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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풍 떨어지면 뭐하겠노, 붉은 대게 묵으러 가야제
-경북 울진 후포항으로 겨울맞이 여행


[헤럴드경제(울진 글ㆍ사진)=김아미 기자] 위이이이잉.

“캬악, 퉤에. 에에. 지금부터 박스 오징어 위판하시기 바랍니다. ○○○○ 차 빼세요. 거 배 옆에 차 대시면 안됩니다.”

무쇠 가마솥에서 막 쪄낸 홍게.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매사의 목소리가 확성기 밖으로 흘러 나왔다. 감기에 걸린 모양인지 연신 가래침을 뱉어댔다. 금요일 오전 9시 30분 경북 울진 후포항 수협위판장. 주말 장사를 앞둔 인근 식당 주인들이 모여 들었다. 영덕, 포항에서도 물건을 떼러 왔다.

오징어가 끝나니 물곰(곰치) 차례다. 강아지만한 것들이 놀란 눈을 뜨고 펄떡인다. 물곰은 대자, 중자, 소자로 나뉘어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제 3교량 ‘노르망디교’. 프랑스 노르망디만에 위치해 있는 다리다.

오전 10시. 드디어 배에서 게 박스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붉은 것들이 쏟아지자 일꾼들이 들러 붙었다. 큰 놈은 큰 놈대로 작은 놈은 작은 놈대로 재빠르게 분류하기 시작했다. 위판장 바닥 전체가 붉은 대게(홍게)로 뒤덮였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 고개를 들어보니 경매가 벌써 끝났다. 실한 것들이 2만5000원~3만원 정도. 오늘은 좀 비싸게 팔렸다. 

제 4교량 ‘하버교’를 지나는 등산객들. 하버교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있는 아치교의 이름이다.

감기 몸살 앓던 어느날, 한 지인의 전화. “울진에 게 먹으러 가야죠.”

게 맛을 제대로 알게 된 건 올해 5월 울진에서였다. 끝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울진 홍게 맛은 가히 전국 최고였다. 7~8월 금어기가 끝난 9월부터 수심 2000m 깊은 바닷속에서 홍게잡이가 시작된다. 단풍지는 11월 말, 게 맛도 제대로 들었을 터. 약 봉투 챙겨들고 울진으로 향했다. 

제 5교량을 지나면 3단폭포인 용소폭포가 나온다. 가을 장마로 물이 불어나 폭포소리가 더욱 시원하게 들린다.

▶울진 응봉산 덕구계곡 트래킹…가을이여 안녕=서울에서 자동차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울진 응봉산(북면 덕구리 산186ㆍ해발 998m) 덕구계곡.

계곡 품은 가을 산은 막 해산한 여인네 품처럼 넉넉하고 푸근했다. 진록도 홍엽도 다 떨궈내며 번뇌마저 떨쳐버린. 잦은 가을비로 계곡 물도 탱탱 불어 있었다.

덕구계곡 입구부터 용소폭포를 지나 천연온천 원탕까지, 2㎞ 거리 계곡 트래킹에 나섰다. 비에 젖은 나무데크와 돌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빠른 걸음으로 1시간여 걸리는 거리지만, 쉬어가기에 따라 2~3시간도 걸리는 코스다. 

제 8교량 ‘취향교’. 경복궁 향원정을 본 따 만들었다.

계곡 입구에 자리잡은 덕구온천은 산 속 깊은 곳에서 자연 용출되는 온천수를 끌어다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온천 원탕까지 굵은 쇠 파이프가 연결돼 있다. 계곡을 따라, 온천 파이프를 따라 촉촉히 젖은 낙엽을 융단처럼 밟으며 걸었다.

계곡에는 12개 다리가 있다. 제 1교량인 금문교를 지나 서강대교, 노르망디교, 하버교, 크네이크교, 모토웨이교, 알라밀로교, 취향교, 청운교, 트리니티교, 도모에가와교, 그리고 제 12교량 장제이교까지다. 금문교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서강대교는 말 그대로 서울 한강의 서강대교를 딴 것이다. 전세계 유명한 다리들을 미니어처로 재현한 것. 실물과 똑같지는 않지만, 다리를 세며 걷는 재미가 있다.


응봉산 덕구계곡 숲길. 비온 뒤 촉촉히 젖은 숲길이 운치를 더한다.

제 5교량 크네이크교를 지나니 그 유명한 3단 폭포 ‘용소폭포’다. 계곡물이 여름 장마 때보다 더 불어나 있던 터라 물소리가 우렁차다. 귀는 물론 마음 속까지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제 10교량 트리니티교를 건너 정상과 원탕 가는 갈림길을 지나니 연리지가 서 있다.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키더니 윗부분에선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 있다. 예전에는 지극한 효심의 상징이었지만, 지금은 연인간 부부간 애정의 돈독함을 비유한다고. 연인과 함께 왔다면 기념 사진 한 장. 없으니 패스. 

계곡을 따라 12개 교량을 지나면 맨 끝에 덕구온천 원탕이 나온다. 자연 용출 온천수가 샘물처럼 뿜어져 나온다.

