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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틀리지 않은 음악은 틀렸다…창조적인 감동줘야 예술”
유라시안필 CEO · 인천시립예술단 감독 · 서울예고 교장…‘찾아가는 클래식’ 마에스트로 금난새의 도전과 철학
위대한 오케스트라 지휘자보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휘자…
그게 나의 철학

우리학교 교장실은 오디션장
자신만의 스타일 살려주는
창조적인 예술가 길러내야죠

아버지는‘그네’등 작곡가
그 피 덕분에 창조적인 발상
‘금난새’해방 후 첫 한글 이름


“(연주)홀이 나쁘지만 청중은 좋을 수 있어요. 홀은 좋은데 청중이 빈약할 수도 있어요. 홀이 나빠도 훌륭한 청중이 있는 것이 더 가치 있지 않을까요?”

유라시안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는 충무아트홀에서 만난 금난새(67)는 과거 서울문화재단의 이동식 천막극장에서 공연했던 얘기를 꺼냈다. 물론 예술의전당 등에 비하면 음향이 좋지 않은 무대였다. 금난새는 자신만의 쉽고 재미있는 해설을 곁들인 브런치콘서트를 진행했다. 여기에 푹 빠져든 다수의 관객이 서울문화재단에 공연을 또 해 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유라시안필은 그곳에서 여섯 차례 공연을 더 했다.

청중에게 고마움을 느꼈던 금난새는 “비록 천막극장이지만 이곳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을 들려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결국 그의 바람이 이뤄져 합창단과 풀오케스트라가 함께 천막극장에서 베토벤의 ‘합창’을 주민에게 선사했다.

“‘위대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혹은 ‘위대한 공연장에서 지휘했다’보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대기업 로비를 공연장으로 만든 국민 지휘자=‘국민 지휘자’ 금난새는 음악가 자신을 위한 음악보다는 청중이 원하는 음악을 들려주며 클래식 청중 저변 확대에 나섰다. 청소년음악회나 해설이 있는 음악회 등이 대표적인 시도들이다.

공연장에 앉아 청중을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대기업 로비나 도서관을 찾아가 무대를 만들기도 했다.

새 천년을 앞둔 1999년 12월 30일 오후 10시 서울 강남 포스코 본사 로비에서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연주해 1000여명의 직원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이후로도 로비음악회를 통해 해마다 베토벤 교향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연주를 이어갔다.

1999년 설립된 벤처 오케스트라 유라시안필은 처음에는 연습실이 없어 국립중앙도서관 강당에 상주했다. 임대료 대신 10차례 연주를 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는 도서관 이용자들의 지적 수준에 맞춰 평소에 많이 연주되지 않는 하이든 교향곡이나 한국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는 등 나름 심혈을 기울였다. 연주가 끝난 뒤에는 ‘뭐가 좋았는지’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등의 설문조사도 했다.

지휘자 금난새는 포스코 본사 로비, 천막극장 등 연주장소를 가리지 않고 청중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클래식 음악 대중화에 힘써왔다. 지난해 서울예고 교장으로 취임한 그는 창조성을 지닌 예술가들을 길러내는 데 역점을 둘 생각이다. 안훈 기자/rosedale@heraldcorp.com

관객을 먼저 찾아가고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나갔던 유라시안필은 2005년 40개 지역에서 136회 연주를 하는 오케스트라로 성장했다. 정기 연주회가 아니라 전부 관객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제 공연에 가족이나 친척도 표를 사서 오라고 하고 음악가들을 따로 초청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한다는 것이 다른 음악가들과 다른 점이죠.”

1992년 국내 오케스트라의 양대 산맥인 KBS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에서 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로 옮겨간 것도 보통사람 같으면 시도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는 “좋은 회사 CEO(최고경영자) 자리를 마다할 사람은 없겠지만 파산한 회사를 살리는 것이야말로 도전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취임하기 전 수원시향 연주회는 단원 수와 관객 수가 엇비슷할 정도로 유명무실했다. 청중이 있든, 없든 단원들의 월급은 꼬박꼬박 나왔다. 그는 단원들에게 변화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금난새는 1월 3일 시무식 날 수원시청 직원들을 위한 깜짝 신년음악회를 준비했다. 직원들이 오전 10시 전부 회의실로 들어간 뒤 청사 로비에 오케스트라단원들을 준비시켰다. 지루한 시무식이 끝나고 직원들이 회의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오케스트라는 즐거운 음악을 선물했다. 직원들의 열렬한 반응에 흥분한 수원시장은 그 해 단원들의 보너스를 올려줬다. 이후 단원들은 지휘자 금난새가 하자는 대로 따르기 시작했다.

1년에 여덟 번이었던 수원시향의 연주 횟수는 50~60회로 늘었다.

“수원시향이 열심히 하니까 수원에 사업장을 둔 삼성전자에서 10억원을 지원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좋습니다’고 하지 않고 ‘너무 많습니다’고 했더니 괴짜 취급을 했죠. 대신 1년에 4억씩 5년간 지원해 달라고 제안을 했어요. 10억원을 주면 10억원어치의 기대를 하고 거기에 못 미치면 후회를 하겠죠. 5년간 장기적으로 지원을 받아 매년 발전시켜 나가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디션 보는 교장선생님=유라시안필 CEO, 인천시립예술단 예술감독, 라움아트센터 예술감독, 창원대 석좌교수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금난새는 지난해 10월 모교인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까지 맡았다.

