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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독일 최고의 과학저널리스트 슈테판 클라인이 세계적 과학자 11명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누구일까,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에게 영혼이 있을까, 사랑의 근원은 무엇일까 등 인간존재에 관한 근본적 질문을 과학자들에게 안긴 것이다. 종래 철학의 고유 영역이라는 점에서 보면 짓궂고 도전적일 수 있지만 최근 뇌과학의 발달 덕분에 과학자들이 답할 수 있는 얘기가 많아졌다.
우리는 모두 불멸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청어람미디어

여기에는 ‘이기적 유전자’로 스타 과학자가 된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 노화의 유전학적 매커니즘을 탐구해온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엘리자베스 블랙번, 제인 구달, 실천윤리학의 거장 피터 싱어, 네안데르탈인 유전체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 스반테 페보, 30년 간 아동의 사고를 연구한 발달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 꿈의 생성 경로를 밝힌 정신의학자 앨런 홉슨, 신경철학의 대가인 토마스 메칭거 등 쟁쟁한 과학자들이 참여했다.

슈테판은 ‘인간의 불멸’을 주제로 첫 대화상대를 골랐다. 섬모충 연구를 통해 수명을 결정하는 텔로미어를 발견한 분자생활학자 엘리자베스 블랙번. 불멸의 섬모충의 비밀을 통해 2009년 노벨상을 수상한 그는 인간 생명의 한계 노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들, 수명 예측방법 등에 관해 이야기해 나간다. 블랙번은 텔로미어의 길이는 어렸을 때 끔찍한 경험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길이가 짧고, 더 많이 운동하고 더 잘자는 사람은 텔로미어가 길다고 데이터를 통해 설명한다. 그가 유일하고 확실하게 제시하는 텔로미어의 길이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건강요법은 운동. 죽음의 원인을 흔히 질병으로 보는 것과 달리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인체 고유의 복구 매커니즘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으로 해석한 점도 눈길을 끈다.
“내가 인터뷰한 상대들은 관심이 다양한 만큼 업적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동의하는 바가 있으니, 그것은 인간이라는 수수께끼에 접근하는 방식이다.”(‘지은이의 말’ 중)

가장 흥미로운 대담은 ‘이기적 유전자’로 스타가 된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의 설전이다. 슈테판은 작정한 듯 반론자의 입장에서 날카로운 공격을 감행한다. 다윈주의자 도킨스는 자연은 진화를 위해 이기주의자를 선택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해 나가면서 팽팽한 긴장을 형성한다. 슈테판은 “사람들이 보여주는 높은 수준의 이타성을 그런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고 반박하지만 도킨스는 냉정하다. 가령 전투중에 용감하게 행동하면 사랑받는 것도 일종의 번식을 위한 확률을 높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친절과 배려, 희생의 이타성도 다윈주의 안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자연선택은 어림규칙을 장려하는데, 예컨대 새가 둥지에서 새끼들에게 먹이를 줄 때 어림규칙은 불그스름하고 짹짹거리는 물체가 보이면 곧장 그 속으로 먹이를 집어넣으라는 것. 이 어림규칙이 오류를 유발하는 게 뻐꾸기라는 얘기다. 인간에게 어림 규칙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행동하라는 것인데 다윈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이 어림규칙은 오류를 유발한다고 도킨스는 설명한다. 평행선을 달리던 둘이 함께 공감을 이룬 부분은 이타성의 필요성. 도킨스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에 이타성의 교육이 필요함을, 슈테판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서로 의존하는 세상에서 자기 이득의 원리만 따르는 사람은 점점 더 위험해질 것이라는 입장을 내세우며 이타성을 강조한다.

슈테판은 효용을 기준으로 선악을 가르는 피터 싱어와도 팔을 걷어부쳤다. 부를 나눠 갖지 않는 것은 악인 반면, 고문과 살인은 경우에 따라서 악이 아니라고 말하는 공리주의자 피터 싱어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나라는 걸 어떻게 알까. 자아감이란 무엇일까. 내가 죽으면 무엇이 남을까. 철학과 뇌과학 양쪽 모두에 정통한 토마스 메칭거는 여덟번에 걸친 신체이탈 체험을 들려주며, 몸과 영혼, 자아라는 현상과 의식이라는 현상을 규명하려 애쓴다.

메칭거는 자신을 자신으로 느끼는 데 대해 “그건 내 뇌 속의 한 표상이 일으키는 결과”일 따름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 표상을 그것의 본 모습대로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 “기초적인 자아감은 진화의 산물입니다. 생존에 도움이 되거든요. 최근 연구들은 자기기만도 진화적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긍정적인 환상을 스스로 만들면 확실히 이로울 수 있거든요. ”

전통적인 꿈 해석을 뒤엎은 정신과의사이자 꿈 연구가인 앨런 홉슨과는 과연 꿈이 우리의 바람을 보여주는 건지 혹은 예견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지 뇌의 활동인지 대화를 나눈다. 객관 세계의 렘수면과 주관 세계의 꿈을 연결하는 시도가 과연 정당하냐는 슈테판의 질문에 앨런은 꿈의 아주 많은 특징을 뇌의 작동을 통해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며 구체적 연구성과를 제시한다.

마지막 대화상대는 철학의 대상이었던 의식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온 생물윤리학자 크리스토프 코흐. 한때 카톨릭 신자였던 그는 뇌에서 의식의 전제조건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신앙과 고통스럽게 결별한 이야기와 함께 내면적 경험인 의식이 대뇌의 어딘가에서 어떻게 발생하는지 들려준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컴퓨터를 제작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며 그러면 우리의 뇌에 들어있는 모든 정보를 그 컴퓨터에 옮김으로써 우리는 불멸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슈테판의 의도는 분명하다. 인간 존재의 비밀을 푸는데 이젠 생활경험과 사변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검증 가능한 사실에 의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무너뜨린 슈테판의 질문과 과학자들의 대답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더 깊게 끌고간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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