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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시대 노마드가 묻는다…세상은 왜 ‘진짜’에 집착하는가
3번째 국내 개인전 여는 설치미술가 양혜규
구속없는 ‘不在의 공동체’ 꿈꾸는 작가
조각·설치·영상·콜라주 등 35점 전시
공동체·전통·원본의 구분짓기 거부
천연 대신 인조 짚 사용한 ‘중간유형’
자연 그리워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



공동체, 혹은 연대가 갖는 수사(修辭)는 때로 강압적이고 폭력적이다. 공동체라는 소속 안에서 공통점을 나누고 규범을 따라야 하는, 구속력을 가진 일종의 경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나와 너를 구분하는, 우리 대 우리로 맞서는 공동체를 거부하고, 이른바 ‘부재의 공동체(Negative community)’를 꿈꾸는 작가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가는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2012년 독일 카셀도쿠멘타 등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쌓고 있는 설치미술가 양혜규(44·사진)다. 주류 미술가가 꿈꾸는 21세기 ‘노마디즘(Nomadism)’이라고 해야 할까. 

독일 베를린을 거점으로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는 양혜규 작가의 국내 세번째 개인전이 12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렸다. 조각, 설치, 영상, 콜라주 등 구작과 신작 35점이 미술관 2개 층 공간에 세계지도처럼 펼쳐져 있다. 미술관 개인전으로써는 대규모이며, 작가 양혜규로서는 일종의 세미 회고전이다. 타이틀은 ‘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시장에 코끼리는 없다. 그렇기에, “그래서 코끼리가 어디에 있다는거야?”라는 질문에서부터 이번 전시에 대한 이해를 시작해야 한다. 촘촘한 구성으로 잘 짜여진 작품들 사이에서 ‘결여’를 읽어내야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9일 미술관에서 양혜규를 만났다. 작가는 공동체, 전통, 원본 등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들의 구획짓기에 의문을 던졌다. 그의 말을 통해 이번 전시의 텍스트를 읽어보면 이렇다.

첫째, ‘자연’이 없다. 짚풀을 엮어 만든 ‘중간 유형(2015)’은 양혜규가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신작이다. 러시아의 이슬람 사원 ‘라라툴판(라라튤립)’을 모티브로 만든 구조물 3점과 인체를 연상시키는 조각 6점으로 구성됐다. 철골 구조에 지푸라기를 얹었다. 여기에 진짜 지푸라기는 없다. 천연 짚 대신 굴비 엮을 때 쓰는 비닐 재질의 인조 짚을 썼다. 

◀성채, 알루미늄 블라인드 등 가변설치, 2011 [사진제공=리움]

지푸라기 작업은 작가가 일본 북부 가나자와의 공원에서 나무를 짚풀로 감싼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겨울철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감싼 짚풀에서 시각적 아름다움을 봤다. 그리고 산업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에서도 농경시대의 상징인, 지푸라기라는 원시적 재료의 손길이 여전히 유효함을 발견한 것. 인공의 재료로 자연을 모방했지만, 조롱보다는 연민이 스며있다.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간에 대한 연민. 그래도 괜찮다며.

둘째, ‘원본’이 없다. 이는 자연에 대한 모방과도 통한다. ‘외발 사자춤’이라는 부제가 붙은 구조물이 이러한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사자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사자춤이라는 민속이 동북아에 널리 퍼져 있단다. 한국에는 삼국시대 서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것으로 내재화되고 전통으로 자리잡았다. 

중간유형-외발 사자춤, 인조 짚 등, 2015
[사진제공=리움]

우리는 전통에 대한 충성을 요구한다. 원본에 대한 충성. 작가는 묻는다. 왜 그래야 하지? 거봐. 원본이란 것도 사실은 실체가 없는거야라고.

셋째, ‘공동체’는 없다. ‘성채’ 작업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여 호평을 받았던 블라인드 작품을 그대로 가져왔다. 블라인드 안에는 비엔날레 당시의 영상과 아현동 재건축 현장의 영상을 담은 스크린이 있다. 블라인드 밖에서는 무빙라이트가 비춰지고, 센서가 달린 향 분사기는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향을 뿜는다. 빛과 향이 블라인드 안과 밖을 관통한다. 성채라고 믿고 있는, 폐쇄적으로 구획된 공동체라는 이름의 허약한 장벽을 넘나든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시티-귀신, 간첩, 할머니’ 전시 때 선보였던 키네틱 조각도 등장했다. 움직이는 조각에 방울을 달아 소리를 내는 조형물이다. ‘상자에 가둔 발레(2013/2015)’, ‘소리나는 인물’, ‘바람이 도는 괘도’ 세 타이틀이 하나의 작품군이다. 

◀상자에 가둔 발레, 2013/2015 [사진제공=리움]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의 무대연출가 오스카 슐레만의 ‘3부작 발레’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바우하우스를 모르는 관객들도 이 작품을 발레를 하는 사람의 움직임으로 읽는다.

미디어시티 때 무속적인 느낌을 주던 방울 조각 작품이 이번 전시에서는 기하학적이고 성상적인 맥락으로 거듭났다. 전시 큐레이션의 힘이다.

양혜규에게 물었다.

▶블라인드를 작업의 소재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뭔가.

-처음에는 기능적 용도였다. 벽이 싫어 전시장에서 벽 대신 블라인드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블라인드라는 소재의 잠재력을 봤다. 그래서 주재료로 쓰게 됐다.

▶양혜규가 생각하는 공동체는 무엇인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공동체, 집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이 자동적으로 형성하는 공동체다. 소속이 파악되지 않은 사람들의 공동체. 그렇기에 소속감을 내세우지 않는다. ‘성채’ 안에 삽입된 영상이 나레이션으로 공동체에 대한 주제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만날 수 없는 이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성채를 비추는 조명과 여기에서 반사하는 빛이 스크린에 중첩되면서 그 어울림과 어긋남이 드러난다.

▶인공과 자연, 모조품과 원본이 의미하는 것은 뭔가.

-우리는 인공 모조품은 천박하고 원본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원본과 전통에 대한 충성을 요구한다. 나는 이것을 ‘함정’이라고 부른다. 함정에 함몰되는 것으로부터 빠져나오고 싶었다. 다양한 문화, 보편적인 것,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전시는 5월 10일까지 계속된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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