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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vs. 책] ‘탐식의 시대’ vs. ‘음식의 언어'…음식은 ‘총, 균, 쇠’보다 중요하다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가까운 곳에서 자연농법으로 키운 신선한 재료로 바로 조리해 먹는 리얼푸드가 인기다. 지역경제도 살리고 건강도 챙기는 착한 음식에 소비자들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 ‘먹방’ 대신 방금 텃밭에서 딴 채소나 바다에서 잡아올린 생선으로 요리를 하는 TV예능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이다. 음식과 요리는 시대를 반영한다지만 음식의 역사연구가 레이철 로던 박사의 ‘탐식의 시대’(다른세상)를 보면 음식과 요리가 역사의 지도를 바꾼 것처럼 보인다.

로던은 제국의 탄생과 권력의 이동, 종교의 확산에 음식과 요리가 결정적인 작용을 했음을 역사적 주요 시기를 중심으로 보여주며 문명을 읽는 새로운 코드로 음식과 요리를 제시한다. 


오늘날 전세계를 장악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햄버거는 200년전의 ‘음식 혁명’이 없었으면 태어나지 않았을 음식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햄버거의 주재료인 흰빵과 쇠고기는 200년 전만 해도 소수의 지배층만 즐길 수 있는 고급음식이었다. 1880~1914년께 북유럽 국가들과 유럽의 해외 이주 식민지들, 미국, 일본 등에서 중산층과 임금을 받는 노동 계층이 증가하면서 마침 발전을 이루고 있던 식품 가공 산업의 소비자로 급부상했다는 것이다. 식품 가공 산업은 이들이 즐겨먹는 흰 빵과 쇠고기를 저렴한 값에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형성되던 새로운 정치관에도 영향을 끼쳤다. 왕과 귀족이 먹는 고급 요리와 평민이 먹는 하급 요리가 명확히 구분되던 데서 계급에 상관없이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음식에서 평등이 이뤄진 것이다.

계산에 따르면 어떤 음식을 묘사하는데 평균 길이보다 글자 하나가 더 늘어날수록 그 음식값에 18센트(70원)가 비싸진다. 이는 만약 어떤 식당이 세 글자가 더 많은 단어를 쓴다면 동일한 로스트 치킨이나 파스타를 먹는데 54센트를 더 낸다는 뜻이다.(‘음식의 언어’중)

음식혁명은 BC 1000년경, 곡물이 식재료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곡물은 당시에 형성되기 시작한 도시, 국가, 군대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다. 저장이 용이한 곡물은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권력의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BC 500년에서 AD 400년까지 유라시아에서는 거대한 제국이 연속으로 탄생했는데 그 배후에도 음식이 있다. 가령 간소하고 절제된 음식을 선호했던 로마의 병사들은 맷돌을 짊어지고 다니며 야영지에서 직접 음식을 해 먹었다. 로마군에 일대 변화가 일어난 건 회전식 맷돌을 도입하면서부터였다. 기존의 맷돌을 사용하면 한 개 분대(8명)가 먹을 곡식을 가는 데 적어도 네댓 시간이 걸렸다. 반면 회전식 맷돌을 사용하면 한 시간 반 만에 일을 끝낼 수 있었다. 로마는 이 효율적인 기술을 제국 전역에 퍼뜨렸다. 새로운 조리 도구의 도입이 최강의 군대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셈이다.

이런 사례는 영국 해군으로 이어진다. 18세기, 유럽은 바다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는데 결과는 선원들에게 영양식단을 제공한 영국의 승리였다. 영국은 영양을 고려한 감귤 등 과일과 야채, 고기, 빵, 맥주 등 완전한 식사로 당시 유행한 괴혈병 발병률을 낮추고 사기를 북돋웠다. 선원들이 훨씬 건강해진 덕분에, 배가 바다에 머무는 시간은 1700년 2주에서 1800년엔 3개월로 크게 늘어났다. 


요리 철학은 종교의 확산을 위해 지역에 맞게 변화하는 융통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일례로 7세기에 불교가 전파된 티베트의 경우, 고원지대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불교도들이 선호하던 쌀이나 설탕, 야채들을 생산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이곳 불교도들은 육식을 포기하지 않았고, 도살을 위해 날이 휘어진 특별한 칼을 성물로 여기기까지 했다. 훗날 중원을 차지한 몽골인들은 원나라를 세운 후 이 티베트 불교를 국가의 종교로 받아들였다. 그들 역시 육식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음식과 요리가 사회변동을 추동했다면,스탠퍼드대 괴짜 언어학 교수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의 언어’(어크로스)를 통해 음식의 언어에 담긴 인간의 심리, 행동, 욕망의 근원을 파헤친다.

주래프스키에 따르면, 포테이토칩 하나에도 우리의 취향과 요리의 문법이 들어가 있다. 그는 포테이토칩 포장지에 쓰인 홍보문구를 분석해 문구와 가격의 상관관계를 밝히고 음식광고가 겨냥하는 청중의 부류를 둘로 나눈다. 거기에서 우리는 건강하고 우아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 가족과 사회문화에 합일하고 싶다는 소속감을 확인한다. 그에 따르면 디저트의 문법은 일탈의 미학을 즐기려는 뿌리깊은 쾌락의 열망과 관련이 있다. 그런 면에서 허니버터칩 열풍은 짭짤하거나 심심하던 포테이토의 일탈이다.

저자는 데이터화된 고대의 레시피, 백년 전 온라인 메뉴 컬렉션 1만개, 현대식 메뉴 6500건, 요리 가짓수 65만건, 100만건의 맛집 리뷰 등 계량 언어학적 도구를 통해 다양한 결과들을 도출해낸다. 가령 메뉴에 쓰인 단어가 길어질수록 음식값이 비싸진다는 사실부터 프랑스의 에피타이저인 앙트레가 미국에서 메인 코스로 쓰이는 이유, 마카롱의 갑작스러운 유행, 맛집 리뷰에서 섹스 관련 단어가 많이 언급될수록 고급 레스토랑이라는 놀라운 사실까지 우리의 문화 사회 경제 심리를 정확히 해독해낸다.

요리와 음식은 어느 때이건 분석과 논쟁의 대상이다. 그 안에 당대의 정치 사회 경제현상과 건강과 질병, 윤리와 종교에 대한 신념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두 책은 음식과 조리의 혁신과정과 언어를 통해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사회를 움직이는 동인으로서 균형적 시각을 제공한다.


탐식의 시대/레이철 로던 지음, 조윤정 옮김/다른세상

음식의 언어/댄 주래프스키 지음, 김병화 옮김/어크로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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