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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우슈비츠에서 ‘인간’을 마주하다…‘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헤럴드경제=이형석 기자〕“라거(독일 나치의 강제수용소)의 ‘구조된 자들’(생환자)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본 것,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 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適者)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이자 이탈리아의 화학자이며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나치 학살의 증언들이 ”’정상적인‘포로들, 특권층이 아닌 사람들, 즉 수용소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으며 오로지 불가능할 것 같은 사람들의 조합 덕분에 죽음을 모면한 사람들의 말이나 글”로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가라앉은 자‘들, 즉 바닥에서 ’고르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흉악한 괴물)을 본 이들은 침묵하며, 크고 작은 특권을 누렸거나 행운에 의해 살아남은 자들만 증언한다고 했다. 프랑스의 철학자 조르주 아감벤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가리켜 ’증언에 내재한 증언의 근본적인 불가능성‘(’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들의 대리인으로서 끊임없는 증언의 충동을 느낀다고 토로하며,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진실을 파헤쳐간다. 그는 1947년 아우슈비츠의 수용 경험을 담은 ’이것이 인간인가‘를 써냈으며, 1986년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내놓았다. 둘 모두 증언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 중 프리모 레비의 유작이기도 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이소영 옮김, 돌베게)가 최근 번역 출간됐다. 강제수용소와 아우슈비츠를 둘러싼 다양한 현상을 통해 폭력성과 인간성을 분석한 책이다. 이 저서는 ’가라앉은 자‘로부터 ’구조된 자‘에 이르기까지다양한 인간군상의 행위와 동기를 연민이나 감상, 수식을 배제한 채 적나라한 모습 그대로 성찰한다. 가해자의 변명과 수용소 내 포로간의 권력관계, 이유없이 저질러진 잔학한 폭력, 생존자에게 나타나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비유없이 마주하는 사유는 통렬하고 고통스러우며, 적나라하다. 프리모 레비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내 관심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존엄성의 결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책은 인간이란 원래 악한 존재도 존엄한 존재도 아님을 말한다. 인간은 선과 악, 존엄과 타락 사이에서 오로지 선택과 결단만이 가능한 존재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또 다른 아우슈비츠가 나타날 것인가. 이 글의 엄정한 문체에서 암시되듯 프리모 레비는 아마도 절망의 편에 더 가까왔을 것이다. 그는 1987년 자살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수많은 폭력과 죽음의 사건들로 가해자와 피해자, 협력자와 방관자,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목격해야 했던 우리 사회와 역사에도 던지는 메시지가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고 묵직한 사유이자 인류사를 관통할만한 최후이자 최고의 ’인간학‘이라 할만한 책이다.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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