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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지사회와 그 적들, 누가 복지사회를 반대하나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2009년부터 시작해 유럽 전역으로 번진 그리스의 부채 위기를 과도한 복지 지출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국제 채권단의 강력한 구조개혁 요구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는 연금생활자들에게 추가 혜택 제공과 최저 임금의 점진적 인상, 공무원 수 유지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복지에 관해서라면 사실 그리스는 북유럽 국가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신복지 사회 이론 등을 발표하며 중국어권에서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제학자 가오롄쿠이 박사는 ‘복지 사회와 그 적들’(부키)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뜨거운 화두인 복지국가 모델이 여전히 유효한지 따진다. 
복지 사회와 그 적들/가오롄쿠이 지음, 김태성ㆍ박예진 옮김/부키

복지논란은 당장 우리만 하더라도 무상급식과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재편 논의 등으로 내내 시끄럽다 복지의 재검증, 재편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복지사회와 그 적들’은 이런 문제 제기에 확고한 방향을 제시한다. 복지국가에도 결함이 있지만 ‘그래도 복지국가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미국, 영국, 뒤따랐던 일본 등과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실태를 하나하나 비교해 나간다. 부채나 실업률, 1인당 GDP, 빈부 격차 등에서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안정적으로 경제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 영국 등은 금융 위기나 유럽 부채 등으로 휘청거리는 모습을 대조시킨다. 이런 눈에 보이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복지 축소 내지 거부 주장이 드센 까닭에 저자는 주목한다. 그는 복지국가에 대한 문제제기 자체에 일부 오류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복지를 축소하거나 거부하자는 주장을 보면, 사실 관계를 왜곡하거나 핵심적인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복지논쟁은 전 세계적인 화두다. 복지 사회를 갈망하면서도 무거운 세금 부담은 누구나 꺼린다.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한 각국의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 경제학자 가오롄쿠이가 대안의 사회발전 모델로 ‘저생존원가형 사회’을 제시했다.

가령 그리스의 경우, 재정위기의 결정적 원인으로 과도한 복지를 지적하지만 실은 아테네 올림픽 적자가 원인이라는 것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총지출은 약 160억달러로 애초 계획한 예산의 3배가 넘어서면서 재정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그리스 부채 위기가 복지 지출 과다 때문이라는 인식을 퍼트린 장본인으로 서구 언론을 지목한다. 또 그리스 경제가 지속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과다한 복지가 아니라 복지 보장의 미비로 인해 야기된 소비 위축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복지 지출이 많은 나라는 정부 부채가 많다” “복지국가는 효율이 낮다” 등 잘못 알려진 사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논박해나간다. 부채규모의 경우 2010년 스웨덴과 노르웨이는 재정 흑자를 기록했고, 덴마크의 재정적자는 GDP의 2.6퍼센트, 판란드는 2.5퍼센트에 불과하다. 1980년대 이후 ‘탈복지화’ 노선을 걸어온 미국(99.4퍼센트), 영국(81.8퍼센트), 일본(211.7퍼센트) 등은 부채규모가 상대적으로 높다. 오해는 또 있다. “복지 사회는 부자 나라에서만 가능하다” “복지는 국가의 부유함의 결과”라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19세기말 세계 최초로 사회보장제도를 입법한 독일이나 20세기 초중반 사회보장제도를 수립한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유럽의 낙후된 지역들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북유럽의 성공은 성장과 분배가 이항으로 대립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달성 가능하고 지속 또한 가능하다는 걸 입증한다는 것.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이 그렇다고 북유럽식 복지 모델은 아니다. 그가 제시하는 모델은 ‘저생존원가형 사회’ 개념이다. 시장경제와 빈부격차의 모순과 복지 사회와 높은 세금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저자는 자신한다. 저생존원가형 사회란 주거와 의료, 생필품 등 국민의 생활원가를 낮추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 구매력이 높아지고 삶의 질도 향상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민생문제는 소득이 증가해도 생존원가의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생존원가가 높아지는 원인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자동차나 고등교육, 통신망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이 갈수록 많아지고 사회적 분업에 따라 모든 걸 사서 써야하는 구조에서 생존원가가 상승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저자가 덜 먹고 더 절약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핵심은 정부가 세금과 도시개발을 통해 물가를 낮추는 것이다. 생존형 소비와 향유형 소비, 사치형 소비로 나눠 세금을 차등화하는 것이다. 생존형 상품인 경우에는 각 단계에서 면세정책을 취해 식료품 가격의 인하를 유도하는 것이다. 생필품의 통일된 유통시스템 구축, 부동산 가격 조절 등 생활원가를 낮추는 제안들이 이어진다. 저자는 최근 빈부격차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중국에 하나의 대안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는데, 우리 현실과 거리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방향성에 공감할 만한 부분이 많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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