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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플앤데이터> 여의도로 돌아온 ‘왕의 남자’ 이정현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2년 동안 저를 머슴처럼 부려보고, 마음에 안 들면 바꿔버리세요”

새누리당 이정현(56) 당선인이 이번 전남 순천ㆍ곡성 재보선 기간 동안 입에 달고 다닌 말이다. 당 지도부의 지원 유세도 마다하고 오로지 ‘이정현 브랜드’로 승부를 걸겠다던 그는 이 기간 자전거 한 대로 나홀로 선거를 치렀다. “조직보다는 밑바닥 민심이 제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기어코 일을 냈다. ‘여당의 불모지’로 꼽히는 전남 순천ㆍ곡성에 출마한 이 당선인은 49.4%의 득표율을 기록, 18년 만에 호남에서 탄생한 보수당 지역구 의원이 됐다. 호남 선출직 도전 3전4기 끝에 새누리당 깃발을 꽂으면서 ‘박근혜의 남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사를 새로 쓴 ‘영웅’으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이 당선인이 17대 총선(광주 서구을)에서 1%의 득표율을 얻었던 것을 떠올리면 혁명적인 발전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박근혜의 입’을 자처하며 대통령과 국민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뜀박질을 했던 그의 여의도 입성은 이렇게 시작되는 모양새다. 19대 대선 당시 공보단장으로 ‘사랑방’을 이끌며 박근혜 후보와 국민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던 그가 이제는 국회와 국민들 사이에서 또다시 뜀박질을 하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는 시의원을 포함해 3번이나 야당 텃밭인 호남에서 선거를 치렀지만 지역주의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호남 국회의원이 되겠다”던 그의 도전을 두고 사람들은 ‘무모한 도전’이라 했다.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꼽혔기에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를 향해 “쉬운 길을 갈수도 있을 텐데 왜?”냐고 의문을 달았다.

하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셔도 이 당선인은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누군가는 지역주의라는 두터운 벽을 허물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도전과 성공에 박수를 보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숱하게 고배를 마셨던 과거 경험을 무기로 삼아 이 당선인은 재보선 한달 전부터 ‘예산폭탄론’을 공약으로 내걸고 바지런히 표심 잡기에 주력해왔다.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새벽 3시께 일어나서 환경미화원의 손을 잡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미치도록 일하고 싶습니다’라는 슬로건이 쓰인 현수막을 순천 곳곳에 걸어 일꾼 이미지를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을 때 예결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며 호남 예산 확보에 주력했던 일을 부각시켰다. 대신 청와대 정무ㆍ홍보수석을 지낸 ‘정권 실세’ 이미지는 의식적으로 피했다.

선거를 이틀 앞두고 이 당선인의 40분 간의 유세 연설 말미에는 유방암에 걸린 부인 김민경 씨가 선거 운동 이후 처음으로 유세차에 올라서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옆에서 아내의 모습을 지켜보던 이 당선인의 눈가는 이윽고 붉어졌다. 이날 연설을 계기로 이 당선인에 대한 ‘동정론’이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타고 전이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당선인의 국회 입성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몸을 낮춘다. 당선 직후 그는 담담하게 “이정현이 잘나서가 아니라 일단 한 번 기회를 줘보겠다는 의미란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31일에도 낡은 자전거 한 대를 다시 이끌고 곳곳을 누비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계획이다. 국민을 주인처럼 받드는 ‘머슴’ 이정현의 모습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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