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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세계사] ‘요리덕후’ 다빈치의 못다 이룬 꿈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신은 가끔 재능을 한 사람에게만 몰아서 주신다.”

세기의 천재를 질투했던 한 화가가 남긴 말입니다. 그 천재의 이름은 바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그에게는 항상 ‘최후의 만찬’, ‘모나리자’의 명성이 따라옵니다.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와 웅장한 최후의 만찬 덕분에 우리는 그를 천재적인 화가이자 건축가로 알고 있지요.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그저 시대를 앞서간 예술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레오나르도가 정말 되고 싶었던 건 요리사였거든요. 소개팅의 정석으로 꼽히는 스파게티부터 시작해 포크, 냅킨, 와인따개, 건조대, 마늘 빻는 기구, 컨베이어 벨트까지 모두 레오나르도의 발명품이랍니다. 레오나르도야 말로 요리계와 발명계의 거장이었던 거죠.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거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는 모두가 잠들어 있는 어둠 속에서 너무 빨리 깨어난 인물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이탈리아의 어느 산골 마을 빈치에서 흔히 말해 속도위반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유명한 가문의 공증인이었고 어머니는 가난한 농부의 딸이었는데 신분 차이를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버립니다.

부모님의 집을 오가며 크던 레오나르도. 그는 열 다섯 살이 되던 해 피렌체로 갑니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서였죠. 레오나르도가 데생에 소질이 있었다는 걸 알아차린 아버지의 뜻이었답니다. 레오나르도는 다른 견습생과 같이 바닥청소, 잔심부름과 같은 허드렛일부터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림 연습은 뒷전이고 돼지처럼 처먹기만 하는 레오나르도가 스승 베로키오의 눈에 찰 리가 없었습니다. 당시 포동포동 살이 찐 레오나르도는 ‘뚱보’로 불리기까지 했답니다.

레오나르도의 스승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1472-1475경). 견습생 레오나르도가 그림 왼쪽 모퉁이에 있는 있는 천사를 그렸다.

어떻게 레오나르도를 혼낼까 고심하던 스승 베로키오. 그는 레오나르도에게 ‘그리스도의 세례’라는 그림 귀퉁이에 천사를 그리라고 시킵니다. 제대로 못 그릴 거라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완벽한 천사를 그려냅니다. 제자가 그린 천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베로키오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각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스승의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레오나르도는 밤마다 피렌체 베키오 다리 옆에 있는 ‘세 마리 달팽이’라는 술집에 가요. 주방 일을 하기 위해서죠. 레오나르도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요리하는 게 즐거웠어요. 
레오나르도가 그린 천사 확대 그림

한때 레오나르도는 친구 보티첼리와 함께 술집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술집 이름은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 마리 개구리 깃발’입니다. 참 요란도 하죠. 이 술집은 그가 주방 일을 하던 ‘세 마리 달팽이’라는 술집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개업한 가게랍니다. ‘세 마리 달팽이’ 술집은 어떻게 된 거냐고요? 레오나르도가 이 곳의 주방 일을 도맡으면서 쫄딱 망했습니다.

아무튼 새로 차린 술집에서도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개발한 요리를 자신만만하게 내놓지만 번번히 손님들에게 퇴짜를 맞습니다. 지나치게 혁신적이었거든요. 앤초비 한 마리와 조각한 당근 네 쪽으로 꾸민 안주, 잎사귀를 올린 음식. 그저 돈이 있으면 고기만 먹던 시절이었으니 당시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음식이었죠. 더욱이 고기를 달라는 손님에게 조그마한 생선까지 내놓았다고 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술집은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형편없는 요리사로 소문이 났지만 레오나르도에게 그림을 그리는 건 여전히 따분한 일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의 그림 그리는 실력은 누가 봐도 최고 수준이었지만 그는 주문 받은 일감을 번번히 완성시키지 못했거든요. 이런 그의 습관은 평생 따라다녔습니다. 그가 완성한 그림은 스무 점도 안 된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레오나르도는 당대 잘나가는 집안에서 운영하는 밀라노의 어느 레스토랑에 취업합니다. 나이 서른이었습니다. 그가 요리 연구에 매진하던 시기도 이 때부터랍니다.



(*) 우연한 기회에 레오나르도는 마을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벽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요리광인 그의 취향에 딱이었죠. 레오나르도의 주방기구 발명품과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이야기는 내일 이어집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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