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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쓰레기를 살피면 인류의 역사를 살필 수 있다
[헤럴드경제=정진영 기자] 경남 김해의 패총(貝塚)은 고대 가야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최초의 유적 발굴지다. 포주 항아리 파편으로 이뤄진 유적인 로마 근교의 몬테 테스타치오는 고대 로마의 수백 년 역사가 쌓여 있는 고고학자들의 성지다. 이처럼 고대의 쓰레기는 역사의 기억을 되살리고 과거에 대한 귀중한 증거를 밝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쓰레기, 문명의 그림자(따비)’는 쓰레기를 만들고 활용하며 싸워온 인간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쓰레기라는 단어는 비위생적이어서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서 처리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저자이자 프랑스의 쓰레기 전문가인 카트린 드 실기는 쓰레기가 거주지에서 격리된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쓰레기를 처리 문제를 둘러싼 논쟁의 장을 권력과 돈, 학문이 격돌하는 현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거 인간이 만들어낸 쓰레기는 대부분 유기성 쓰레기로 가축을 먹이고 발효시켜 퇴비로 쓸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었다. 사람과 말의 배설물이 쌓여 만들어진 도시의 진흙탕은 시골의 밭을 비옥하게 해주는 보물이었다. 문제는 양이었다. 도시가 형성된 이래 거의 1000년 동안 유럽의 도시는 창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내던지는 오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러웠다. 거리를 걷던 귀족들이 쓰레기와 배설물에 얻어맞는 일은 중세 초기부터 에밀 졸라가 소설을 집필하던 19세기까지 계속됐다. 



“앙시앵 레짐 시기에는 만성적인 퇴비부족으로 농부들은 읍내나 도시에서 뱉어낸 배설물을 재활용했다. 그들은 경험으로 아는 모든 것을 거둬들였다.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모든 물질, 즉 재, 혈액, 뼛가루, 가죽공장 폐기물 또는 톱밥이나 양모조각, 굴 껍데기, ‘애니멀 블랙’으로 불리던 골탄 등을 수거했다. 그중에서도 농부들이 특히 좋아한 것은 화장실에서 퍼낸 사람의 똥오줌, 고인 물, 생활쓰레기, 말똥, 돼지똥, 가금류의 똥이 뒤섞인 거리의 진흙이었다.”(73쪽)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자연에서 취한 것을 오래 쓰고 최대한 활용했으며 최후에 남겨진 것을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쓰레기, 자연으로 되돌릴 수 없는 쓰레기가 발생하자 이를 처리하는 문제는 사회의 최대 골칫거리가 됐다. 쓰레기로부터 도시를 구하기 위해 유럽의 위정자들은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말도록 시민들의 자발적인 협조를 구하기도 했고, 왕명과 칙령으로 쓰레기통 사용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쓰레기의 수거ㆍ재활용ㆍ폐기는 막대한 이권이 개입되는 거대산업으로 떠올랐다. 배출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기 위해 돈을 주고 구입해야 하는 종량제 봉투가 각 가정에서 쓰이고 있으며, 독일에선 빈 병에 대한 보증금제도가 외국 양조업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해 숨어 있는 통상 장벽 노릇을 한다.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 지침의 이면에는 커다란 경제적 이해관계가 숨어 있었다. 원대한 재활용 목표 뒤에, 어떤 나라는 통상과 자유로운 경쟁을 막으려는 의도를 숨긴 채 의심스러운 정책을 펴기도 했다. 덴마크는 자국에서 재활용할 수 없는 용기포장재의 수입을 금지하려 했고, 독일 술집들이 보증금제도를 시행하는 포장용기를 선호한 탓에 외국 양조업자들은 빈 병을 수거하여 자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불이익을 겪었다.”(255쪽)

한편에선 쓰레기가 빈민의 구제수단으로 쓰이거나 예술로 승화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가 설립한 엠마우스 공동체는 쓰레기 수거를 통해 빈민들을 지원하고 공동체를 먹여 살릴 자금을 얻고 있다. 또한 인도의 비정부기구 컨서브가 빈민들이 수거한 폴리에틸렌 봉투를 재가공해 만든 다양한 색깔의 가방은 유럽의 고급 매장에서 팔리는 고가의 패션 상품이 됐다.

“창작의 재료로서 쓰레기가 지닌 매력은, 훼손과 더러움에 관한 강박관념, 편집증을 닮은 제거행위, 그리고 인간성 말살로 이어지는 처절한 소독제일주의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온다.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함으로써 늘 새것만을 좇으며 낡은 것은 쉽게 버리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안토니 타피에스는 ‘더럽고 망가진 물건은 때로 부르주아들의 위생적인 상품보다 훨씬 더 고결해 보인다’라고 설명한다.”(333쪽)

현대 사회에서 쓰레기는 점점 커져가는 골칫거리다. 결국 해결책은 쓰레기를 덜 만드는 것뿐이다. 저자는 쓰레기 처리 전략과 방법의 혁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도 잊지 않으면서도, 쓰레기가 단순한 악이 아니라 유용한 자원임을 잘 보여준다.

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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