마지막 교량을 지나니 온천 원탕이다. 쇠파이프로 된 송수관에 앉아 보라는 글귀가 써 있다. 손을 대 보니 따뜻하다. 덕구계곡 온천 원탕에는 고려말, 사냥꾼들에게 공격받은 멧돼지가 이곳을 들어갔다 나와 금세 회복하고 쏜살같이 사라졌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칼슘, 칼륨, 철 등이 함유된 42.4℃ 자연용출 온천수로, 신경통, 류마티스성 질환, 피부질환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포항 ‘왕돌수산(054-788-4959)’에서는 무쇠로 만든 가마솥에 게를 찐다.

발을 담그고 쉬어갈 수 있도록 발 모양으로 된 작은 온천탕도 만들어놨다. 맑고 차가운 숲 공기 마시며 따뜻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온 몸에 피가 도는 느낌이다. 언제 아팠냐는 듯.

안내 게시판에는 온천수 족욕 후 계곡 찬물에 2~3분 발을 담그라고 써 있다. 근육이 이완된 상태에서 움직이면 발목에 무리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후포항 수협외판장의 금요일 아침. 막 배에서 내린 물곰(곰치)을 경매에 내놓는 중이다.

▶울긋불긋 단풍 떨어지니 붉은 대게 맛 들었네=드디어 울진 홍게를 맛 볼 시간. 후포항에서 소문난 맛집을 찾았다.

후포항 왕돌수산은 인근에서 유일하게 무쇠 가마솥에 게를 쪄 내는 집이다. 한 가마솥에 최대 200마리, 15~17분 동안 증기로 게를 쪄내기 때문에 단체 손님들이 한꺼번에 와도 방금 찐 듯 따뜻한 게를 맛볼 수 있다.

우럭지리(맑은 탕) 맛도 일품이다. 팔뚝만한 우럭 한마리를 통으로 넣어 끓인다. 시원한 국물 맛이 아침 해장으로 딱이다. 메뉴판엔 없으니 따로 주문할 것. 

물곰 경매에 몰려든 사람들.

왕돌수산의 주인장 임효철(47) 씨는 후포항에 소문난 ‘장사의 신’이다. 무엇보다도 맛있는 게를 팔기 때문이다.

“게 상태가 안 좋으면 그날 게 장사 접어요. 손님들이 와서 묻죠. 수족관에 게가 있는데 왜 안 파냐고. 저건 탕 끓일 때 쓰는 겁니다 하고 돌려 보내죠. 사실 그냥 팔아도 되는 데 말이죠. 그런데 그 손님들, 결국엔 다시 옵니다. 그만큼 믿어준다는 거죠.”

맛집으로 매스컴도 많이 탔지만 가게 벽면에는 그 흔한 방송 캡처 사진 하나 없다. 방송 탄 걸로 장사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대신 고흥군 라이온스클럽, 대창면 농촌지도자들 같은 일반인 방문객들이 맛있게 잘 먹고 간다는 싸인이 빼곡하다. 

오징어, 물곰 등 모든 수산물 경매가 끝나면 홍게 차례다. 게 박스를 내리자마자 일꾼들이 들러붙어 분류 작업을 시작한다.

임 씨는 전라남도 여수 출신의 아내와 어린 시절 눈이 맞아(?) 스물 셋에 첫 아이를 낳고 젊은 시절부터 서울, 대구 등 전국을 돌았다. 횟집 주방장도 해 보고 자기 장사도 해 봤지만 결국 그를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한 곳은 고향 울진. 지금 가게에서 십여년 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그는 이제 잘 될 때에는 하루 매출 5000만원까지도 거뜬히 올릴 정도라고. “서민 갑부 아니냐”는 말에 손사래를 친다. 아직은 연 매출 10억원도 안된다면서.

이튿날 임 씨와 함께 후포항 수협위판장으로 향했다. 밤바다에서 건져올린 각종 수산물들이 경매에 부쳐지는 곳이다.

밤일을 마친 뱃사람들이 통발이며 그물 따위를 손질 중이다. 선장 정도를 빼면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오징어, 물곰, 홍게가 차례대로 배에서 내려졌다. 내리는 대로 곧장 경매가 시작된다. 

수협 위판장의 절대권력, 경매사가 홍게 늘어놓은 한 중앙에 서 있다.

후포항 경매는 호가가 아닌, 손바닥만한 나무 칠판에 가격을 써 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반 관광객은 경매에 참여할 수 없다. 숫자가 새겨진 군청색 모자를 쓴 이들이 경매꾼들이다. 이들이 가격을 써내면 위판장의 절대권력, 경매사가 하나씩 열어보고 제일 높은 가격에 낙찰을 한다. 이날 임 씨는 물곰 작은 놈 4마리를 9만6000원에 가져갔다. 가격은 그때 그때 다른 데 주말을 앞둔 금요일라 그런지 게 값이 비싸 다음 배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홍게와 대게의 차이. 대게는 수심 100~400m에서 그물로, 홍게는 그 보다 더 심해에서 통발로 건져 올린다. 더 깊은 데서 잡아 올리는 홍게가 대게보다 싼 이유는 더 많이 잡히기 때문이라고. 홍게는 금어기를 제외하고 9월부터 6월까지 조업이 가능한데 단풍 떨어질 때 쯤 맛이 제대로 든다. 12월이 되면 대게가 올라온다. 맛의 차이가 있다면 대게가 조금 더 담백하다는 정도.

울진 ‘게 마니아’에 따르면 대게나 홍게나다. 그만큼 둘 다 맛이 끝내준다는 뜻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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