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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과 가정의 내실경영자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나는‘여성’ 행장이 아닌 은행장이다”
‘여성’과 ‘내부승진’이라는 이중 유리천장을 깬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크지 않은 키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에서 치열한 경쟁 속 투사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아이러니했다. 남성 문화가 강하다고 알려진 은행의 수장이라니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함께 있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안겨줬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그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권 행장은 닫힌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지 않았다. 따스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열었다. ‘소통’의 최고경영자(CEO)였다. 그런 그를 봄햇살이 그윽한 3월 중순에 을지로 본점에서 만났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이 을지로사옥 1층 중소기업 고객을 위해 마련된 ‘명예의 전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명예의 전당엔 기업은행과 오랜 인연을 맺은 중소기업 대표의 얼굴을 새긴 동판ㆍ동상과 생산제품이 전시돼 있다. 권 행장은 “중소기업이 있었기에 지금의 기업은행이 있을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다.[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난 여성 은행장이 아닌 은행장”=올해 초 여론은 권선주 행장을 주목했다. 금융권을 통틀어 최초의 여성 CEO가 탄생했기에 그는 뉴스의 중심이었다. 이름에 ‘최초의 여성 은행장’이란 수식어가 늘 붙어다녔다.

권 행장은 “매우 영광스럽지만 앞에 붙은 ‘여성’이란 단어는 빼고 싶다”고 했다. 그는 “더 이상 여성이란 이유로 주목받는 시대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단순히 여성이란 이유로 발탁됐다면 버텨낼 수 없다. 능력까지 갖췄다는 점이 요즘 여성 리더들의 공통점”이라고 강조했다.

권 행장도 “은행장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기업은행의 목표는 고객이 가장 ‘신뢰’하는 은행을 만드는 것이다. ‘은행장 권선주’의 갈 길이다.


경영 목표를 물었다. “임기(3년) 내 기업은행을 ‘내실 있게 성장하는 강한 은행’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취임하고 내실을 강조하다 보니 안팎에서 ‘성장을 안 하려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아닙니다. 은행도 기업인데 수익을 내는 건 최우선 목표죠. 너무 당연한 것이라 말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건전성을 높이고, 기초체력을 키우면서 성장하겠다’ 이게 바로 제 생각입니다.”

2016년까지 기업은행을 글로벌 90위권 은행으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내놨다. 현재 105위(자산규모 224조원)로, 3년간 해마다 5%씩 성장해 총 50조원의 자산을 늘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권 행장은 “저금리 시대에 수익성이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리의 강점인 중소기업 대출과 기회인 창조금융사업, 그리고 평생고객 확대를 통해 이뤄내겠다”고 다짐했다.


▶폭탄주ㆍ뒷담화는 그만=상명하복의 수직적이고 수동적인 기업문화를 바꾸겠다고 했다.

권 행장은 “술자리에서 폭탄주를 돌리고, 끼리끼리 모여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건 목표 달성에 좋지 않다”고 단언했다.

“과음은 건강에 나쁘고 업무에도 지장을 줍니다. 그래서 저는 (모임의) 호스트일 때 잔을 돌리지 않아요. 술자리에서 끼리끼리 수군대는 문화도 바꿔야 합니다. 의견이 있다면 당당하게 나와서 얘기해야지, 뒤에서 실체없는 소문을 만들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술자리 뒷담화는 사회적 낭비입니다.”

권 행장이 술을 못하는 건 아니다. 지점장 생활을 하며 폭탄주를 곧잘 들었다. 술 취하지 않은 척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술자리 대신 그는 소통의 기회를 늘릴 생각이다. 취임 직후부터 줄기차게 외친 효과일까. 취임 3개월 만에 곳곳에서 변화가 보인다.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본인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더라고요. 격의 없이 대화합니다. 소통의 기회를 더 늘릴 겁니다. 이게 권선주 리더십입니다.”

직접 고객을 만나는 일은 권 행장의 가장 중요한 일과다. 그래서 고객 조찬간담회를 늘렸다. 저명인사가 아닌 일반 고객들과 둘러앉아 아침을 먹으며 얘기를 나눈다는 점에서 직원과 고객 모두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고객의 얘기를 직접 듣고 관련 직원들의 의견과 애로사항을 바로 들을 수 있어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현재까지 3개 지역본부, 7개 지점을 다녀왔는데 18개 본부로 쭉 이어갈 생각입니다.”

▶“혼낸다고 변하지 않거든요”=인터뷰 동안 권 행장은 어떤 질문에도 목소리를 높이거나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 날선 질문도 여유 있는 웃음으로 받아쳤다.

“화도 내십니까?”라고 물었다. 담담했다. “저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질책하지도 않고요. 효과가 없더라고요.”

워킹맘 시절의 기억을 풀어냈다.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인데 퇴근하고 집에 오니 없는 겁니다. 주위 학부형에게 들으니 우리 아들이 게임방에 있다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났죠. 때리진 않았지만 엄청 혼을 냈던 적이 있습니다.”

훗날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엄마 권선주에게 “그때 엄마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서 너무 슬펐다”고 했다고 한다.

권 행장은 “아들이 느낀 건 반성이 아닌 서운함이었던 거죠. 그 뒤로 절대 혼을 내지 않습니다. 가족에게도 직원에게도요.”

당시 경험은 그가 지점장 등 관리자로 승진하면서 직원들을 상대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됐다.

“잘못을 하면 잘못한 사람이 더 잘 압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제일 괴로운 사람이 본인이거든요. 믿어주면 배신하지 않습니다. 고객의 신뢰를 받기 위해선 제가 먼저 직원들을 신뢰해야죠.”

