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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 & 스토리] “건축은 소통”…젊은 건축가 민현준의 ‘작은 건축론’

  • 기사입력 2014-12-19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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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영화 기자]요즘 우리 사회에 소통이 화두다. 지난 16일 처음 만난 ‘젊은 건축가’ 민현준(46) 엠피아트(mp_Art) 소장과 2시간 남짓 대화하면서 자주 귀에 꽂힌 단어도 바로 ‘소통’이었다. 홍익대 부교수로도 재직 중인 그는 “건축은 사람들과의 소통”이라고 강조한다. 건축가는 그런 점에서 여러 악기를 조율하는 지휘자와 같단다. 그의 지향점인 ‘작은 건축’, ‘공원같은 건축’은 이런 생각에서 비롯됐다. 한마디로 사람이 건물보다 돋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그가 설계한 건축물을 찾아가보면 사람, 소통, 만남을 중시한 휴머니즘이 녹아 있어 마음이 훈훈해진다. 

-교수와 건축가 사이…수업은 작업의 연장선

홍익대 정문 근처 한 허름한 건물 4층에 들어선 민 소장의 작업장은 간판이 없어 처음 찾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 안에 들어서면 켜켜이 쌓인 서류뭉치와 잡동사니, 건축모형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어 한번 더 놀랄 듯하다. 하지만 지저분해도 거북하진 않다. 아마 곳곳에서 활기와 생동감이 전해져 건축가 작업실 답기 때문일 거다. 인사를 건네는 민 소장에게 간판을 달지 않은 이유를 묻자 “손님들이 너무 많이 와도 힘들다”면서 너스레를 떠는 그다.

턱수염과 콧수염이 덥수룩한 민 소장의 첫 인상은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 상아탑보다 건설현장이 더 어울릴 듯한 외모다. 실제 그가 수염을 기르는 것도 현장에서 기가 세 보이기 위해서란다. 지금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도 현장에 가면 자연스레 커진다고. 하지만 대화 도중 눈에 띈 그의 손은 영 딴판이다. 웬만한 여자보다 희고 고와서 예술적 ‘끼’와 감성이 느껴진다.

민 소장은 교수 겸 건축가인 지금의 생활에 만족한다면서 두 일 모두 잘 하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을 통해 배우는 게 많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는 게 자극이 됩니다. 그래서 때론 만사 제쳐두고 학생들과 함께 여행을 떠납니다. 새로운 것들을 보면 어느새 젊은 감각이 샘솟죠”

그의 여행 예찬론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시절 전남 담양의 소쇄원에 우연히 들렀다가 시냇물 소리와 한옥의 정취에 취해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샌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추억이 지금도 건축 구상을 할 때 많은 영감을 줍니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비슷비슷해 옛 건축물에서도 배울 게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해외 건축물 중에서 그는 프랑스의 르 토르네 수도원을 최고로 꼽는다. 그는 르 토르네 수도원은 시간이 멈춘 듯 유행을 타지 않는 건물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엠피아트(mp_Art) 민현준 소장은 “건축은 사람들과의 소통”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그가 설계한 건축물을 찾아가보면 사람, 소통, 만남을 중시한 휴머니즘이 녹아 있어 마음이 훈훈해진다. 민 소장 앞의 모형은 그가 직접 리모델링 설계작업 한 ㈜헤럴드 사옥.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월드컵 광장 응원에서 한국 건축의 미래를 보다

어릴 적 미술에 소질 있는 걸 빼면 튀지 않는 아이였다는 민 소장은 착실히 명문고, 명문대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하지만 끼는 숨길 수 없었는지 대학 시절 사진에 심취해 동아리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가 건축가의 꿈을 품은 건 대학 1학년 때다. “수업을 들으면서 건축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뀌었습니다. 건물이 단순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라 인류 문명 자체라는 걸 알게 됐고, 건축을 평생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어요.”

그의 사회생활은 현대건설에서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시작됐다. 그후 작은 설계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그는 98년 외환위기를 지나면서 자신의 진로를 놓고 방황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는 선배의 충고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

“사실 현대건설에 다닐 때 쿠웨이트 건설 현장에서 번 돈을 털어 아파트를 사려다가 유학비로 썼습니다. 그런데 유학을 마치고 와보니 제가 사려던 강남의 한 아파트 값이 1억원에서 10억원으로 뛰었더라구요. 재테크에는 실패했지만 아파트 한채보다 더 소중한 걸 얻어 후회는 없습니다.”

UC버클리대 유학 시절 그의 지도 교수는 사회학과 출신이었다. 건축학도가 사회학과 출신 교수의 지도를 받게 된 배경이 궁금했다. “지도 교수님의 연구주제였던 사람과 의자와의 관계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좋은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면서 공간의 인문학적 가치에 대해 눈을 뜨게 됐죠. 공원같은 건축도 이때쯤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후 미국 시카고의 건축설계전문업체 SOM(Skidmore, Owings and Merrill)에 5년간 일하면서 열린 조직문화를 체험했다. 현대 건축사에 많은 업적을 남긴SOM은 우리나라에서 여의도 LG트윈타워 설계를 맡기도 했다.

