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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cod)가 미국 독립혁명을 야기시켰다?
사상, 종교, 경제, 인종 갈등은 혁명과 전쟁 등 인류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거대 담론부터 떠오르는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 혹은 인간으로부터 나온 것 외의 존재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고 생각하긴 쉽지 않다. 그것도 우리의 밥상 위에 오르는 물고기가 인류의 역사와 지도에 변화를 줬다고 상상력을 발휘하긴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대구’의 저자 마크 쿨란스키는 그런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바이킹의 대이동 시기인 8세기부터 최근까지 1000여 년 동안 대구(cod)를 둘러싸고 벌어진 역사를 연대기 형식으로 풀어낸다. 어부 집안 출신으로 대구잡이 저인망 어선에 승선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십분 발휘해 대구의 역할, 생태, 요리법 등을 7년간 밀착 취재해 고증하고 집대성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세계의 역사와 지도가 대구 어장을 따라 변화해왔다’는 획기적 시각으로 새롭게 세계사를 펼쳐 보인다.

우선 저자는 대구의 생태적 특징부터 밝힌다. 대구는 몸집이 크고 개체수가 많으며 맛도 담백해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어종이다. 또한 대구는 얕은 물을 좋아해 포획하기 쉽다. 이 때문에 대구는 오래전부터 상업적으로 유용한 생선이었다.


역사상 대구는 유럽인의 주요 식량이자 부를 쌓는 수단이었다. 바이킹은 먼 거리를 항해하는 동안 말린 대구를 주식으로 삼아 콜럼버스보다 훨씬 먼저 신대륙인 미국 북동부의 뉴잉글랜드에 도착했다. 바스크족은 북아메리카 해안의 숨겨둔 황금어장에서 대량의 대구를 낚아 올려 유럽인들에게 팔았다. 1620년에 종교 박해를 피해 대서양을 건넌 영국의 신교도들은 대구가 풍부한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정착했다.

18세기에 들어서 대구 무역의 중심지였던 뉴잉글랜드는 국제적인 상업 세력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소금에 절인 대구를 지중해 시장에 판매해 큰 이익을 챙겼으며, 저급한 물건을 서인도제도의 설탕 플랜테이션(식민지에서 값싸게 착취한 노동력으로 일군 산업형 농장)에 팔았다. 그곳의 노예들은 질 낮은 절인 대구로 하루 16시간의 중노동을 버텼다. 결과적으로 대구는 노예무역을 더욱 활성화시켰다. 


민족 이동과 노예무역에 영향을 미친 대구는 국가 간 어획을 둘러싼 경쟁과 갈등을 부추겼다. 18세기 영국은 식민지인 뉴잉글랜드의 당밀과 차에 세금을 매기고 대구 무역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 식민지인들의 반발은 미국 독립혁명으로 이어졌다. 1782년 영국과 미국의 평화협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 역시 미국의 대구잡이 권리였다. 아이슬란드는 영국과 1958년부터 1975년까지 대구 어업권을 둘러싸고 세 차례에 걸쳐 ‘대구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 전쟁은 아이슬란드의 200마일 영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끝났고, 국제 해양법상 경제수역이 200마일로 결정되는 계기를 가져왔다.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브라질, 자메이카 등 다양한 나라의 대구 요리법 소개다. 이 책에 소개된 ‘입술을 제거한 대구 머리 튀김’, ‘바스크 식 대구 혀 요리’, ‘대구 부레 구이’, ‘소금 절임 대구 크로켓’ 등 맛을 짐작하기 어려운 신기한 요리들은 역사 이야기 이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어업의 현대화는 대구 개체수의 가파른 감소를 불러왔다. 1950년대 들어서 저인망으로 물고기를 쓸어 담아 즉시 냉동처리하는 작업이 가능해지자 대구 어획량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늘어나 생선가격을 주기적으로 폭락시켰다. 1992년 캐나다 정부는 대구의 상업적 멸종이 자명해지자 뉴펀들랜드 근해, 그랜드뱅크스, 세인트로렌스 만 해저 어업을 무기한 금지했다. 이로써 3만여 명의 어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과거 서민의 식탁 위에 흔하게 올랐던 명태는 현재 연근해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일부 지역에서 열리는 명태 축제는 국산 명태가 없어 러시아산 수입 명태를 동원해야 했다. 그러나 명태의 새끼인 노가리는 여전히 주점에서 저렴한 마른안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명태는 대구목 대구과에 속하는 한류성 바닷물고기다. 대구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즐겁게만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대구/마크 쿨란스키 지음, 박중서 옮김/알에이치코리아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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