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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요광장-권대봉]설날 차례(茶禮)상에 노잣돈을 올리는 까닭은?
‘설’명절 연휴가 다가왔다. ‘설’은 시간적으로는 태음력으로 한해가 시작되는 새해 첫 날이자, 공간적으로는 부모와 자식이 만나고 형제자매가 만나며 조상과 자손이 만나는 첫 날임을 뜻하는 말이다.

새해 첫 날이 낯설기 때문에 ‘낯설다’에서 유래해서 ‘설’이 됐다는 해석도 있고, ‘설’이 나이를 세는 단위로 ‘살’로 바뀌게 돼 해가 바뀌면 ‘설’을 쇨 때마다 우리의 나이도 한 살씩 더 먹는다는 해석도 있다.

설 명절은 한해의 첫 소통이 이뤄지는 시간이다. 살아있는 사람들끼리의 소통도 있지만, 살아있는 자손과 돌아가신 조상이 차례라는 가족문화의식을 통해서 소통한다. 차례의식을 통해 우리 민족은 뿌리를 확인하고 조상과 소통하는 전통적인 문화가 있다. 차례나 제사를 모시는 사람을 전통문화계승자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례나 제사에 대한 문화적 가치를 도외시하고, 오직 가사노동의 관점에서만 조명하기 때문에 최근에 이른바 ‘명절 증후군’이란 부정적인 현상으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어 매우 안타깝다. 즉 명절 준비로 인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는 주부들이 명절 후유증으로 아프거나 가족불화를 겪게 되는 현상이 ‘명절 증후군’으로 묘사되고 있다.

부모 자식 사이는 일촌이고 형제자매 사이는 이촌이지만, 부부 사이는 남남처럼 촌수가 없는 무촌이다. 촌수가 무촌이면 혈연관계가 없다. 혈연관계가 없는 남편의 조상을 위한 차례준비를 하는 아내의 노력을 인정하고 보상하는 선조들의 지혜는 우리의 제사문화에도 절묘하게 나타나 있고, ‘명절 증후군’을 예방하는 처방도 담겨있다. 제사상 위에 올린 노잣돈이 바로 그것이다. 노잣돈은 여행비용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관혼상제(冠婚喪祭)에 찾아온 친척과 친지를 대접하고 노잣돈을 챙겨드리는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의 전통문화가 있다. 우리 민족은 살아있는 사람에게 노잣돈을 챙겨드릴 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고인에게도 노잣돈을 챙겨드리는 문화가 있다.

장례를 치를 때 저승에 가는 노잣돈으로 동전을 고인의 입에 넣어주거나 관에 함께 넣는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저승에서 이승으로 나들이하기 위해서는 여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제사상에 노잣돈을 올리는 가문도 있다. 주로 경제활동을 하는 남성들이 현금을 봉투에 넣어 제사상에 노잣돈으로 올린다. 제사가 끝나면 집안의 여성들 중 최고의 연장자가 제사상의 노잣돈을 거두어 제사준비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골고루 분배한다. 제사준비를 한 여성들의 노고를 가문차원에서 인정하는 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제사상에 올렸든 음식이나 술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음복(飮福)이라고 해 복을 받는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제사상에 올렸던 돈을 나누어 가지면 복을 받는 돈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며느리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이로써 며느리의 봉제사에 대한 인정이 이루어지게 되므로 피곤감도 어느 정도 사그라질 수 있다.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아내는 제사 후에 복이 들어오는 돈을 남편의 조상으로부터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으니 준비도 기분 좋게 할 수 있다. 여성이 결혼을 하면 남편 성으로 바꾸는 나라가 많지만, 한국 여성은 결혼해도 자기 성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아내는 성이 다른 시댁 조상을 모시는 제사를 가사노동차원에서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남편이 올린 노잣돈으로 제사 준비를 한 아내의 노고가 조상을 통해 상징적으로 인정된다면, 아내의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어 전통문화계승자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노잣돈은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노고를 인정해주는 일종의 소통문화다. 이번 설 명절에 가장이 조상들의 지혜인 노잣돈의 문화적 의미를 인식하고 실천한다면 전통문화를 계승해 가족의 기(氣)를 살릴 수 있다. 기(氣)가 살면 한 살 씩 더 먹는 식구들이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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