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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규모의 경제ㆍ채널간 경계 붕괴…패러다임 변화에 몰린 한국 유통
[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더 이상 규모의 경제에 의존하는 시대는 끝이 났다. 떠난 소비자를 다시 붙잡기 위해선 경쟁사, 아니 다른 유통채널에는 없는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

최근 유통시장에 대한 한 유통업체 고위 관계자의 분석은 백화점은 물론 대형마트, 홈쇼핑, 심지어 그나마 성장 여력이 있다고 여겨졌던 편의점과 면세점 등 국내 모든 유통채널이 안고 있는 고민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국내 내수시장의 절대적 기반인 유통업계가 거대한 패러다임의 변화에 휩싸이고 있다. ‘어떻게 성장하냐’의 1차원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생존하냐’의 고차원적인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국내 유통업을 둘러싼 패러다임의 변화는 유통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와 ‘채널간 경계’가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지고 있는데서 출발한다.

한 대형마트 고위 관계자는 “올해가 최대의 위기다”고 단적으로 말한다. 단순히 국내 소비심리가 현기증이 날 정도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외부 위기’가 아니다. 규모의 경제와 채널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전통 유통업의 위기가 외부 리스크를 더 크게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전통 경제학’에 의존해선 생존조차 담보할 수 없게된 셈이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우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며 “특히 채널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IT기술의 발달로 인해 가격경쟁력은 이제 부차적인 문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바잉(buying) 파워에 따른 가격경쟁력’과 ‘바잉파워에 따른 브랜드 유치력’이란 유통문법은 과거의 전유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유통은 온ㆍ오프라인 할 것 없이 ‘브랜드 제조업체’로 변모를 꾀하고 있고, 브랜드 제조업체로의 변화 길목엔 ‘아이템의 차별화’라는 거대한 산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차별화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나만의 아이템을 갖고 있냐의 문제와 함께 이것을 어떻게 배송할 것이냐의 물류 차별화가 있다”며 “아마존의 국내 진출을 놓고 유통업체들이 들썩이는 것만 봐도 유통 패러다임의 변화 방향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통업체가 더 이상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토털 라이프 스타일’(total life style)을 기획하고, 주문자제조방식(OEM) 이든 어떤 방식이든 이를 직접 제조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이를 배송할 수 있는 종합예술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패러다임 변화의 진원지는 1차적으로 ‘규모의 경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등 외부변수가 본격화한 지난 2012년 이후 대형마트의 신규 출점 자체가 사실상 막혔다.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지난해에 고작 2군데 오픈하는 데 그쳤고, 롯데마트는 그마저 한 곳도 문을 열지 못했다. 롯데마트의 경우 건물을 올리지도 못하고 땅만 놀리고 있는 곳이 4~5군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불과 3~4년전만 해도 1년에 적어도 10군데 이상 출점했지만, 지금은 점포 하나 여는 것 조차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그러다 보니 매출 성장에도 한계가 왔을 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인사적체 등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토로했다.

게다가 본지가 점포 당 인구수를 분석한 결과 대형마트는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했다. 대형마트 한 점포 당 적정 인구수는 10~15만명 정도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점포 당 인구수는 고작 10만3000명 선에 불과하다. 심지어 울산 같은 일부지역은 점포 당 인구수가 8만~9만명선에 그치고 있다.

점포를 확장할 수록 고정비 등 비용절감 폭은 물론 가격경쟁력 등을 확보할 수 있는 대형마트로선 치명적인 한계상황에 도달한 셈이다. 실제 이마트의 영업이익률(순수상품매출 기준)은 지난 2011년까지만 해도 7.0%에 달했던 것이 지난해엔 5.6%로 뚝 떨어졌다.


이와함께 유통채널간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도 유통 패러다임의 변화를 부추기고 있다. 채널간 경계가 무너지면서 브랜드 중복이라는 시장 동질화 현상은 넘어야 할 산이 되고 있다. 균일화 동질화된 시장에서 똑똑한 소비자를 충성 고객으로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가격 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상품이 필수라는 것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불과 2~3년전만 해도 경쟁사 하면 인근의 타 업체 한 두 곳으로 정의됐지만, 지금은 온라인ㆍ모바일 할 것 없이 모든 유통채널이 경쟁사일 뿐 아니라, 제조 브랜드사 까지 경쟁사로 인식되고 있다”며 “더 이상 손에 잡히지 않는 ‘최저가’ 타령만 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고 이를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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