“SOM은 유명 건축가 하나 없는데도 팀웍과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회사였어요. 심지어 인턴사원의 아이디어가 실제 프로젝트에 반영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또 사장들은 은퇴할 때 지분을 반납해 직원 누구나 노력하면 사장이 될 수 있었죠. 당시만해도 위계질서가 엄격했던 우리나라 조직 문화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미국이 좋아서 눌러살 작정이었던 그의 마음이 흔들린 건 2002년 월드컵을 겪으면서다. “국민들의 광장 응원 장면을 TV를 통해 보면서 저런 사람들을 주제로 한 건축을 해보고 싶단 생각이 문득 스쳤죠. 그러다 2005년 한국에 잠깐 들렀는데, 우리 사회의 변한 모습에 귀국행을 결심하게 됐어요. 택시 기사들이 친절해지고, 카페 밖에 의자가 놓이고...학교 다닐 땐 그게 딴 나라 얘긴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가 어느새 그렇게 바뀌었더라구요.”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아름다워

그가 지향하는 ‘공원같은 건축’은 광장과 통한다. “보통 학교, 병원, 사무실 등 특정 기능의 건물은 누군가를 위한 공간이자, 동시에 다른 누군가는 배척하는 곳이 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광장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듯,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간이 바로 공원입니다. 공원에선 나이, 학력, 재산 등에 상관없이 사람들이 여러 목적을 가지고 공존하는 것이죠.”

특히 공공건축물은 공원 같아야 한다는 게 민 소장의 생각이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에는 이런 소신이 잘 담겨 있다. 대표작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건물의 덩치를 의도적으로 줄이고 건물 외부에는 기와 지붕 같은 느낌의 테라코타 타일을 붙였다. 주변과의 조화를 통해 건물보다 사람들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서다. 동선이 정해진 기존 미술관과 달리 관람객이 주변 도로 어디서든 전시실로 접근할 수 있고, 섬처럼 흩어진 8개 전시실을 원하는 대로 체험할 수 있게 한 점도 눈에 띈다. 또 곳곳에 마당을 마련해 미술관이 소통과 만남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충남 공주시 반죽동 옛 공주읍사무소 일대를 리모델링해 만든 포켓공원이 바로 이 마당의 모델이 됐단다.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조합한 덕분에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대미술관 서울관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공사를 마치고 장막이 걷히던 순간은 정말 감격스러웠어요. 주민들이 환호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근처의 한 카페 주인은 평생 공짜 커피를 약속했고, 밥값을 대신 내주겠다는 할머니도 계셨어요.”

㈜헤럴드 사옥 리모델링도 닫히고 권위적인 느낌의 건물을 사람 중심의 개방형 건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출발점은 벽 허물기였다. 내부 공간을 쪼개기보다는 합치는 데 주력했고, 건물 진입도 도로의 경사를 따라 지하 1층과 지상 1층, 두곳에서 가능하도록 했다. 또 건물 외부 마감재로 벽돌을 사용해 주변과의 조화를 꾀했다. 지하 부대시설 근처에 선큰(지표면 아래 공간)을 설치해 빛, 바람이 통하도록 하고, 투명 유리창을 통해 건물 밖에서도 사람들의 움직임이 보이게끔 한 점도 열린 공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민 소장은 ㈜헤럴드 사옥 리모델링 작업을 하면서 권위적인 느낌의 건물을 사람 중심의 개방형 건물로 바꾸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돈 안되는 작은 건축이 더 끌려

보통 건축가들은 작은 건물부터 시작해 큰 건물 쪽으로 발을 넓힌다. 하지만 민 소장은 정반대다. “큰 건축을 계속 하다 보면 바보가 될 거에요. 설령 돈이 안되는 외로운 길일지라도 죽을 때까지 작은 건축물 설계를 하고 싶습니다.” 민 소장이 작은 건축물에 푹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작은 건물 안에 오히려 큰 것이 있습니다. 큰 건물을 설계하다보면 멋지게 보이려고 기술적인 것에 집착하기 쉽습니다. 반면 작은 건축을 하다 보면 이용자들과 친밀히 소통할 수 있어 시대상이 담기고, 사회 흐름을 읽을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건축물, 세계적인 건축가가 나오려면 건축을 부동산이 아닌 문화로 보는 인식의 전환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건축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도 현실적인 충고를 했다.

“건축가는 경력이 적어도 10년은 돼야 명함을 내밀 수 있습니다. 이쪽 분야에선 나이 40이 넘으면 젊은 건축가란 소릴 듣고, 60∼70대 노장들도 많습니다. 내공이 생기려면 젊어서 고생은 각오해야죠. 더구나 요즘 건설 경기가 안좋아서 일감도 적습니다. 힘든 직업이고, 전망도 별로지만 평생 하면 재미있을 것같아 건축가를 지망한다면 도전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민현준 소장은 누구>

민현준 소장은 국내 건축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건축가로 꼽힌다.

민 소장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동고, 서울대 건축학과를 거쳐 1994년 현대건설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였다. 이후 건축사사무소 기오헌을 거쳐 UC버클리 환경대학원을 졸업한 후 세계적인 건축사무소인 미국 스킷모어 오윙스 앤드 메릴(SOM) 샌프란시스코 지사, 희림 종합건축사 사무소 등에서 실무를 다졌다.

이후 2005년 건축사사사무소 엠피아트(mp_Art)를 세웠고, 2006년 부턴 홍익대 건축대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행복도시 중앙공원 국제현상설계(2007년), 수변도시 비전 공모(2009년) 등에 입상했다. 2010년엔 공주 국고개 환경디자인으로 대한민국 공공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이름이 건축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같은 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현상설계에 당선되면서다. 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설계로 ‘2014 한국건축문화대상’ 대통령상을 받았다.

/betty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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