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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붓으로 전하다, 절망 끝에 희망 있음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여백 가득한 화면 속에 물고기와 나비. 입을 맞출 듯 가까운 거리다. 언뜻 김홍도의 ‘황묘농접’이 떠오른다. 노랑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하는. 어떤 에로티시즘적인 순간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물고기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 주변은 너덜너덜하다. 아파 보인다. 한국화가 김호석(58)이 그린 이 그림에는 ‘물고기는 알고 있다’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림이 은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작가에게 물었다. 
물고기는 알고 있다, 종이에 수묵 담채, 125×110㎝, 2014 [사진제공=고려대학교 박물관]

“세월호 사건 이후 팽목항을 네 번 정도 다녀왔다. 유가족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밤에 낚시를 하고 있더라. 사람이 죽었는데 물고기를 잡아 먹을 정신이 어디있나하는 생각이 들더라. 기다려봤다. 그 사람은 이내 물고기를 잡아 올렸다. 한참을 바라보고 난 후 다시 놓아주더라. 밤바다가 울렁거리며 울고 있었다.”

김호석은 생각했다. 물 속 진실을 알고 있는 것은 물고기 밖에 없기에, 가족의 생사를 물고기에게라도 물어보고 싶은 유가족의 마음이 저런 것인가. 당시 팽목항엔 유난히도 호랑나비가 많았다고 했다. 물 속을 아는 건 물고기, 물 밖을 아는 건 나비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을 알고 있는 존재들. ‘물고기는 알고 있다’는 그렇게 그려졌다.

김호석 초대전이 7월 6일부터 8월 17일까지 고려대학교 박물관에서 개최된다. ‘틈,’이라는 중의적인 타이틀로 기존 작품들과 함께 신작 22점으로 박물관 전관을 채운다.

김호석은 전통 수묵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가로 유명하다.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 최연소 ‘올해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동시대 작가로서는 드물게 초ㆍ중ㆍ고교 미술 교과서에 십여점의 그림이 실려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배추의 꿈처럼, 종이에 수묵, 125×110㎝, 2015 [사진제공=고려대학교 박물관]

성철 스님 초상화, 법정 스님 진영 등으로도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작가는 “나는 초상화 작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1990년대 10여점 시리즈로 역사화를 내놓아 순식간에 팔아 치웠지만 다시 역사화로 돈을 벌어 볼 생각도 없다.

대신 매 전시 때마다 주제를 다양하게 확장시켰다. 일관된 것은 대상에 대한 끊임없는 관찰과 연구, 그리고 오늘날을 사는 작가로서의 치열한 자기 성찰이다.

“관찰과 연구, 수련, 그리고 학구적인 정진에 순도 높은 열과 성을 기울이는 그의 작업 태도는 놀랍도록 진지하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파악하기 위하여 온갖 준비를 마다하지 않는 일화는 기록될 만한 수준이다. 텃밭을 가꾸고, 개미, 쥐, 구더기에 이르기까지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직접 기르면서 동식물의 생태를 살피는 별난 화가이다.” 변영섭 전 문화재청장(고려대학교 교수)이 김호석 작가의 전시 서문에 평한 내용이다.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그린 그림이다. 오른쪽 그림이 ‘자식인 줄 알았는데 허공이었다(종이에 수묵 채색, 186×94㎝, 2015)’. 왼쪽은 이전에 그렸던 것으로, 그림 속 ‘자식’으로 상징한 실체를 지우고 다시 그린 오른쪽 그림을 전시장에 걸었다. 안고 싶어도 안을 수 없는,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공허함과 슬픔을 그려냈다. [사진제공=고려대학교 박물관]

김호석은 신작에 세월호 사건, 윤일병 사건을 담았다. 한국의 오늘을 사는 지각있는 작가들이 한번은 거치고 가는 주제를 그 역시나 외면하지 못했다. 오히려 더 구슬프게 울었다.

그런데 그가 그려낸 그림에 대성통곡하는 소리는 없다. 무미건조하다. 여백이 압도적인 텅 빈 화면에는 각각 하나의 사물들이 암호처럼 던져져 있다. 바짝 말라버린 배추, 몸을 뒤집은 쥐, 게를 찌는 냄비처럼, 은유와 상징만이 가득하다.

“자신의 이해관계에만 촉수가 발달해 있는 사회다. 희망이 없는 시대에 희망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러나 절망이 희망일 수 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희망이다.”

그림 한 점 한 점마다 빼곡한 작가노트를 남기며 무엇을, 왜 그렸는지 끊임없이 성찰하는 작가가 은유와 상징으로 전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는 ‘생명의 순환’이다. 생성과 소멸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닌 함께 있는 것. 소중한 것을 잃고 가슴 아파하는 이들에게 산 자가 할 수 있는 초라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도산 꽃게를 쪄 먹고 있는 우리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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