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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카트리나가 남긴 것, ‘재난, 그 이후’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를 덮친 재해는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재는 물론 인간의 윤리까지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1800명 이상의 사망자와 1000억 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를 남기고 미국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된 카트리나는 미국 내에서 지도층의 그릇된 상황인식과 분산된 의사결정 구조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풀리처상 수상 기자 셰리 핑크가 카트리나 당시 무능력한 정부 및 기관의 축소판 격이었던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어난 5일간의 참사를 6년에 걸쳐 500건이 넘는 인터뷰와 취재 끝에 생생히 재구성했다.
재난, 그 이후/셰리 핑크/박중서 옮김/알에이치코리아
카트리나가 관측된 8월27일, 이튿날 뉴올리언스 시장이 마침내 시민대피명령서에 서명한다.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시장이 대피명령을 내릴 법적 권한이 있는지 논의하느라 몇 시간이 흐른 뒤다. 이 때문에 2만5000여명의 시민들이 도시를 탈출하지 못하고 슈퍼돔으로 피신했다. 메모리얼 병원은 둘째날, 전력이 끊기고, 셋째날엔 침수돼 결국 발전기가 모두 고장나게 된다. 허리케인 대비계획안을 마련해둔 상태였지만 홍수는 미처 대비하지 못했다. 숨막힐 듯한 무더위와 물도 없고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는 처지에서 병원 비상위원회는 탈출 시나리오 시행에 들어간다. 대피 우선순위는 추후 윤리적 문제를 드러낸다. 아픈 아기와 노인 중 누구를 먼저 태울 것인지도 옥신각신한다. 저자는 더 충격적인 사실을 보고한다. 누워서 숨쉬기조차 힘든 환자들을 탈출 상황에서 의사들이 안락사시킨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초등 대응에 실패하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는 건 경험칙이다. 아무도 컨트롤타워를 자처하지 않는다. 컨트롤타워로 나선 사람들조차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위기 상황은 더욱 심화된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잘못된 정보와 유언비어가 난무해 사회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재난 중의 부상자 선별이라는 상황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음을, 위기 관리 시스템이 허술한 사회에서는 재난 직후의 삶과 죽음은 결국 한 개인의 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우리에겐 전혀 낯설지 않은 얘기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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