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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명의들 26편> “어려울수록 끝까지 환자의 손을 놓지 않아야죠”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백승혁 교수


[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지난달 27일 늦은 오후, 강남세브란스병원 2층 암병원에 위치한 다학제진료실에는 진료과가 다른 3명의 외과의가 모였다. 외과 백승혁 교수, 그리고 그와 함께 ‘융합수술팀’을 이루고 있는 비뇨기과 조강수 교수, 간담췌외과 김재근 교수다. 이들은 대장암이 장간막을 넘어 방광으로 넘어오고, 암이 폐까지 전이된 4기 대장암 환자의 수술을 앞두고 머리를 맞댔다. 최선의 수술 전략을 세우기 위해 함께 환자의 CT, MRI 등의 영상자료를 살피며 서로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간전이 부위는 S4, S5번 부위여서 전이된 병변을 중심으로 1cm 이상 경계를 두고 절제하도록 하겠습니다.” (김재근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백승혁 교수(서 있는 사람)가 융합수술팀 회의에 참석해 수술계획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직장암 부위는 수술 전에 화학방사선 요법을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암의 전립선과 정낭침윤이 확실합니다. 직장 후면과 옆 면을 절제하도록 하고, 조강수 교수께서 정낭과 전립선을 절제하는 것으로 하시지요. 이 때 직장암이 밖으로 노출돼서는 안되고, 수술 중에 종괴가 부서져 주위의 복강내 암세포가 오염되어서도 안되겠습니다.” (백승혁 교수)

“예, 알겠습니다. 그러면 정낭과 전립선 부분은 제가 직장 후면, 옆면 수술 시 동시절제를 진행하겠습니다. 이때 방광을 보존하면서 수술 후 소변 기능이 보존되도록 해 환자의 수술 후 소변 기능에 큰 문제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조강수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백승혁 교수가 제안해 곧 정식출범을 앞두고 있는 ‘융합수술팀’이 그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백 교수는 여러 과의 접근이 필요한 4기 대장암 치료에서 이같은 ‘융합수술’이 최적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여러 장기로 전이된 말기암에 대한 최상의 공격루트를 찾는 일종의 ‘고지점령 작전회의’라고 할까요. 수술의 설계단계부터 의견을 나누고 치밀하게 수술을 준비하면 그만큼 결과는 당연히 좋아지겠죠.”

지금은 일부 의료진과 함께 ‘융합수술팀’을 자발적으로 하고있지만 조만간 상설조직으로 만들어 매주 수요일 오후 1~2시 사이에 융합수술팀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백 교수가 융합수술팀 아이디어를 처음 적용한 것은 1년 전 연세암병원에 재작할때부터다. “기존의 다학제진료는 방사선을 먼저 할지 항암치료를 먼저할지 아니면 수술로 바로 갈지 협의만 하는 자리였어요. 꼭 뽑기 시험 같았죠. 결국 셋 중 하나 뽑으면 그걸로 끝이었죠.”

강남세브란스병원 외과 백승혁 교수(서 있는 사람)가 융합수술팀 회의에 참석해 수술계획에 대해 설명하고있다.

연세대 원주의대 90학번인 백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손으로 뭘 만드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글쎄요. 환자들에게 치료를 해줄 수 있는 치료 방법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또 환자를 확실히 살릴 수 있는 의술을 가지고 있는 임상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세부 전공으로 대장을 선택한 이유 역시 외과 중에서도 가장 다양한 질환군과 이에 따른 고난도 술기가 있어서다. 백 교수의 실력은 병원 내부에서도 이미 정평이 나있다. 수술방 간호사들이 자기 가족들이 대장항문질환이 생기면 백 교수에게 다 보낼 정도다.

백 교수는 대다수 의사들이 사실상 치료를 포기하고 대증요법으로 항암 약물치료나 방사선 치료를 하는 대장암 4기 환자에게도 적극적인 수술치료를 시도한다. “솔직히 4기 정도되면 대부분의 의사들이 수술을 잘 안하려고 해요. 힘들고 수술도중 사고가 생길 위험도 크고 수술 결과도 그리 좋지않기 때문에 고된 작업이죠. 하지만 외과의사가 된 이상 어떻게든 환자를 살려야 하는 것이 의사의 책무가 아니겠어요”라는 백 교수의 단호한 말투에선 외과의사로서 그가 가진 소신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완치는 적절한 수술에서 나옵니다. 수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고된 여정이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몸속에 보이는 모든 암을 제거했을 때, 적절한 항암 요법과 더불어 완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백 교수가 요즘 주목하는 분야는 말기 대장암환자에 적용하는 ‘로봇수술’이다. 개복수술에 비해 출혈, 합병증을 줄이고 빠른 회복을 돕는 ‘최소침습수술’인 로봇 수술은 수술부위를 10배까지 확대할 수 있고, 실제와 같은 3차원 입체 영상이 제공돼 안정된 수술 시야가 확보된다. 또 수술 도구 끝 부분의 돌림동작이 자유로워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백 교수는 2006년 6월 아시아 최초로 직장암 로봇 수술을 집도했고, 2007년에는 세계 최초로 로봇 직장암 수술을 100례 집도하는 기록도 세웠다. 이런 성과로 그는 서양 의술을 배우는데 급급했던 당시에 한국인 최초로 1000여명이 넘는 미국 의사 앞에서 술기 결과를 발표하는 영광을 누렸다고 한다. 특히 최근에는 국제적인 외과 전문 학술지인 ‘Ann Surg (Annals of Surgery)’에 최소침습수술의 장기 성적을 보고해 크게 주목을 받았다.

백 교수는 말기 대장암수술에서 최소침습수술과 더불어 완치율을 한단계 끌어올리는 치료법인 ‘고열복강내항암치료(Hyperthermic intraperitoneal chemotherapyㆍHIPEC)‘을 국내에 소개한 장본인이다. 고열복강내항암치료란 복막에 있는 암을 제거하는 수술 후,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항암제를 탄 42도의 뜨거운 물을 복막에 뿌리는 치료법으로, 10년 생존율을 최대 41%까지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백 교수는 미국 워싱턴암연구소(Washington cancer Institute)에서 연수를 받고 돌아와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처음으로 대장암에 대해 고열복강내항암치료를 시도했다. “보통 병원에서 4기나 말기로 근치적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고열복강내항암치료를 시행하게 되는데, 모든 말기암 환자를 모두 살릴 수는 없지만 4기 환자에서 적응증이 정확히 되는 환자에게는 획기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고열복강내항암치료는 수술과 항암제를 동시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백 교수는 이를 ‘융합’의 치료법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실에 간이침대를 상비해놓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하는 외과의사의 스트레스해소법이 궁금했다. “솔직히 취미를 즐길만한 시간은 없고 나름 저만의 스트레스 극복법이라면 겨울등산을 좋아해요. 설악산은 4번 완주했어요”.

‘환자와 환자 보호자와 끝까지 함께 한다’는 자신만의 진료 철학을 백 교수는 가장 다양하고 많은 수술을 하는 외과 의사의 길에서 묵묵히 지켜내고 있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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