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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ADERS CAFE] 나치의 독일군 무엇이 괴물로 몰았나

  • 기사입력 2015-10-16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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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병사·장교들 10만건 도청기록 접근
인정받기 위해 명령없이 민간인 사살
학살자로 만드는 사회적 프레임 고발
마지못한 행위 ‘기존 시각’뒤집어



 “폴란드 전쟁 둘째 날에 포즈난 철도벽에 폭탄을 투하했어요. 폭탄 열여섯발 중 여덟 발이 도시 안으로 떨어졌지요. 집들 한가운데로요. 즐겁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셋째날에는 아무러면 어떠냐는 심정이 되었고 넷째 날에는 즐거워졌어요. 아침의 식전 오락 같은 거였지요. 들판에서 달아나는 군인들을 기관총으로 몰아가고 총알 몇 발로 뻗게 만드는 일이 말이에요.”

“극단적 폭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어쩌면 어떤 무기 하나, 비행기, 아드레날린, 평소에는 지배하지 못하는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느낌 정도면 족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살인이 허락되는, 심지어 권장되는 사회적 프레임이면 족할지도 모른다.”(‘나치의 병사들’에서)

1940년 4월30일 독일 정찰장교 폴 소위가 공군 조종사 마이어 소위와 나눈 대화다. 마치 개미 소굴을 흩트리고 사방팔방 튀는 개미를 짓밟거나 해치는 장난 쯤으로 여기며 즐거워하는 폴 소위의 무용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치의 병사들/죙케 나이첼, 하랄트 벨처 지음, 김태희 옮김, 민음사
죙케 나이첼 런던정치경제대 교수가 미국과 영국 기록물보관소에서 독일과 이탈리아 포로와 장교들을 도청한 10만여건의 자료를 찾아 분석한 ‘나치의 병사들’(민음사)은 나치와 전쟁, 유대인 절멸작전과 관련한 기존의 연구결과와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그동안 전쟁 연구가 결과론적인 입장에서 증언과 인터뷰를 통해 전쟁의 동기와 과정, 인간성에 접근했다면 도청기록들은 아무런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 당시 현장의 군인들이 어떻게 전쟁을 바라보고 소통했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저자들이 찾아낸 수많은 도청기록들은 전쟁 중 일어난 광적인 살인과 강간, 어린아이 살해 등을 마치 자랑처럼 상대방에게 늘어놓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유대인과 러시아인 포로들을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하거나 강제 복무중인 여성들을 지프차로 끌어올려 강간한 얘기들을 그들은 즐겁게 떠들어댄다.

전쟁 전에는 평범한 남자였던 이들을 광기로 내몰고 괴물로 만든 건 무엇일까. 저자들은 이 의문을 프레임으로 풀어간다. 즉 인간은 자신이 속한 문화와 사회적 틀, 프레임을 통해 사건과 경험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전쟁이란 환경은 생활이었고, 집단 내에서 병사와 장교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행동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쟁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 소속감과 역할, 가치판단에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한 것이다. 전시가 아니라면 극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인종주의, 군사적 가치가 숭배의 대상이 됐다. 그들은 전쟁상황을 적극적으로 즐기기도 하고 거기서 자기의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저자들은 심지어 명령하지 않은 목표물을 찾아서 폭탄을 떨어뜨리고 민간인을 기관총으로 사살하는 일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의무도 아닌데도 전쟁 프레임 속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면서 각종 욕망을 충족했다고 보고한다.

이는 1933년 히틀러가 막 집권할 당시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다. 저자는 ”둑일인들은 1939년 9월의 전쟁을 1914년 전쟁만큼 열광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전쟁을 수행하면서 1700만명의 남자들이 순조롭게 국방군으로 통합되어 1945년까지 전쟁을 지속하는 일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일사회가 전쟁의지로 충만하게 된 것은 모든 남자들이 전쟁에 찬성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그들이 군대의 가치 체계를 공유하거나 최소한 이를 문제시하지 않는 프레임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쟁의 프레임은 일상이 요구하는 사회적, 도덕적 틀과는 다르다. 전쟁의 프레임이 요구하는 행동들과 기회, 구조들은 폭력을 억제하거나 제한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주장, 즉 나치 시대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마지못해 부역했을 뿐이며 그것은 ‘생각없음’에서 비롯된 행위라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다. 저자들은 전쟁이라는 상황 자체가 하나의 규범이 돼 구성원들이 이 기준에 맞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는 입장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악이 집단 심성이나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쟁에서는 지식인이든 아니든, 인종주의자든 아니든 개인적 편차는 거의 없다는 점을 저자들은 우선 냉정하게 제시한다. 다만 상황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서 당시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반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경우, 혹은  전체 프레임에 맞설 수 있는 또 다른 프레임을 가질 경우, 지배적인 프레임에 갇히지 않을 수 있는 틈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가장 확실한 행동은 ‘사전 에방’이다. 그런 거대한 사회적 구조가 나타나지 않도록 예민한 비판적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다. 강고한 사회적 상황 앞에서 개인 차원의 도덕이나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것은 무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프레임을 통한 악에 대한 통찰은 일상에도 새로운 눈을 제공한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내부자들을 억누르는 것은 자칫 하나의 프레임으로 얽어맴으로써 쉽게 악에 함몰될 우려가 높기 때문이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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