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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의 민낯]천주교는 불교의 별파?…서양문화에 관대했던 정조
고전번역원과 함께 읽는 승정원일기<3>
천주교가 처음 조선에 유입된 시기에는 조선사회를 지탱해 온 성리학 중심의 학문 풍토와 통치 체제가 워낙 견고했기 때문에 서양에서 유입된 천주교에 대한 인식 또한 서양 문화에 대한 다양한 관심사 중 하나인 정도였다. 1788년(정조 12) 8월 3일 사간원 정언 이경명은 상소를 올려 서학이 다시 번성하는 일이 없게 할 것을 건의한다. 정조는 성정각에서 대신과 유사 당상(有司堂上)과 함께 이에 대해 논한다.



정조:유학과 불교의 본체에 어찌 다른 점이 있겠는가. 다만 적용하는 데에서 차이가 나서 스스로 사람들로부터 떠나고 세속과 단절되는 데로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데 서학의 경우는 불교와 비교하여 더더욱 빠져드는 점이 있다.

채제공:이는 서방의 종교인데, 말이야 불교를 배척한다고 하지만 대개 불교의 어떤 소견을 훔친 것입니다. 신은 이것이 불교의 별파라고 봅니다.(중략)

정조:이들의 설이 을사년(1785, 정조9)에 크게 성행하였는데, 김화진이 형조 판서로 있을 때에 대략 수색해 다스렸으니, 이 일은 유사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만약 큰 사건으로 만들어 조정으로 넘긴다면 어찌 일이 잘못되지 않겠는가. 잘못된 도를 가지고 사람들의 귀를 현혹시키는 것이 어찌 서학뿐이겠는가. 중국의 경우 육상산(陸象山)의 학설이니, 양명학이니, 불교니, 도교니 하여 도가류와 불가류 등이 있었지만 언제 금지령을 베푼 적이 있었던가.


이 때까지만 해도 정조는 기본적으로 서학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이 유생들이 경전을 읽지 않고 명말청초(明末淸初)의 기괴한 문체의 소설을 읽는 데 있다고 판단해 유사에게 맡겨두도록 하고 강하게 배척하지 않았다. 그 후 점점 천주교 대응 방식이 교화 중심에서 엄한 법률로 다스리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조선에 천주교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조정의 인식과 논의 과정을 잘 알 수 있는 장면이다.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하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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