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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늙어가고 죽어가는 시간을 마주하기, 삶의 존엄을 위한 죽음의 성찰
늙어감에 대하여/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돌베개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속절없이 늙어가는 사람에게 그 쇠락을 두고 ‘귀족과 같은 우아한 체념’이라거나 ‘황혼의 지혜’ 혹은 ‘말년의 만족’이라는 말따위로 치장해 위로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 굴욕적인 기만에 지나지 않는다.”(‘늙어감에 대하여’ 중)

“드디어 아버지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그 결정이 언제 실행에 옮겨질지 시간표도 결정되었다. 며칠 뒤 스스로 목숨을 거두겠다고 했다. (중략) ‘당신이 살아 누리는 기쁨을 되찾으려면 제가 뭘 어떻게 해야 하죠?’ (아버지와 동거 중인) 베티나 여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상과 다른 반응에 놀란 아버지는 요도 도관 때문에 생겨나는 아픔을, 축축하게 젖은 침대를,품위라고는 잃어버린 구차한 삶을 이야기했다.”(‘죽음을 어떻게 말할까’ 중)

당신은 탄생 혹은 가능성과 가까운 나이인가, 죽음 혹은 완전한 무(無)에 더 가까운 시간에 있는가? 혹시 거울을 들여다보며 늘어가는 흰머리와 어제보다 마르고 쭈그러진 주름, 늘어진 뱃살의 자신을 낯설어하고 있진 않은가?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윌리 오스발트 지음. 김희상 옮김/ 열린책들
과연 늙는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성찰을 담은 두 권의 책이 최근 번역 출간됐다. 제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동했으며 2년간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됐고, 삶과 시대의 부조리에 치열하게 대면하는 깊은 사유와 저술로 20세기 유럽 지성으로 꼽힌 장 아메리(1912~1978)의 ‘늙어감에 대하여-저항과 체념 사이에서’와, ‘자유 죽음’을 선택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던 스위스의 저널리스트 윌리 오스발트의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아버지와 함께 한 마지막 한해’다.

장 아메리는 한 치의 타협과 양보도 없이 삶과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겪어낸 인물이다. 그가 쓴 ‘늙어감에 대하여’는 스스로 ‘굴욕적이고 기만적인 위로’라고 불렀던 늙음과 죽음에 대한 온갖 수사와 미사여구를 거부하고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시간을, 자신의 몸을, 사회를, 문명을,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해 날선 칼같은 사유로 성찰한 책이다.

늙어가는 사람은 마흔줄에 접어든 이가 될 수도 있고, 50이나 60살인 사람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에겐 “세월이 속절없이 흘러버렸다. 그래서 인간은 늙어가면서 시간을 발견한다. 발견된 시간은 곧 살아온 시간이며, 늙어가는 몸에 쌓인 시간이다. 그에게 다가오는 것은 죽음이다. 죽음은 그를 공간에서 통째로 들어낸다. 저자는 말한다. “그 자신과 그의 몸에서 남는 것을 탈공간화하면서, 그에게서 세상과 인생을 앗아가리라.” 반면, 젊은이에겐 ‘미래’가 있으며, 그것은 시간으로 표현됐지만 사실상 젊은이의 앞에 놓인 것은 세계이자 공간이다. 달리 말해 늙어가는 사람에게 죽음이란, 몸이 점유하고 활동할 세계의 완전한 부정이자 파괴인 것이다. 장 아메리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앙리 베르그송과 버트런드 러셀을 경유하며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탐색한다. 


탈공간화와 시간의 축적 사이에 놓인 몸은 점점 추하고 허약해진다. 거울 속에서 반점과 주름과 흰 머리와 늘어진 피부와 초점 잃은 눈을 확인하며 늙어가는 사람은 “이건 내가 아니다”라는 경악과 충격 한편으로 마치 상처와 흉터를 자랑스러워하는 용감한 전사같은 나르시시즘에 빠진다. 익숙함과 낯섦은 늙어간다는 것의 모순이자 이중성이다. 늙은이에게 몸은 점점 질량이 되며, 갈수록 에너지를 잃는다. 젊은이는 질량으로서의 ‘몸’과 질병과 고통의 반대로서의 ‘건강’을 느끼지 않으나 늙은이는 갈수록 ‘몸’ 그 자체가 돼 간다. 이것은 몸으로부터 불리된 정신적 자아와 아픔과 고통을 수반하는 ‘몸-자아’, 지나간 시간으로서의 ‘나’와 매일 늙어가는 낯선 자아간의 끊임없는 분열과 모순을 가져온다.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자아를 경우한 타인의 시선이다. 그것은 제도적으로는 ‘사회적 연령’이다. 늙어가는 자는 마치 보험사의 계산이 그러하듯, 과거에 쌓아놓아 지금 가진 것들, 즉 부와 업적, 직업으로만 평가된다. 그에게 “가질 수 있는 것”, 곧 가능성은 의미가 없다. 존재가 아닌 소유의 세계에서 늙어가는 이는 자유의지, 매 순간 인생을 원점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가능성을 봉쇄당한다. 사회적 연령은 그에게 ‘게임은 끝났다’고 선고한다. 


몸의 쇠락은 문화적 노화와 같이 한다. 장 아메리는 자신의 세대를 견주어 사르트르와 칸트와 프루스트와 스트라빈스키에 열광했던 세대의 취향과 철학이 ‘철지난 유행’으로 희화회되는 사례를 들며, 늙어가는 자가 겪는 문화적 노화를 논한다.

그렇다면 이 냉정한 사유의 결말은 무엇일까? 장 아메리는 “나이를 먹어가며 우리는 결국 죽어감과 더불어 살아야만 한다. 그야말로 괴이하고 감당하기 힘든 부조리한 요구”라며 노화와 죽음을 마주하길, 응시하길 바란다. 삶과 죽음의 근원적인 모순을 끌어안는 삶이다.

‘늙어감에 대하여’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사유를 담고 있는 반면에 ‘죽음을 어떻게 말할까’는 ‘자유 죽음’(존엄사)을 선택한 90대의 아버지와 그가 죽는 과정을 지켜본 아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 윌리 오스발트의 아버지 하인리히 오스발트는스위스의 유명한 관료 및 최고 경영자로 지난 2008년 스위스의 조력 자살 단체인 엑시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들이 함께 한 그의 마지막 1년간의 기록은 품위있는 삶과 죽음,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몫에 대해 담담하고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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