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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잠들어 있는 역사를 깨우다
열하일기 외사
다양한 관련 기록물 면밀히 섭렵
연암 박지원과 당대 문인들의 면면
정조의 문체반정 과정 재구성

발원
차별과 가난으로 신음하는 서라벌
소년 원효의 방황속 성장과정 그려
분열 벗어나 화합하는 세상 발원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을 결합한 팩션 두 편이 나란히 나왔다. 김선우의 원효 이야기 ‘발원’과 설흔의 ‘열하일기 외사’다. 역사상 매력적인 두 인물 원효와 연암 박지원을 따라가는 두 편의 팩션은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이야기와 밀도 높은 문장으로 아름답고 서늘한 세계를 보여준다. 묘하게도 두 소설은 변혁의 시기, 왕권과 신권의 줄다리기 속에서 스스로 독특한 입지를 구축한 두 인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소설 ‘열하일기 외사’(돌베개)는 박지원의 친구이자 정조가 아꼈던 근신 남공철이 연암에게 보낸 편지로 시작한다. 이 속에는 경연 자리에서 정조가 남공철에게 한 말이 그대로 들어있다.

“요즈음 문풍이 이와 같이 된 것은 그 근본을 따져보면 모두 박 아무개의 죄이다. ‘열하일기’는 내 이미 익히 보았으니 어찌 감히 속이고 숨길 수 있겠느냐? 이 자는 바로 법망을 빠져나간 거물이다. ‘열하일기’가 세상에 유행한 뒤에 문체가 이와 같이 되었으니 당연히 결자해지하게 해야 한다.” 당대 유행한 소품체 문장들을 일소하고 고문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일으킨 정조의 문체반정은 남인에 대한 노론의 공격을 막기 위해 연암 박지원을 볼모로 삼은 정치적 노림수였다는 역사적 평가지만 정작 문체반정의 대상이었던 문인의 상황을 살핀 글은 많지 않다.

설흔은 박지원의 ‘연암집’을 비롯해 박종채의 ‘과정록’, 박제가의 ‘정유각집’,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이서구의 ‘척재집’, 남공철의 ‘금릉집’, 그리고 관찬 사료인 ‘조선왕조실록’과 ‘홍재전서’에 이르기까지 문제작 ‘열하일기’의 영향을 알 수 있는 모든 기록을 면밀히 읽어내 당시 정조의 문체반정과 당대 문인들의 면면을 재구성했다. 작가는 역사적 기록에 바탕한 만큼 이를 ’인문소설‘이라 이름한다.

소설은 서울의 폭설, 멀리 있는 연암에 대한 안부로 시작하지만 이내 정조의 서슬퍼런 하교가 드러난다. 죄, 법망에서 빠져나간 거물, 세상에 유행한 문체, 결자해지 같은 말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 작가는 남궁철의 편지를 받아든 연암의 공포에 주목한다.

“남자는 임금의 명을 담은 편지를 조심스럽게 접은 후 봉투에 다시 넣었다. 순간 머릿속 피가 죄다 빠져나가 텅 비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현지를 받았으니 답장을 쓰는 게 예의일 것이다. 벗이 쓰라는 글, 그러니까 임금이 받고 싶어하는 순수하고 바른 글도 선물처럼 덧붙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피가 채워지지 않은 남자의 머릿속은 여전히 텅 비어 있어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지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작가는 패관문학으로 지목된 이들이 느꼈을 공포를 ‘카이카이’(開開)라고 표현한다. 카이카이는 머리가 잘린다는 의미. ‘열하일기’에 황제의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중국 관리들이 카이카이 될 것을 두려워하며 우는 대목에서 따온 것이다.

소설에는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남공철 등 벗들이 둘러앉아 ‘열하일기’를 읽는 낭독회가 주요 장면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연암의 눈을 통해 각 인물들의 특징을 생생히 그려나간다. 이들은 정조의 문체반정의 대상이었으며 결국 자신의 그릇과 성품대로 자송문(반성문)을 지어 바치게 된다.

이 소설은 문집의 글과 ‘열하일기’의 글을 직접 인용문 형태로 그대로 가져다 넣고, 대화의 상당부분도 역사 기록을 빌려 마치 두개의 병치된 글을 번갈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시와 소설, 산문을 오가며 활달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김선우의 눈은 신라에 닿았다. 화랑과 불국토의 화려한 신라가 아닌 골품에 따른 차별과 어미가 아이를 내다파는 가난의 고통으로 신음하는 서라벌이다. 소설 ‘발원’(민음사)은 원효와 요석을 통해 진짜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 백성의 고통은 정녕 멈출 수 있는가, 진실된 사랑을 이룰 수 있는가를 그려나간다.

소설은 열세살 소년 새벽(원효)과 숙부의 만남과 이별로 시작된다. 현실의 신분 벽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한 숙부는 새벽에게 고관의 수족노릇을 하느니 그들을 가르치는 국사라 되라고 권하지만 향리 격인 아버지는 새벽이 화랑이 되길 기대한다. 둘 사이에서 방황하던 새벽은 스스로 원하는 길을 찾아 서라벌로 향한다.

작가는 원효의 모순된 현실을 넘어서려는 내적 성숙과 변화의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화랑의 길에 들어서 자신이 그리던 세상과 다름을 아프게 인식하고 숙부가 예언처럼 호명한 승려의 길로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을 궁구하는 모습이 한 편이라면, 또 한 편에는 요석에게 운명처럼 붙들려 흔들리고 열망하는 사내의 모습이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원효 스스로 깨친 부처의 길, 백성을 위하는 길에서 하나를 이룬다. 요석 역시 그런 면에서 원효의 도반으로 그려진다.

선덕여왕과 김춘추, 의상 등의 실존인물과 상상속의 인물이 서로 호흡하고, 황룡사와 분황사, 첨성대 등 신라 왕경과 소외된 이들의 이상향인듯 그려진 아미타림의 상상적 공간의 어울림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가 깔끔하다.

작가는 원효의 입을 통해 발원한다. “막히고 갈라져 서로 대립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모든 것이 상호 의존하는 세계로, 한 몸처럼 세상과 만나는 세계로 돌아오길”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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