정 인물의 정확한 나이가 모호해지고, 해외에서는 각종 공문서에 나이를 착각해 잘못 기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여기에 12월 31일에 태어난 아기가 하루 만에 두 살이 되고, ‘빠른 나이’ 출생자들의 ‘서열 정리’가 애매해지는 경우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불편 때문에 대부분의 동아시아 국가들은 100여년 전부터 ‘세는 나이’ 방식을 폐지하고 있다. 근대화를 먼저 시작한 일본은 1902년 법령을 제정하면서 ‘만 나이’ 문화를 정착시켰고, 중국에서는 1966~1976년 10년간 진행된 문화대혁명 이후 사라졌다. 심지어 북한에서도 1980년대 이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전문가들은 한국에서 ‘만 나이’가 정착되지 않는 이유로 나이로 존대와 서열을 결정하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목한다. 조금이라도 나이를 높여서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려는 심리인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와 집단주의가 결합해 기존 문화가 변질됐다는 지적도 있다.

경직된 나이 문화로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인간관계에도 제한을 준다는 지적도 있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손윗사람에 대한 공경 문화가 강하긴 했지만 친구를 사귈 때 나이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유명한 이항복과 이덕형의 나이 차는 다섯 살이었고, 이황과 이이는 서른 다섯이라는 터울에도 서로를 벗으로 여겼다.

조현용 경희대 교수는 기고문에서 “옛날에는 친구 사이에 나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학년과 맞물리면서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며 “사람을 만나거나 친구를 사귀는데 나이가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bigroo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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