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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까쓰’는 ‘짜장면’이 될 수 있을까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2012년 ‘닭볶음탕(닭도리탕)’을 두고 국립국어원과 소설가 이외수 씨 사이에 재밌는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국립국어원이 ‘닭도리탕’은 ‘닭’과 ‘새’라는 뜻의 일본어인 ‘도리(とり)’ 그리고 ‘탕(湯)’의 합성어라며 ‘닭볶음탕’으로 순화해 부를 것을 권고하자, 이에 이 씨가 ‘도리’는 일본어가 아니라며 반박한 것이다. 이 씨는 ‘도리’가 ‘둥글게 베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 ‘도리다’의 어간이라고 주장했다. 국립국어원의 주장대로라면 ‘닭도리탕’은 ‘닭새탕’이라는 뜻이 돼 어색하지만, ‘닭을 도려 만든 탕’이라고 해석하면 자연스럽다는 것이 이 씨의 주장이었다. 이 씨는 국립국어원이 순화어로 제시한 ‘닭볶음탕’ 역시 볶음인지, 탕인지 애매모호하다고 비판했다.

사진=아워홈의 대왕 ‘돈카스’

닭볶음탕처럼 우리가 먹는 음식에는 어원이 불분명해 여러 이름으로 불리거나, 그 뜻 혹은 표준표기법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는 것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감자탕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기자는 선배들과 함께 간 감자탕집에서 감자라고는 한 점도 없는 냄비를 보고 “왜 감자가 하나도 없지?”라고 볼멘소리를 했다가 무지렁이로 몰린 적이 있다. 감자가 들어가기 때문에 감자탕일 것이라 미뤄 짐작했는데, 선배는 “돼지등뼈를 ‘감자뼈’라고 하기 때문에 감자탕인 거야”라고 지식을 뽐냈다. 이후 기자 역시 후배로 들어오는 새내기들에게 이 지식을 내리물림해주며 널리 전파했지만, 사실 이 역시 근거없는 뜬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돼지뼈를 일컫는 ‘감자’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없을 뿐만 아니라, 축산업계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혹 정육점 중에는 ‘감자뼈’를 파는 곳도 있는데 이는 ‘감자탕에 들어가는 뼈’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중에 이름 붙은 것이지, 애초에 ‘감자뼈’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음식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한 칼럼에서 “감자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감자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겨우 1800년대 초의 일이고, 일상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다”라며 “수천 년 내려온 돼지뼈 이름에 100여 년짜리 감자라는 이름이 끼어들 가능성은 희박하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정확한 어원은 여전히 불분명한 상황이다.

‘설렁탕’ 역시 ‘설농탕’과 뿌리 경쟁을 벌이고 있는 단어다. ‘설렁탕’이 표준어로 완전히 굳어져가고는 있지만 모 유명 프랜차이즈 업체 덕분에 ‘설농탕’이라는 표현도 낯설지는 않다. ‘설렁탕’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비교적 조리가 쉽고 간단하기 때문에 ‘설렁설렁’ 조리한 음식이라는 뜻이 들어있다는 설과 ‘눈처럼 뽀얀 국물’의 뜻을 담아 정했다는 설이 있다.

아주 구체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설도 있는데, 중국의 농신(農神)을 모시던 제단인 ‘선농단(先農壇)’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또 설렁탕의 기원에 대해 처음으로 기록한 책으로 꼽히는 ‘조선요리학’(홍선표. 1940년 발간)에는 “세종대왕이 친경할 때 갑자기 심한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해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할 형편에다 배고픔까지 견딜 수 없게 되자 친경 때 쓰던 농우를 잡아 맹물에 넣고 끓여서 먹었는데 이것이 설농탕이 되었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들은 1940년대에 들어 처음으로 언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어낸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위 사례들과는 달리 어원은 나름 뚜렷하지만 표기가 헷갈리는 음식도 있다. 가령 ‘육개장’의 경우, 소고기를 뜻하는 ‘육(肉)’과 개고기를 넣고 끓은 보신탕을 뜻하는 ‘개장’이 더해진 말이다. 예전에는 소고기가 귀했기 때문에 개를 넣고 끓인 국이 ‘개장’이라는 이름으로 보편화됐다가 나중에서야 소고기가 재료로 쓰이게 되면서 ‘육개장’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닭고기를 재료로 쓴 것에 ‘닭 계(鷄)’자를 넣어 ‘닭계장’이라 이름붙인다거나, 아예 ‘육계장’으로 메뉴판에 표기해 놓은 식당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개장’, ‘육개장’, ‘닭개장’만이 제대로 된 표기라 할 수 있다.

또 아예 언중(言衆) 대부분이 틀리게 쓰는 음식 단어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돈까쓰’라고 잘못 말하는 ‘돈가스’가 대표적인데, 외래어표기법 상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돈가스’가 표준어다. ‘뻐스’가 아니라 ‘버스’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어문 규정을 고집하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다수 존재한다. 의사소통의 도구인 언어를 사람에 맞춰야지, 언어에 사람이 맞추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루크루테스의 침대’처럼 침대 크기에 맞춰 사람 발목을 자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립국어원 역시 점차 이러한 지적을 수용해나가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1년 8월 ‘짜장면’을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의 복수 표준어로 인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수십년 동안 마음놓고 “여기 짜장면 한 그릇이요”라고 외치지 못했던 국민들은 그제야 자신의 삶에서 정착된 언어가 국가의 ‘언어 권력’으로부터 인정받았음에 감격했다. 이는 최소한 짜장면에 있어서 만큼은 더 이상 ‘표준어 범법자’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쯤 “돈까쓰”도 당당하게 외칠 수 있을까.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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