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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류 불평등 1만5000년전부터 시작됐다

  • 기사입력 2015-01-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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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족사회되면서 집단간 경쟁 심화
‘후손에 지위세습 위해 서열 조작
‘강한 족장이 다른가계 압도 차별
‘잉여물이 원인’기존주장 뒤집어



토마 피케티의 화제의 저서 ‘21세기 자본론’ 이후 소득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회불평등이 농경사회에서 비롯됐다는 기존 연구와 달리 수렵채집시대에 이미 불평등이 존재했다는 과학적 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사냥과 낚시로 생계를 유지했던 캐나다 고대 원주민 집터를 조사한 결과, 가장 큰 집터에서는 생선뼈의 75%가 4~5년산으로 크고 다양한 반면, 가장 작은 집에서 발견된 물고기 뼈는 2~3년산 작은 연어가 100%였다. 잉여산물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미시간대 고고학자 켄트 플래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 여기서 좀 다른 갈래로 씨족사회의 출현을 인간불평등이 생겨난 기반으로 든다. 가족보다 좀더 큰 집단인 씨족사회가 형성되면서 집단간의 경쟁이 심화되고 불평등이 생겨났다는 주장이다. 단지 잉여산물이 생겼다고 해서 불평등구조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켄트와 조이스가 공저 ‘불평등의 창조’(미지북스)에서 인류 불평등의 기원으로 제시하는 기점은 기원전 1만5000년이다. 생선을 훈제하고 장신구와 조각상, 음악을 즐긴 막달레나인을 보면 현대적 정신이라고 볼 만한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종족 정체성과 문화적 경계를 세우는 과정에서 상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규모가 큰 집단을 형성한 것이다.

저자들은 “빙하시대인 기원전 1만5000년 무렵 현대인간은 작은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살았고 사회적 평등을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지만 규모가 큰 사회가 형성됨에 따라 불평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무렵 작은 집단일 때는 집단의 성원들은 평등했고, 나눔을 존중했다. 잉여 식량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들은 개인의 재산을 축적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억제했다. 한 예로 부시맨으로 잘못 알려진 남아프리카의 수렵채집 집단 쿵족의 평등을 위한 노력은 눈여겨 볼만하다.

쿵족은 유능한 사냥꾼이 실력자로 부상하는 일이 없도록 선물을 교환하는 흑사로 제도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 사냥꾼들은 서로 자기가 만든 화살을 교환했다. 사냥꾼들 사이에는 힘, 민첩성, 활 솜씨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냥감이 한 사람의 유능한 사수의 화살에 맞아 죽은 것으로 밝혀지는 일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었다. 유능한 사냥꾼이 계속해서 사냥감을 차지하는 일이 없도록 화살을 교환한 것이다. .

루소는 자존감이 사라지고 자기애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이 불평등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순간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자존감과 자기애 모두 처음부터 있었다는 것이 명백해 보인다. 자기애와 자존감의 줄다리기는 빙하시대 사회의 가
장 중요한 논리적 모순의 하나였을 것이다.”‘(불평등의 창조’ 본문 중)

씨족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급격하게 불평등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 지위가 세습되는 것은 아니었고 씨족들 사이에 차별은 없었다.

그렇다면 인류의 수렵채집 사회에서 어떻게 불평등한 위계 서열 없이도 안정적으로 유지됐을까. 저자는 그 비밀이 수렵사회의 서열순위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즉 수렵채집 사회의 일인자는 신, 즉 초자연적인 존재였다. 또 이인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조상의 영혼으로, 살아있는 인간 중 어느 누구도 일인자나 이인자가 될 수 없었다.

불평등의 탄생은 바로 이 서열순위를 조작해야만 가능했다는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역사상 최초로 자신의 지위를 후손에게 세습하려고 했던 지도자들은 자기네 가계와 조상 영혼, 심지어 신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음을 구성원들에게 납득시키려고 했다. 신화는 이를 뒷받침해준다. 창세신화에서 후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지위를 정당화한 것이다. 우리 대 저들이라는 구분도 씨족을 형성하면서 생긴다.

세습 지위 사회에 불과했던 불평등사회가 계층사회로 나아가면서 왕국이 탄생한다. 왕국은 5500년전부터 19세기까지 인류사회에서 계속 발생했다. 세계 각지에서 건설된 최초의 왕국은 족장 가계간의 치열한 권력 찬탈의 결과물이었다. 어느 지역도 단순히 지위 사회의 규모가 커져서 왕국으로 변화한 곳은 없었다.

이는 공격적인 한 가계가 다른 경쟁 가계를 압도하는 우위를 확보해야 가능하다. 왕국에서는 대족장 시대의 불평등이 지속되거나 새로운 불평등, 이를테면 종족차별이 생기는가하면 특정 불평등이 심화됐다. 왕국보다 월등하게 규모가 큰 제국은 정복당한 상류층에서 자주성과 권한을 빼앗음으로써 새로운 불평등을 낳았다.

저자들이 인류사를 관통해 불평등을 야기시키는 동력으로 꼽은 세가지는 경쟁, 야심, 명망 축적이다. 고고학과 인류학이 보여주는 사례는 집단의 규모가 더 크고 복잡한 사회, 즉 불평등을 제도화한 사회가 자치권을 지키는데 유리했다는 사실이다.

저자들의 논점 중 흥미로운 대목은 왕국과 제국의 1세대에 주목한 점이다. 전례가 없는 이들 1세대는 새로운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경쟁자를 제거하고 부하를 늘려가는데 급급했다. 만들어놓고 나니 새로운 관리 방식이 필요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은 것이다.

저자는 최초의 왕국을 건설한 시조들에게는 선택방안이 많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각 지역 1세대 왕국의 건설 방식이 놀랄 만큼 비슷한 건 이런 이유다. 여기에는 지위사회중 일부 집단만 왕국으로 통합되고 다른 지위사회는 그렇지 못했는지 비밀이 들어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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