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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이프칼럼-박인호 전원 칼럼리스트> ‘박 씨네 오이’가 맛있는 까닭
“박 씨네 오이는 달고 맛있어. 나중에 좀 더 얻어가도 될까?”(동네 어르신)

“그럼요, 언제든지 오셔요”(필자)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네요. 이제 우리가 키운 오이도 동네 분들께 나눠드리고…”(아내)

다소 감격에 겨워하는 아내의 말마따나 이런 날이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필자 가족은 2010년 지금의 강원도 홍천 산골마을로 들어온 이후 2012년까지는 동네 이웃이 재배한 농산물을 사먹거나 일방적으로 얻어먹기만 했다.

땅이 망가져있는 상태에서 자연농법을 한답시고 풀과 함께 작물을 키웠으니 뭐하나 제대로 된 수확물이 나오지 않았다. 꽤 넓은 밭에 고구마와 감자, 옥수수를 주로 심었는데, 필자 가족(4인)이 필요한 양의 절반도 채 건지지 못했다.

일단 가족의 먹을거리만이라도 자급해보자는 아내의 말에 2013년부터 가축분 퇴비를 뿌리고 밭갈이를 했다. 또 풀 억제 및 작물 생장 촉진을 위해 이랑과 고랑에 검정비닐을 씌웠다. 그러나 無농약·無화학비료 등 친환경 유기농법만큼은 고수했다.

그 결과, 2013년에는 필자 가족이 먹고 친인척과 지인에게 충분히 나눠줄 수 있을 만큼 수확을 했다. 고구마와 김장배추 일부는 동네 이웃에게 처음으로 나눔도 했다. 그동안 얻어먹기만 해서 염치가 없었는데, 올해는 오이까지 기쁜 마음으로 나눠드렸다.

이왕 자랑하는 김에 옥수수도 빼놓을 수 없다. 필자는 통상 옥수수를 키울 때 꼭 주는 요소와 복합비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또 벌레가 날아들어 옥수수수염을 뜯어먹고 수꽃(개꼬리)을 꺾어놓을지언정 절대 농약은 치지 않는다.

이렇게 길러진 옥수수 열매를 맛 본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말 맛있다”를 연발한다. 그러면서 비법이 뭐냐고 묻는다. 하지만 게으른 반쪽 농부인 필자에게 남다른 비법이 있을 리 없다. 만약 있다면 농약과 화학비료를 일절 금했다는 것뿐.

이렇게 몇 년이 지나자 땅은 서서히 살아났고, 기력을 회복한 땅은 건강한 자연의 맛을 선물했다. 물론 이를 얻는 대신 다수확에 대한 욕심은 접어야 한다. 필자가 기른 옥수수는 크기도 작고 수확량도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전업 농부들은 현실적으로 이런 농사를 지을 수 없다.

그럼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찾아 시골로 들어온 귀촌인들은 어떨까(2013년 귀촌인은 무려 2만1501가구에 달했다). 안타깝게도 이들조차도 건강한 맛 보다는 다수확에 집착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아직 5년차 반쪽 농부이지만 이젠 감히 말할 수 있다. 다수확 욕심은 내려놓고 먼저 땅을 살려 자연이 주는 건강과 안식을 맛보라고. 수십 년간 관행적으로 농사를 지어온 어르신 농부들도 그 맛을 인정하는 박 씨네 오이와 옥수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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