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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시아 “산티아고 순례길서 느낀 삶과 죽음의 관계가 음악 폭 넓혀줘”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싱어송라이터 루시아(Lucia)는 지난해 말 새 앨범 작업을 접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한 달 반 동안 무려 800㎞를 걷는 여정은 하루하루 포기의 유혹을 견뎌내는 일이었다. 지나온 길은 종일 걸어도 산봉우리 하나 보이지 않는 지평선 앞에서 무효였다. 족저근막염으로 인한 발바닥 통증은 끊임없이 의지를 시험하게 만들었다. 돌아가기엔 늦었고 나아가기엔 힘겨운 자갈길 위에서 지구 반대편에서 온 순례자는 철저히 혼자였다. 고독은 삶의 전반에 대한 진지한 고민으로, 결코 잦아들지 않는 고통은 죽음에 대한 성찰로 이어졌다. 루시아는 이전보다 넓어진 시야를 가지고 다시 앨범 작업에 들어갔고, 그만큼 표현의 폭도 넓어졌다. 지난 16일 서울 합정동 파스텔뮤직에서 정규 2집 ‘라이트 앤드 셰이드 챕터 1(Light&Shade Chapter 1)’ 발매를 앞둔 루시아를 만나 새 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루시아는 “여정 내내 그야말로 생지옥 같았던 순례길은 막연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도록 내몰았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삶에 대한 집중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며 “삶과 죽음, 옳고 그름 등 양극단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실은 하나의 덩어리로 공존하고 있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렸고, 이는 자연스럽게 빛과 그림자를 의미하는 앨범의 제목 ‘라이트 앤드 셰도우’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이번 앨범에는 더블 타이틀곡은 ‘비 마인(Be Mine)’과 ‘데미안’을 비롯해 ‘한사람’ ‘후(WHO)’ ‘해야 할 일’ ‘느와르’ 등 8곡(보너스 트랙 1곡 포함)이 담겨 있다.

이번 앨범과 전작들의 가장 큰 차이는 노랫말이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섬세한 결의 시적인 언어로 다루는데 탁월했던 루시아는 노랫말 주제의 범위를 인생 전반으로 확장시켰다. ‘비 마인’의 노랫말 ‘되돌릴 수 없는 실수로 널 기억하도록 남겨두지 마”는 소중했던 사람과의 갑작스러운 사별로 인해 깨달은 진심을 담았다. ‘후’의 가사 “우리 모두의 인생은 다른 색깔로 물들고 있어. 네 삶의 온도를 찾아 그러면 돼 그걸 따르면 돼”와 데미안의 “추락하면서 날아오르는 법을 배우는 새처럼”에선 무대 안팎의 삶 사이 벌어진 틈으로부터 오는 혼란과 불안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이겨내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루시아는 “창작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데 이는 ‘뮤지션’ 루시아에겐 도움이 되지만 ‘인간’ 심규선에게는 독이 될 때가 많았다”며 “순례길을 완주할 때까지 호전되지 않았던 족저근막염처럼 둘 사이의 간극은 끝내 메워지지 않을 성질의 것이지만 이를 좁히고자 하는 노력은 행복과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가슴에 품은 채 일상을 보내고 있을 많은 사람들과 이런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가진 앨범이지만 마냥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정규 1집 수록곡 ‘버라이어티’처럼 발랄한 곡은 없지만 여성 보컬로서는 드물게 두터운 중저음 톤을 가진 루시아의 목소리와 피아노 음색의 조화가 돋보이는 ‘표정’, 보너스트랙으로 실린 ‘피겨여왕’ 김연아 선수 헌정곡 ‘실버 앤드 골드(Silver & Gold)’도 흥미로운 들을 거리다.

루시아는 “지난 소치 동계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은퇴무대가 편파 판정 끝에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분노했지만, 한편으로 김 선수의 의연한 태도를 보면서 감탄하기도 했다”며 “‘실버 앤드 골드’는 올림픽 폐막 후 3일 만에 온라인으로 공개했던 곡인데 다시 믹싱과 마스터링 과정을 거쳐 앨범에 실었다. 만에 하나라도 김 선수 이름을 판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경제적 이득을 취하지 않는 방식으로 저작권을 등록했다”고 전했다.

앨범의 제목에 붙은 ‘챕터1’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2집의 나머지 반인 ‘챕터2’도 오는 10월 발매된다. 이번 앨범은 사실상 더블앨범인 셈이다. 음반 시장의 축소로 정규 앨범 발매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는 매우 보기 드문 선택이다. 팬들을 위해 넘버링과 루시아의 친필 사인을 담은 한정판도 500장 출시됐다. 루시아는 앨범이 하나로 완성되는 오는 10월 단독 콘서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루시아는 ‘챕터2’ 발매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을 담은 에세이도 출간할 계획이다.

루시아는 “시대에 관계없이 사랑받는 명곡들처럼 오랫동안 두고 들을만한 가치를 가진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며 “많은 곡들을 만들었는데 이를 앨범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하려면 더블 앨범이란 수단이 불가피했다. ‘챕터2’에는 순례길 여정에 대한 곡들이 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여담으로 인터뷰 도중 루시아는 기분이 좋아진 듯 순례길 도중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줬다는 구연동화를 재연했다. 루시아의 구연동화는 전문가 이상으로 맛깔났다.

루시아는 “기회가 되면 꼭 디즈니 애니메이션 한국어 더빙에도 참여해보고 싶다”고 웃어 보이며 “언젠가는 꼭 심수봉의 노래처럼 기품 있는 트로트도 불러볼 생각이다. 나는 사실 트로트를 매우 좋아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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