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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최초 여성 정치인의 리더십…신간 ‘정희왕후’

  • 기사입력 2015-08-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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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 세조의 부인 정희왕후는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에 나선 인물이다. 정희왕후는 만만치 않은 정치력을 발휘해 손자 성종을 성군(聖君)로 이끌었다. 신간 ‘정희왕후’(말글빛냄)는 조선 최초 여성 정치인 정희왕후의 리더십을 통해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한다. 여성과 정치를 고민해온 함영이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여성가족 수석전문위원이 지었다.


세조는 조카 단종을 밀어내고 왕위에 올랐다. 정통성이 약한 정권은 늘 살얼음판을 걸어야했다. 세조가 죽은 뒤 차남 예종이 왕위에 올랐다. 예종은 족질(足疾)이라는 병으로 16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예종이 죽자 정희왕후는 다음 왕을 지명해야 했다. 예종의 맏아들 제안군과 예종의 형(의경세자)의 맏아들 월산군, 둘째아들 자산군이 후보였다. 정희왕후는 이중 서열이 가장 낮은 자산군을 택했다. 자산군의 장인은 실세인 한명회였다. 흔들리지 않는 왕권을 위해서는 든든한 배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꿰뚫어 본 것이다.

13살인 자산군(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신하들은 정희왕후에게 수렴청정을 청한다. 한자를 몰랐던 정희왕후는 두세번 사양하다 신하들의 거듭된 요청에 결국 받아들였다. 정희왕후는 세조의 정치를 곁눈으로 봐와 정치감각이 상당했다. 수양대군이었던 시절 세조는 웬만한 대사는 부인과 함께 의논했다.

통치에 나선 정희왕후는 결단력과 추진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결정을 내릴 때는 대신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경연을 통해 현명한 선비들을 만났다.

수렴청정을 시작하면서 양잠을 장려하는 등 민생을 먼저 돌본 것도 여성 특유의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고 저자는 지적했다.

뿐만아니라 적도 감싸는 포용력을 발휘했다. 세조에게 반기를 들어 역적으로 몰린 정종의 아들 정미수를 관리로 등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정희왕후가 비대해진 공신의 권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오히려 키워준 것은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수렴청정 당시 궁녀 두대가 문자를 모르는 정희왕후를 도왔는데, 두대의 여동생이 대문을 열어놓고 뇌물을 받아들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정희왕후가 성종의 부인 윤씨에게 사약을 내리는데 동의해 폭군 연산군을 등장하게 한 것도 비난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성종 6년 정희왕후의 인척들을 거론하며 욕설을 적어놓은 익명서가 발견된다. 이듬해 정희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두겠다고 밝힌다. 권력에서 물러난 뒤 정희왕후는 66세로 죽음을 맞는다. 성종은 장례를 3년상으로 치러 예우했다.

비록 외척 관리에는 실패했지만 정희왕후는 더이상 피를 부르지 않고 왕권안정을 도모하는데 기여한 인물이다. 조선왕조 100년의 기반이 된 경국대전은 성종 때 완성됐다. 성종이 일군 국가백년의 초석은 정희왕후에 의해 준비된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정희왕후가 정적의 앞길을 열어준 화해의 정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장기적으로 본다면 역사는 결국 화해를 이루고 그 화해를 통해 새로운 미래를 그린다”고 말했다.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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