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러시아를 달군 K팝 한류, 이젠 의료관광 열풍으로
진눈깨비가 흩날리던 지난해 10월31일 러시아 모스크바 도심 쇼핑몰에서 진행된 한국관광페스티벌은 휴식시간 조차 열광으로 가득찼다. 한 무리의 러시아 여학생들이 몰려와 한국 걸그룹 ‘2NE1’ 노래에 맞춰 춤을 췄던 것이다. 박수와 어깨춤이 끊길 새가 없다.
K팝 마니아임을 자처하는 아나스타샤(20)는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고 있고, K팝, 한식, 한국 드라마 모두 좋아해 꼭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한국사람만 보면 말을 걸고 싶단다.
2014년 6월 한국문화관광대전이 개최된 모스크바 베덴하 공원에는 이 나라 국민은 물론 이웃 CIS(독립국가연합, 구 소련의 후신) 한류팬까지 모이는 바람에 러시아 경찰청 추산 첫날 3만명, 둘쨋날 3만5000여명으로 입장객 수를 연일 경신했다.
2013년 싸이가 게스트로 참석했던 러시아 뮤직어워드 행사에는 2만여명의 러시아 관객들이 열광했다. 매년 러시아 도시별로 개최되는 K팝 커버댄스 경연대회에는 해를 더할수록 지원자수가 늘고 안무 수준도 높아진다.
러시아에 언제부터 이런 현상이 생겨났을까. 1990년도 중반 등장한 일식 초밥은 비싼 가격임에도 모스크바 부유층들 사이에 아시아의 웰빙 음식으로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K팝으로 옮겨갔다. 한국 아이돌 그룹의 화려한 춤과 무대연출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며 이 나라 한류시장을 크게 키웠다. 현재 러시아 내에는 26만명에 달하는 한류 동호회원들이 활동한다. 모스크바 내에 한글학당은 2곳인데, 지원자가 너무 많아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는 실정이다.
이제 러시아 사람들에게 한국은 과연 어떤 나라일까. 모스크바 지하철 탑승 후엔 무료 와이파이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이 서비스 진입 과정의 모바일 웹페이지에 한국광고를 싣고 ‘당신이 상상하는 한국을 그려보세요’라는 주제로 항공권 경품 이벤트를 해봤다.
일주일 짜리 이벤트였고, 창작 그림을 그려야 하는 수고를 생각해볼 때 참여자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무려 424점의 그림이 접수됐고 놀라울 만큼 수준 높은 작품들이 많았다.
그림들은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들을 아우르며 소재가 다양하고 흥미로웠다. 그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한국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며 정성을 쏟아 부었을 참가자들 한명 한명이 모두 한국관광 서포터즈로 느껴졌다. 그 감사함에 당첨자를 두 배로 늘려 20명을 선정했다.
러시아는 발레, 문학, 고전음악, 기초과학, 우주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최고를 자랑한다. 콧대 높은 모스크비치(모스크바인)들한테 얻은 이 인기를 어떻게 식지 않게할까.
K팝의 바통은 의료관광이 이어 받았다. 러시아는 공공복지로서의 의료 시스템은 훌륭하나 시설이 낙후돼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자는 해외로 눈을 돌린다. 수술 실력이 뛰어나고 높은 수준의 의료시설과 서비스를 갖추고 있는 한국은 이런 외국의 의료관광객을 유치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러시아는 한국 내 외국인환자 수 3위, 의료비 2위를 차지하는 의료관광의 ‘큰 손’이다. 최근 3년간 러시아 의료관광객은 연평균 49.6%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극동러시아에서 시작된 한국 의료관광 열풍은 이제 시베리아를 넘어 유럽권역인 모스크바에서 보다 더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지난해 3월 러시아 부유층이 집중된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CIS권 최대규모 국제관광박람회인 MITT의 한국홍보관 테마는 모스코비치의 관심사인 ‘의료관광’이었다. 한국홍보관은 세계 1852개 참가부스 중 최우수상을 거머쥐며 참관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분쟁으로 서방국가들의 러시아 경제제재 조치가 심해짐에 따라, 그간 러시아인들의 치료나 휴양 목적지였던 유럽이 편치않다. 이는 한국 의료관광 인기를 치솟게 한 또다른 배경이다.
지난해 11월19일 한국은 러시아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세계 최고 의료관광목적지로 선정된다. 이 나라 온라인 독자 24만여명이 참여해 한국을 1위로 인정한 것이다.
한류는 진화한다. 의료한류 다음엔 어떤 매력포인트가 러시아인들을 감동시킬까. 유라시아에 걸친 러시아문화의 DNA에는 한국전통문화와의 접점은 없을까. 배달민족이 시작된 바이칼의 노마드 DNA를 공유할까…. 세계 각국과 한국 간의 ‘연관성’을 탐구하고, 그 나라 사람들의 결핍에 우리가 채워줄수 있는 재료는 없는지 찾아보는 일은 의미있는 ‘포스트 한류’의 출발점이다.
진수남
한국관광공사 모스크바 지사장
soonam@knto.or.kr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