어느 날 이대봉 서울예고 이사장이 그에게 교장직을 맡아 달라고 제안을 해왔다. 이사장은 “바쁜 것 다 안다”며 “1년에 입학식, 졸업식, 개교기념일 이렇게 3일만 나오면 된다”고 거절할 수 없는 프러포즈를 건넸다.

매일 출근할 수 있는 교장 후보는 몇십명이지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교장은 금난새뿐이라는 것이다.

금난새는 서울예고 재학 시절 토요음악회를 만들어 미술과나 무용과,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초대해 음악과를 홍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그때 교장이 할 일을 학생인 내가 했었다”며 “학교 다닐 때는 ‘내가 교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제 교장이 됐으니 ‘내가 학생이라면 학교가 뭘 해주기를 바랄까’로 보는 각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금난새는 서울예고가 재능 있는 아이들의 집합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더욱 계발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숙제로 꼽았다.


그는 교장실에 있는 집기를 다 들어내고 페인트칠을 한 다음 피아노를 놓을 계획이다. 복도에서 지나가는 학생을 불러다 “교장실에 와서 한 번 쳐봐”라고 해서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수시로 작은 음악회도 열 예정이다.

지난달에는 음악과, 미술과, 무용과별로 학부형 및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딱딱한 학부모 면담에서 탈피하고자 제목도 ‘금난새와 함께하는 뮤직토크콘서트’ ‘아트토크콘서트’ ‘댄스토크콘서트’라고 붙였다.

그는 간단히 학교 운영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졸업생 중 무용과 교수, 미대 교수 등을 게스트로 초대해 진학 관련 조언을 들려주도록 했다.

댄스토크콘서트에서는 각각 현대무용, 고전무용, 발레 전공 재학생이 한 명씩 나와 기타 연주에 맞춰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모습을 다 같이 지켜보는 등 색다른 시도도 해봤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개인기가 좋아요. 시험을 잘 보고 콩쿠르에 입상해야 하니까 실수하지 않고 틀리지 않는 음악을 하려고 하죠. 하지만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내는 경우는 드물어요. 자신만의 스타일을 통해 감동을 주는 크리에이티브한 예술가를 길러내야 합니다.”

▶뉴욕에 한국 클래식을 수출=금난새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모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일이기 때문에 소화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클래식 대중화를 향한 그의 노력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로도 뻗어나간다. 지난 2012년부터 그는 미국 뉴욕에서 ‘맨해튼 챔버 뮤직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금난새를 비롯해 송영길 인천시장,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 류진 풍산 회장,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 등이 함께 한국 클래식 수출에 나선 것이다.

K-팝(Pop) 한류를 이끌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의 이수만 회장도 클래식 한류의 현장을 지켜보러 왔다.

지난해 스타인웨이홀에서 열린 맨해튼챔버뮤직페스티벌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유엔대사 부부 40명과 함께 참석했다. 당시 행사에 왔었던 체코대사의 소개로 올해 5월에는 뉴욕 보헤미안내셔널홀에서 100여명가량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 계획이다.

“기존에는 뉴욕이라고 하면 줄리아드음대로 공부하러 가는 곳이었는데 이제 뉴욕에 우리 문화를 수출해보자는 취지죠. 우리나라 기업가, 예술가, 외교관이 합쳐지는 글로벌 컬처 프로그램입니다.”

▶창조적인 생각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금난새는 20~23일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열리는 ‘금난새페스티벌’도 지휘한다. 금난새페스티벌은 올해 3회째로, 나흘간 뮤지컬ㆍ재즈ㆍ오페라ㆍ영화음악ㆍ발레 등을 주제로 축제를 벌인다.

이처럼 젊은 사람들도 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발상들은 아버지 금수현으로부터 물려받은 피 덕분이라고 한다. 금수현은 가곡 ‘그네’ 등을 작곡한,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가다. 금수현은 부산상고를 나왔지만 은행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사는 삶을 마다하고 일본 동양음악학원 성악과에 진학했다.

아버지가 지어준 금난새라는 이름은 해방 후 처음으로 공식 등록된 한글 이름이기도 하다. 한글 전용에 관심이 많았던 금수현은 금난새의 형 이름을 ‘금뿌리’로 지었다. 하지만 동사무소에서 등록을 거부하자 한자 표기가 가능한 ‘금나라’라고 바꿨다. 이후 신문 기고를 통해 부당함을 알렸고, 결국 금난새는 대한민국 공식 1호 한글 이름이 됐다.

금난새의 두 아들 이름은 ‘다다’와 ‘드무니’로 아버지대(代)의 니은에 이어 디귿자를 넣었다.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드무니의 이름은 ‘드문 사람이 되어라’와 ‘뮌헨에서 온 금(Gum de Munich)’이라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아버지가 유산으로 돈 한푼 남겨주지 않았지만 고집스러움을 물려주신 것은 고맙죠. 아버지는 보통 때는 말씀이 없는데 술을 먹으면 굉장히 재미있게 말을 했어요. 아버지와 대화를 통해 공부를 많이 했죠.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은 생활 속에서 저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abc@heraldcorp.com

정리=신수정 기자/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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