▶‘인간 권선주’=‘은행장 권선주’와 ‘인간 권선주’는 달랐다. 강한 어조로 비전을 제시하던 권 행장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자 책을 사랑하는 ‘소녀’가 됐다. 어린 시절을 되새길 때는 활짝 미소가 내내 이어졌다.

“어렸을 때 책을 정말 좋아했어요. 글도 쓰고 그랬죠. 사실 입행 전 신문사 기자로 합격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은행원이었던 아버지와 언니의 영향인지, 아니면 운명인지 은행원이 됐죠.” 권 행장이 기분 좋은 추억에 빠졌다.

책을 둘러싼 남편과의 작은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제가 초등학교 때 읽은 60권짜리 소년ㆍ소녀 문학전집이 있는데 아직까지 그 책들이 우리 집 책꽂이에 꽂혀 있어요. 남편은 수년째 버리자고 하는데 못 버리겠더라고요. 아이들이 어렸을때 그 책을 꺼내 읽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제 추억에, 아이들 추억까지 묻어 있는데 어떻게 버려요. 못 버립니다.”

한번 맺은 인연은 그에게 특별했다. 취임 후 첫 일정으로 1978년 처음 은행원 생활을 시작한 동대문지점을 방문해 30여년 전 고객을 만났다. 기업은행 광고모델로 인연을 맺은 방송인 송해 씨와 새로운 광고도 선보일 예정이다. ‘대한민국 모두가 거래할 수 있는 기업은행장 권선주’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권 행장. 1400만 고객을 평생고객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각오는 남달랐다.

▶며느리가 일한다면 손자는 기꺼이=출근하면 CEO지만 집에선 평범한 주부다. 아침 조찬모임이 없으면 가족의 아침식사를 직접 챙긴다.

엄마란 존재가 그렇듯, 자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는 게 엄마다. ‘워킹맘’이라 더 그렇다. 게임을 좋아해 한때 부모 속을 상하게 했던 아들과 출근 때마다 눈에 밟히던 딸도 이제 권 행장을 챙겨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은행원 아버지와 은행원 언니를 둔 그는 은행 선배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대기업 임원이었던 남편은 권 행장의 사회생활을 적극 지지했다. 현재 중소기업 대표로 중소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권 행장의 영원한 동반자다.

올해 서른이 된 아들은 권 행장을 쏙 빼닮았다. 은행장이 됐을 때 “엄마가 좋으면 나도 좋아”라고 매우 담담하지만 속 깊은 축하를 했다고 한다. 딸(27)은 디자인을 전공하고 현재 국내 MBA(경영학 석사) 코스를 밟고 있다.

권 행장은 은퇴 후의 삶은 오롯이 가족을 위해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요리를 배워서 그동안 소홀했던 가족들에게 만회하고 싶다”고 말했다.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미래 며느리가 직장에 다니는 게 좋은지, 살림만 하는 게 좋은지를 물었다.

“글쎄요. 아들이 어떤 걸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아들이 좋으면 저도 좋아요. 손자요? 키워 달라면 키워줘야죠. 제 노후 목표는 가정의 내실경영입니다.”

대담=김형곤 금융투자부장/kimhg@heraldcorp.com

정리=황혜진 기자/hhj6386@heraldcorp.com


<권선주 행장이 걸어온 길>

▷1956년 전북 전주

▷경기여고,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1978년 중소기업은행 입행

▷1998년 방이역지점장

▷2001년 역삼중앙지점장

▷2003년 서초남지점장

▷2005년 CS센터장

▷2007년 PB사업단 부단장

▷2008년 외환사업부장

▷2010년 서울중부지역본부장

▷2011년 카드사업본부 부행장

▷2012년 리스크관리본부 부행장

▷현재 24대 기업은행장


◆멘토(이성남 전 의원)가 본 권선주 IBK기업은행장

[헤럴드경제=황혜진 기자] “청취력과 관찰력이 뛰어나 타인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권선주 IBK은행장의 멘토는 권 행장에게 이런 평가를 내렸다. 그의 멘토는 금융통화위원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지냈던 이성남(67ㆍ사진) 전 국회의원(18대ㆍ민주당)이다. 두 사람은 같은 경기여고 출신으로 몇 안 되는 금융계 여성 선후배로 만나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권 행장에 대해 “힘이 넘치는 투사형 리더는 아니지만 남의 얘기를 잘 듣고 다른 사람의 장점을 빨리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특별한 조언을 한 것도 아닌데 대화 속에서 자신의 고민에 맞는 해답을 스스로 찾더라. 그것이 바로 능력”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전 의원은 권 행장이 전임 조준희 행장 체제를 흔들지 않고 유지하는 것을 보며 ‘여성 리더라 다르다’고 느꼈다고 한다. 대부분 새 리더는 취임 후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전임자의 색을 지우고 조직에 자신의 색을 입히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 행장 취임 이후 만난 첫 자리에서 그는 “정말 훌륭하다. 절반은 성공”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 대통령 효과가 어느 정도 작용한 인사라는 일각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분명히 반대했다. 이 전 의원은 “금융은 순간에 좌우되지 않는 중장기적 비즈니스”라며 “권 행장은 남성 못지않게 현장경험과 리스크 관리 부문이 뛰어나다. 준비된 인재다”고 설명했다.

금융계 여성 리더의 대모(代母)로서 리더를 꿈꾸는 여성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리더가 되고 싶다면 남성과 여성을 따지지 마라. 이미 양성평등 시대라고 생각하는 여성만이 치고 나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문제가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놀라울 만큼 역지사지(易地思之)하고 남의 장점을 자신에게 접목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hhj6386@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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