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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상’ 문 턱 걸린 韓 징용자…미쓰비시 ‘사과’도 없어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三菱)머티리얼의 강제노동에 징용된 한국인 피해자들은 ‘배상’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사과조차 받지 못할 전망이다. 미쓰비시 측이 한국인 피해자들은 법적으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다고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측이 이 같이 주장하는 데는 계열사 중 한 곳이 한국인 피해자들과 손해배상 소송 중이라는 점을 감안해, 불리한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또 한국과의 배상문제는 한ㆍ일청구권협정을 통해 끝났다고 보는 일본 정부의 입장도 이들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23일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쓰비시머티리얼의 사외이사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는 전날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노역에 징용된 영국, 네덜란드, 호주의 전쟁포로와 중국인에게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현지에서 미국인 징용 피해자 제임스 머피(94) 씨에게 사과한 이후, 같은 방식의 사죄를 원한다고 밝힌 것이다. 
19세기부터 탄광사업으로 번영했던 하시마섬((端島) 전경. 1940년대에는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섬 모양이 일본 해군 전함인 도사(土佐)와 닮아 군함도(軍艦島)라고도 불린다. 하시마는 1890년부터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가 탄광 개발을 위해 소유했다. 이후 석탄채굴이 사양산업화하자 미쓰비시는 1974년 탄광을 폐쇄하고 2001년 관할 자치단체에 하시마 전체를 양도했다.

중국인에 대해서는 “해법은 돈과 관련될 것”이라며 배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오카모토 이사는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나 배상은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인 피해자들은 법적상황이 다르다”고 말할 뿐이었다.

이 소식통은 미쓰비시 측의 발언에 대해 최근 미쓰비시머티리얼의 계열사인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인 피해자와 손해배상 책임을 두고 소송 중이라는 점을 의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측과 배상문제를 두고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사과 표명이 자칫 배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강제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1965년 한ㆍ일협정에 따라 한국인 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했고, 구 미쓰비시중공업과 현 미쓰비시중공업은 다르다는 게 주된 이유다.

특히 사과에 대해서는 함구 한 채, 배상책임을 면하기 위한 몸부림은 계속 포착된다. 한국인 피해자들은 1999년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벌이다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했다. 이후 국내 법원에서 진행된 소송에서는 일본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자, 미쓰비시 측은 가장 최근인 지난 13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와 배상에서 한국인을 배제하는 움직임을 독려하는 것은 일본 정부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 예로 한국인을 강제 동원한 또 다른 일본 기업인 신일철주금이 지난 2013년 “한국인 피해자 배상과 관련,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따르겠다”고 밝히자마자, 일본 정부는 “개별기업은 나서지 마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미쓰비시 측에도 ‘한ㆍ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에 대한 배상책임은 소멸됐다’는 입장을 압박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한ㆍ일에게 배상문제 해결은 선결조건과 같다”며 “그 이후에 사과나 사죄는 오히려 쉽게 따라올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한ㆍ일청구권협정과 함께 개인에 대한 배상문제는 끝났다고 주장한다”며 “일본 기업들도 정부의 입장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만은 없어, 실질적으로 한국인에 대한 일본 기업의 사과가 현실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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