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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안부 타결 法대로라면] “할머니 피해배상 청구권 여전히 유효”… 실제 배상 가능성은 미지수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한일 양국이 28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 관련 협상을 타결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위안부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적 소송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양국 정부가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매듭을 지은 듯 하지만 이에 상관없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적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3일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란 헌법소원 자체가 헌재의 판단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본안 심리 없이 내리는 결정이다. 즉, 헌재는 한일 청구권 협정이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까지 제한하는지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이옥선 할머니가 “(일본 정부는) 우리가 다 죽을 때를 기다려 배상을 안 하려 하지만 끝까지 공식 사죄를 받고 법적 배상을 받아야겠다”며 한일 합의를 비판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앞서 대법원도 2012년 5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1ㆍ2심을 뒤집고 “국가와 국민 개인이 별개의 법적 주체임을 고려하면 조약 체결로 국민의 개인청구권까지 소멸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우리 법원은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일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번에 타결된 양국간 합의 내용을 보면 일본 정부가 단순히 ‘책임을 통감한다’고만 밝혀 그간 할머니들이 요구해온 법적 책임은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점에서 할머니들의 법적 소송엔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할머니들은 이미 한일 외무장관 회담결과가 나오기 전 서울중앙지법에 ‘빨리 정식 재판을 열어달라’는 내용의 신청서를 지난 24일 제출했다. 할머니들을 대리하는 김강원 변호사는 “조정을 하지 않는 결정을 내리고, 정식 재판을 개시해 달라”며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92단독 문광섭 부장판사에 요청했다.

할머니들의 재판 개시 요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0월 23일에도 같은 내용의 신청서를 법원에 제출한 바 있다.

할머니들이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처음 법원을 찾은 건 지난 2013년 8월이다. 이때만 해도 할머니들은 정식 재판이 아닌 민사 조정을 시도했다. 당시 이옥선 할머니 등 위안부 할머니 12명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각 1억원 씩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 조정을 서울중앙지법에 신청했다. 조정이란 법원이 양쪽 주장을 절충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제도로, 조정이 성립되면 확정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다.

하지만 일본 정부 측은 우리 법원이 두 차례 지정한 조정기일에 출석하지 않는 등 조정 절차에 무대응으로 일관해왔다. 결국 조정절차로는 더 이상 일본 정부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이번에 법원에 정식 재판을 요청하며 대응 수위를 끌어올린 것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이 28일 열린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할머니들 대부분이 고령인 점도 재판의 조속한 개시를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정신청을 냈던 12명의 할머니 중 배춘희 할머니와 김외한 할머니가 지난 2년 사이 세상을 떠나면서 원고는 현재 10명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법원이 결정을 안 해줘서 소송을 못하는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며 “조정절차가 진행중이더라도 언제든지 원고 측에서 소장을 접수하면 소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식 재판이 개시되면 일본 정부 측의 출석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은 진행 가능하다. 형사소송법 63조(공시송달의 원인)에 따르면 피고인의 주거지나 근무지 등을 알 수 없을 경우 법원 게시판 등을 통해 소송내용과 재판 기일을 통보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재판에 응하지 않아도 재판부는 공시송달로 당사자에게 관련 내용이 전달됐다고 보고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우리 법원이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줘 배상 판결을 내려도 실제 집행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다. 양국이 이번 협상에서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약속한 만큼 이를 근거로 일본 정부가 배상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법원 관계자는 “한국 법원의 판결에 근거해 일본 정부 재산을 강제집행하려면 우선 일본 법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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