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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카페] ‘존엄공간’ 궁궐, 그안이 미치도록 궁금하다

  • 기사입력 2015-09-1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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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 예술품이자 정치의 현장
경복궁·창덕궁 등 5대 궁과 後苑속
역사·사건·왕실일상 秘話 가득
권역도 세부영역도 등 그림 다수 배치
직접보듯 궁궐의 모든것 길잡이役 톡톡


“무릇 궁궐이란 임금이 거처하며 정치를 하는 곳이고 모든 백성이 우러러보고 있으니 그 제도를 장엄하게 하여 존엄함을 보이고 그 이름을 아름답게 하여 경계함을 나타내야 한다. 그 거처를 아름답게 꾸미고 건물만 화려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조가 ‘경복궁지’에서 언급한 이 대목은 궁궐의 정의라 해도 좋을 듯하다.

역사에 대한 높은 관심과 복고 바람으로 궁(宮)이 뜨고 있다. 국민의 휴식처로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정작 궁궐에 대한 이해는 그동안 피상적인데 그쳤다. 궁궐이 어떤 철학적 바탕 위에 세워졌으며 각각의 건물이 지닌 뜻과 의미는 무엇인지, 건축의 구조와 거기서 생활했던 사람들의 일상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안내서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한국 전통건축의 권위자로 꼽히는 김동욱 경기대 명예 교수를 비롯, 전문 연구자들의 모임인 역사건축기술연구소가 펴낸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돌베개)은 책 이름에 어울리게 궁궐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궁궐은 나라의 가장 으뜸가는 곳이었다. 그만큼 궁궐의 건축물 역시 당대 최고의 기술과 최고의 자재와 최고의
격식을 갖추어 지어졌다.”‘ (우리 궁궐을 아는 사전’에서)

책은 조선 궁궐 전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5대궁으로 꼽히는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창덕궁, 창경궁의 역사로부터 당대 건축양식의 최고봉으로서의 건축학적 가치 등을 서론 격으로 담았다. 이어 저자는 일반적으로 경복궁을 소개하는 통념에서 벗어나 창덕궁과 창경궁, 후원을 한 권으로 먼저 다뤘다.

창덕궁은 애초 이궁으로 출발했다. 1400년 조선 제3대 왕 태종은 개성에서 즉위하고 한양에 이궁을 새로 짓도록 했다, 부왕이 세운 경복궁에는 돌아가려고 하지 않은 것이다. 이어 세종은 경복궁으로 거쳐를 옮기고 창덕궁은 사신을 접대하는 데만 썼다. 그러나 수양대군에 의해 단종이 왕위에서 물러나고 사육신이 죽는 일이 벌어진 데다 왕이 머물기 부적합한 터라는 풍수설 등으로 세종 이후의 역대 왕들은 창덕궁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임진왜란으로 둘다 불에 탔지만 창덕궁을 먼저 복구한 것도 이런 풍수설에 기인한 것이다. 이 때문에 창덕궁은 복구가 완료된 광해군 3년 1611년부터 1806년 고종이 경복궁을 중건, 옮기기까지 257년간 조선왕조 법궁의 지위를 누렸다.

이 책은 궁의 역사적 사실 뿐만 아니라 왕실 가족의 생활공간이었음을 중시해 궁궐을 삶의 공간으로 되살려낸다.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 일어난 일들에 대한 수많은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가령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은 왕실의 큰 행사가 모두 치러진 곳으로 창덕궁이 창건되던 1405년에 지어졌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됐다가 다시 지어 200년간 건재해온 인정전이 1803년 전소되는 사고가 났다. 당시는 정순왕후가 어린 순조가 성년이 돼도 수렴청정을 거둘 뜻을 비치지 않던 차였다. 조선 법궁의 정전으로 쓰인 곳이 불타 버리자 충격을 받은 정순왕후는 보름만에 수렴청정을 거두게 된다. 인정전은 곧 바로 다시 짓는 공사에 들어갔지만 정순왕후가 불에 탄 주춧돌의 탄 부분을 눈에 띄지 않게 돌려놓은 채 그대로 쓰도록 지시함에 따라 나중에 건물이 기우는 일이 발생해 다시 전면적 수리에 들어간다. 정순왕후의 마음이 급했던 까닭이다. 책은 여기에 당시 인정전을 지은, 강원도 회양 출신으로 수원화성 축성 때 팔달문을 지은 목수 윤사범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왕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던 선정전 뒤쪽에는 연회를 베풀던 보경당이 있다. 후에는 후궁의 처소가 되거나 왕자들이 어릴 때 머무는 장소가 됐다.

규장각은 왕과 젊은 학자들이 특히 사랑한 공간. 당초 후원 안에 있었으나 신하들이 드나들기 어려워 정조 때 선원전 서편에 새로 건물을 짓고 이문원이라 이름했다. 위치는 대보단에 제사 지내러 갈 때 지나치는 곳이었다. 정조는 해마다 거르지 않고 서너 차례 이문원에 머물렀다. 전날 저녁에 이문원에 와서 밤을 지새고 한밤중에 제례를 지냈는데, 이 때는 이문원에 근무하는 규장각 각신들과 고전의 경전에 대한 토론도 벌이고 시를 지어 나누기도 하는 등 격의없는 시간을 즐겼다. 1781년 3월에는 규장각 각신들과 ‘근사록’을 두고 서로 번갈아 가며 밤새워 토론한 내용을 ‘이문원강의’라는 책으로 간행하기까지 했다. 이 때 규장각 각신 중에는 정약용도 있었다.

책에는 왕 뿐만아니라 그를 지켜보던 숱한 백성들, 허술한 담장을 드나들었던 궁궐 어귀의 개에 관한 이야기, 밥을 짓고 살림을 준비하던 우물터까지 소상히 보여준다. 그동안 궁궐 안 구석구석 알지 못했던 소소한 공간과 그 쓰임새, 그곳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궁궐은 유교를 국가 통치의 기본으로 삼은 조선의 국가적인 의례의 장소였기 때문에 곳곳에 유교철학이 반영돼 있지만 한편으론 생활인들의 거처였던 만큼 시대에 따라 다양한 변용이 이뤄졌다.

가령 궁궐 실내 바닥의 경우 서서 움직이는 공간은 검은 돌이라 불리는 전돌로 이뤄졌다. 편전도 처음에는 건물 바닥이 전돌이었으나 나중에는 온돌로 바뀌었다. 왕이 잠을 자는 침전은 사방으로 상궁들이 머무는 툇간을 두었는데 본래에는 마루를 깔았다가 온돌로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궁궐 실내에 온돌이 늘어나면서 땔 나무 비용이 크게 늘어나고 궁궐 외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궁궐의 시각화이다. 종래 관련 책들이 궁궐의 사진 몇 장으로 대신한 반면 이 책은 한 눈에 궁궐 전체를 알기쉽게 조망할 수 있는 권역도와 세부 영역도, 조선왕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많은 그림들을 곳곳에 배치해 내비게이션의 역할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상상의 길잡이 역할을 톡톡이 한다. 또 우리가 궁궐을 들어갈 때 만나게 되는 발길 순서에 맞게 건물에 대한 설명을 배치한 게 흥미롭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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