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역사의 민낯-승정원일기20] 술잔을 하사하며 새긴 글씨
조선시대에는 늘 가까이하는 기물(器物)에 경계할 내용을 새겨 놓고, 시시때때로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리던 문화가 있었다. 임금이 신하에게 술잔을 하사하면서 글을 새겨 준 일에 관한 기록도 많이 남아 있는데, 이때 술잔에는 지나치게 많이 마시는 것을 경계하는 내용이 새겨졌다. 술잔의 종류에는 여러 모양이 있었는데, 복숭아 모양의 잔을 도배(桃盃), 귤 모양의 잔을 귤배(橘盃)라고 불렀다.

고종 10년 9월 3일 사시(巳時), ‘시경’의 ‘빈지초연(賓之初筵)’장을 진강하였다. 이 시는 위무공(衛武公)이 술을 마신 뒤 허물을 뉘우치는 뜻을 읊은 시라고 전한다. 이 시를 논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임금이 신하에게 술잔을 내린 것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정기회 : “숙묘(肅廟) 임신년에 본원에 은 술잔을 내렸는데, 숙종께서 직접 쓰신 글과 글씨로 ‘술을 감히 또 많이 마시랴. 덕을 해치고 본성을 잃게 만드니 어찌 석 잔을 넘길 수 있겠는가. 내가 훈계하니 그대도 훈계하라.[酒敢多又 伐德喪性 寧逾三爵 予訓汝訓]’는 16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세월이 오래되면서 여러 차례 잃어 버려, 여러 번 다시 만들었습니다.”

고 종 : “정원의 은 술잔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가?”

정기회 : “재작년에 본원에 친림하셨을 때 보셨습니다만, 올해에 또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고 종 : “은기(銀器)가 아까워서가 하는 말이 아니다. 선대 왕이 내려준 물건을 잃게 된 것이 온당치 못하다. 내가 다시 만들어 주겠다.

고종은 승정원에서 선대 왕이 준 물건을 잃어버리자 다시 만들어 줄 것을 약속하며 모양을 묻고 앞으로는 잘 보관할 것을 명한다. 선대 왕이 하사한 물건을 잃어버렸는데도 다시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모습, 술잔을 내리면서도 과음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글을 새겨 내린 것 등에서 관대함과 절제가 함께 하는 조선의 음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하승현)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